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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린이 Apr 19. 2021

작지만 분명 반짝이는 순간들.

<스피닝> 틸리 월든 지음, 박다솜 옮김

http://aladin.kr/p/YWSMa

지금의 나는 수많은 과거들이 쌓아 올린 결과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여러 사건과 선택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으며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었다. 내가 만난 친구, 내가 읽은 책, 나의 가족 등, 나의 현재는 과거와 독립적이지 않다. 지금 내가 이곳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상황도 자세히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일련의 과거의 시간들이 쌓여가면서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모든 과거가 같은 비중을 가지고 시간을 쌓아가는 건 아니다. 특히 유년시절은 몸과 마음이 성장하는 시기인 만큼 그 시기의 경험과 감정은 다른 과거에 비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지금은 같은 상황이라도 유년시절의 경험에 따라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과 시선은 크게 달라진다. 내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최근에 좋은 책을 읽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초등학교 시절 글짓기로 칭찬을 받았거나 고등학교 시절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 나의 유년시절은 어땠냐고 묻는다면, 한 단어 또는 문장으로 이야기하기 쉽지 않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그저 평범하고 전형적인 학생이었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우선 한참 동안 생각하고는 간신히 “그냥 학교랑 집이랑 왔다 갔다 했어요.”라고 말할 것 같다. 대학생 때도 다르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들어갔을 때, 새로 배치받은 팀장님이 나를 앞에 앉혀두고 물었다. “대학교에서 뭐 했어요?” 나는 “그냥 학교 다니고…” 외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팀장님은 좀 답답해하셨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정말 할 말이 없었으니까. 아마도 내 시간들은 어떤 색과 닮은 것 같았다. 흰색은 아닌데 회색도, 아이보리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어떤 그 중간에 있는 색. 지금 우리 집 벽지 같은 색.

그래서 <스피닝>의 작가인 탈리 월든 같은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 탈리 월든에게 나에게 했던 질문을 똑같이  한다면, 그는 자신 있게 이야기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테니까. “피겨 스케이팅과 싱크로나이즈드 선수였어요.”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일 거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연아라는 특출 난 선수를 떠올리며 “트리플 악셀 할 줄 알아요?”하고 물어볼지도 모른다. 작가처럼 피겨 스케이팅이 아니더라도, 나는 자신의 유년시절을 한 문장 또는 한 감정으로 명확히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항상 부러워했다.


<스피닝>은 작가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쓴 자전적인 만화다. 새벽 네시에 일어나 학교에 가기 전 피겨 스케이팅 훈련을 하고, 학교를 마친 뒤에는 싱크로나이즈드 스케이팅 팀 훈련을 소화한다. 그리고 집. 잠에 든다. 그리고 다시 같은 시간 기상. 훈련의 쳇바퀴는 계속 돌아간다. 쳇바퀴 중간에는 테스트를 통해 실력을 검증받아야 하고, 대회에 나갈 때마다 나의 위치는 적나라하게 점수로 공개되어 다른 선수들과 비교된다. 처음 이 작품을 읽을 때는 스케이팅에 대한 작가의 태도와 감정을 중심으로 읽으려고 했다. 지금은 만화가가 된 작가가 어떻게 스케이팅을 그만두게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스케이팅이라는 작가의 특별한 경험에 시선을 맞추고 작품을 읽었다.


그런데 작품을 읽어갈수록, 스케이팅만큼 반짝이는 순간은 링크 밖에 있는 작가의 모습이었다. 전학으로 새로운 학교에 들어갔을 때의 어색한 감정, 낭독 수업에서 들은 멋진 글, 미술과 음악 수업, 그를 사랑해준 사람같이 작가를 쌓아 올린 건 스케이팅 단 하나가 아니었다. 스케이팅이라는 거대한 시간 사이에 꽂혀 있는 미세한 조각들이 작가를 함께 만들어준 것이다. 그리고 그런 조각들이야말로 오히려 작가를 지탱해준 지지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작가가 그때까지 자신의 전부였던 스케이팅을 그만두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이런 미세한 감정의 조각들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의 긴 과거를 어떤 한 단어, 한 문장, 한 이미지로 표현한다는 건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나라는 사람은 하나의 사건, 하나의 일만으로 완성되지 않으니까. 내가 영화에 빠져 하루 종일 영화만 봤더라도, 문학청년으로 하루 종일 창작의 고뇌에 빠져 있었더라도, 그 사이에는 분명 작고 반짝이는 조각들이 있었을 거다. 지금의 나는 하나의 색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세한 감정의 색들이 덧입혀지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입혀진 미세한 색을 발견해간다면 아마도 지금의 내 모습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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