왜 같은 일이 반복될까.
아들이 7세인 시점부터 중1이 된 지금까지 한결같이 담임 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있다.
핸드폰에 아들의 담임선생님 이름이 뜨면 심장이 쿵쾅거리다 메슥거리고, 받고 싶지 않아 몇 초간은 꼭 망설이게 되고, 받고 나면 어김없이 수치심과 죄책감과 분노가 일어난다.
무엇을 더 해야 할까.
어떻게든 지금보다 나은 상황으로 해결해보겠다고 감정코칭도 배우고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하며 아이에게 끊임없이 적용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아이는 평균을 밑도는 그 망할 인지능력 때문에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을 뒤집어쓰고, 나는 언제나처럼 선 사과 후에 자세한 내막을 알게 되고 아이의 억울한 누명을 풀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을 꾸역꾸역 밟고 있다. 아이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일일이 반복해서 알려줘야 하는 데다, 친구에게 '싫다'는 거절도 못하고 선생님께 '본인이 안 했다'라는 자기주장도 어려워하기 때문에 내가 가서 싹싹 비는 죽을 죄인이 된 후에야 사실은 이랬다고 밝히니 환장할 노릇이다. 발달센터에서 수없이 자기주장 훈련을 해왔지만 소용이 없다.
오늘도 그 농구인지 뭔지를 하러 간다고 또 버스정류장에서 혼자 버스를 기다리는 아이를 창밖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속이 뒤집어진다. 그렇게 반복해서 버스시간표 보는 방법을 알려줬건만 또 엉뚱한 시간에 나가 한참을 기다리는 아이.
속이 상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협박과 함께 태워다 주고 몰래 지켜보는데 농구 무리에 섞이지 못하고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이럴 거면 내가 왜 태워다 줬나 화가 치밀다가도 불안한지 틱을 하고 있는 아이를 보니 가엾고 내 심장은 자꾸 베이기만 하고 아물지 못해 쓰라리다.
둘째인 딸만 같으면 열이라도 키우겠는데 아들은 마치 열명을 키우는 것처럼 어렵고 힘들고 버겁게 느껴진다. 자꾸 한계에 부딪히고 좌절되고 실망하고 다시 힘을 내보지만 내 양육의 파도는 끊임없이 역풍만 부는 것인지 원점으로 밀려오고 만다. 왜 하필 나 같은 엄마한테, 불안도 높고 걱정도 많고 부정적이고 나약하고 모성애도 부족한 나한테 힘든 아이를 보내셨는지 하늘이 원망스럽다. 내일 다시 담임과 통화해야 하는데 아침에 눈을 뜨면 10년이 그냥 훌쩍 지나가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