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가』의 저자 이현정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 속에서 형성된다. 인간의 욕망은 빈 공간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는 타자는 부모이다. 따라서 어린아이의 욕망은 부모의 욕망 속에서 형성된다.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욕망하는지, 아이에게 무엇을 욕망하는지가 바로 아이와 부모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처럼 욕망은 언제가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가 속한 사회나 집단 안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만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사회가 욕망하는 방향을 그대로 따라가게 된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없이는 생존하기 어렵도록 설계된 존재이기에 집단에 소속되는 한 그 집단이 추구하는 가치를 자연스럽게 따르고 싶어 한다.
부모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으로 자립한다는 뜻이 아니다. 부모가 무엇을 욕망하든 그 욕망과 나의 욕망을 구분하고 나만의 중심과 신념으로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부모의 욕망이 나의 욕망과 일치하지 않다는 감각이 생길 때 우리는 점점 심리적 거리를 두게 되고 동시에 나의 욕망이 더 잘 이해받는 집단을 향해 움직인다.
욕망에는 여러 층위가 있다. 나는 따뜻함을 욕망하기도 하고 안정감이나 신선함, 풍요로움을 욕망하기도 한다. 그것이 외부 환경을 향한 욕망일 때도 있고, 내면의 상태를 향한 욕망일 때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외부에서 추구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내면에서 대체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물끄러미 나의 삶을 돌아보면 내가 오래 머물렀던 곳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졌던 관계들에는 언제나 욕망의 방향이 비슷하게 흐르거나, 조용히 달라져 있었다.
집단과 나의 욕망이 공명할 때 나는 더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반대로 어긋난다고 느껴질 때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진다. 그 사이에서 오가는 다양한 감정들은 관계의 본질을 결정하지 못한다. 시간을 들여 깊이 생각해 보면서 나의 목소리를 들어보고 집단이 추구하는 방향을 되짚어 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나와 같은 욕망을 가진 사람들, 혹은 내가 추구하는 삶의 태도를 실제로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간다. 특히 꾸준한 사람들, 지속성과 일관성을 지닌 사람들에게 매료된다. 내게 지속성과 일관성은 아직 한참 부족하지만, 그들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이 바라보는 삶의 방향이 나의 방향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매일 달리는 사람들, 매일 글을 쓰는 사람들, 매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들이 참 멋지다. 그 일이 진짜 내 일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기준은 주말이나 휴가처럼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을 때에도 여전히 그 일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가 주어졌을 때 잠시 내려놓고 싶은 일이라면 아직은 진짜 내 일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 반면 아주 여유로운 날에도 아주 바쁘고 힘겨운 날에도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일어서 일상과 다름없이 지속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짜 내 일일 것이다.
나는 지금 그런 일을 찾아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특정한 ‘일’이란 것을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지속시키면 되는 것 같다. 꾸준함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큰 영감을 받고 있다. 나만의 방식으로 나다운 일을 영위하는 사람들, 그들이 가진 지속성과 일관성 속에서 나는 영속성을 본다. 아직 형태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함이 이미 오고 있고 그 상태에 도달할 것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