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83] '김사부'가 전한 메시지
SBS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3>(아래 <김사부3>) 가 막을 내렸다. 실력과 진정성을 갖추고 '무조건 살린다'라는 신념을 실천해 온 의사 김사부(한석규). 지난 2016년 시작된 시리즈 1편부터 이제 막 마무리된 3편까지 돌담병원에서 그를 만난 환자들은 새 생명을 얻었고, 동료들은 소명감 있는 의사로 성장했다.
새로운 멤버보다는 기존 멤버들의 고민과 변화가 중심이었던 3편에서도 새로 합류한 인턴 장동화(이신영)와 펠로우 이선웅(이홍내)이 진짜 의사가 되어가는 과정이 그려졌다. 드라마의 에피소드와 인물들의 변화는 철학적이었고, 감동적이었으며, 때로는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김사부3>가 막을 내린 지금 돌아보니, 김사부가 전한 진짜 메시지는 '진정한 의사'가 되라는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사부가 전한 메시지는 바로 이거였다.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원칙과 신념도 유연해야 한다: 차진만
"자고로 내려갈 때 잘 내려가야 하는 법인데 이놈의 자존심이 사람을 참 치사하게 만든다"(3회)라는 내레이션과 함께 등장한 차진만 교수(이경영)는 드라마 중반까지 갈등의 주축이었다. 실력으로는 김사부와 쌍벽을 이루지만, 인정과 성공에 가치를 두고 의사의 권위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그를 김사부는 외상센터의 수장으로 맞아들인다.
예상대로 그는 안타까운 일을 당한 환자들에게 '진심 어린 위로'보다는 '전문가로서의 권위'로 맞선다. 이런 그의 모습을 돌담병원의 사람들은 납득하기 어려워한다. 그리고 그를 외상센터로 불러들인 김사부마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김사부는 달랐다. 김사부는 사사건건 진만과 부딪히면서도 돌담병원 직원들을 "외부 의사들을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로 우리가 얼마나 더 살 수 있을 것 같냐"며 "그러니까 편견 없이 받아들여달라"(3회)며 설득한다. 그리고 동료들의 권익을 지키려 하는 진만의 모습과 후배들이 환자에게 헌신하다 다치는 상황들을 지켜보면서 진만에게 이렇게 고백한다.
"그게 이 녀석들에게도 괜찮은 건지 솔직히 모르겠어, 그러니까 네가 보여줘 봐."(6회)
이는 나의 신념을 타인에게 강요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성찰이었고, 내게 옳은 일이 누군가에겐 아닐 수도 있다는 겸손함의 표시였다. 자신의 신념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진만과 가장 대조적인 부분이었다. 또한, 김사부는 12회 곤경에 처한 진만에게 "내가 널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존중하지 않는 건 아니야"라고 말한다. 이는 '타인은 나와 다를 수 있고 그에게는 내 방식이 틀릴 수도 있음'을 아는 건강한 마음이었다.
결국 진만은 자신의 신념을 고집하다 돌담병원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김사부가 보여준 이런 태도는 진만에게도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했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살고자 하는 딸 은재(김성경)와 우진(안효섭)을 존중하는 선택을 하고, 딸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상화는 정답이 아니다: 서우진과 차은재
2편부터 돌담병원에 합류한 우진과 은재는 누구보다 김사부를 적극적으로 따르는 제자가 된다. 우진은 위급한 상황에 처한 환자를 만났을 때 '사부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이런 기준으로 9회에는 건물 붕괴 현장에 들어가 환자들을 구해내는 등 사람을 살리는 일을 충실히 한다. 진만과 동주(유연석) 등 김사부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의사들에게는 협조하지 않으면서 "우리는 사부님께 배운 대로 할 뿐입니다"라고 맞서기도 한다.
은재 역시 김사부를 이상향으로 생각하며 따른다. 아버지 진만이 김사부와 다른 의견을 낼 때마다 "사부님은 한 번도 의사로서 원칙을 어긴 적이 없다"라며 김사부를 두둔하고, 김사부와 다른 진만의 모습에 실망하기도 한다. 13회에는 외상센터에만 집중하라는 동주에게 반발하면서 위급한 돌담병원 환자를 수술해 살려내기도 한다.
하지만 김사부는 이토록 사명감 넘치는 우진과 은재를 칭찬하지 않는다.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환자에게 뛰어드는 우진에게는 "그러다 네가 다칠 수도 있다"며 화를 낸다. 동주에게 반기를 드는 은재에게는 "그만큼 어른이 됐으면 저 사람이 왜 이럴까 헤아릴 줄도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충고한다(14회).
김사부의 이런 태도는 자신에 대한 이상화가 후배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음을 인지한 모습이었다. 즉 '자신만이 정답이 아님'을 전제한 태도였다. 특히, 은재에게 한 "저 사람이 왜 이렇지?"라고 생각해 보라는 충고는 '내가 틀릴 수도 있고 사람은 각자의 마음이 있음을 고려하라'는 매우 중요한 삶의 지혜였다.
옳은 길에도 배려는 필요하다: 강동주
극의 후반부에서는 시즌1의 주인공이자 김사부가 인정한 제자 강동주가 등장한다. 진만이 떠난 센터장 자리에 강동주를 불러들인 김사부는 그에게 외상센터에 관한 전권을 맡긴다.
하지만 김사부의 전폭적인 신뢰를 통해 동주가 배운 것 역시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동주는 김사부처럼 되려는 후배들에게 "사부님처럼 될 수 있는 사람은 사부님 한 분뿐이야"(13회)라며 충고한다. 그리고 돌담병원 응급실과 외상센터를 철저히 분리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려 한다. 이는 김사부를 이상향으로 따랐던 돌담병원 사람들에게 낯설지만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동주는 '자신이 옳다'는 확신으로 지나치게 밀어붙이고 구성원들의 반발을 산다. 결국 외상센터 수장으로서의 동주의 지시에 따르지 않겠다는 '보이콧'까지 벌어진다(14회).
김사부는 다른 구성원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이런 동주를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끝까지 믿어준다. 은재에게 요구했던 그 태도(타인의 행동의 이유를 먼저 생각해 보라는)를 스스로 실천하며 기다려준다. 동시에 동주에게도 이런 질문을 던진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일지라도 사람 없이는 결국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너 뭐가 되고 싶은 거냐? 보스야 아니면 리더야?" (14회)
상대방의 '다른 마음'을 존중해 주되, 돌아볼 수 있도록 이끄는 이 질문은 동주에게 가 닿았을 것이다. 때문에 동주는 사람들에게 좀 더 마음을 열고, 돌담병원의 화합을 이끌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스웨덴의 현자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는 저서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에서 생각이나 신념은 나 자신이 될 수 없고, 내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건강한 정신의 핵심이라 했다. <낭만닥터 김사부3>의 김사부가 보여준 게 바로 이런 것이었다.
많은 이들이 따르는 자신의 실력과 진정성만이 옳은 것이라 여기지 않고 성찰하는 마음. 그리고 자신과는 다른 신념과 방식을 지닌 동료들의 마음을 존중하는 태도. 이런 김사부의 태도로 인해, 돌담병원 식구들은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면서도 조화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김사부 역시 이런 마음이 이었기에 '내려오는 것'을 두려워했던 진만과 달리 외과의사로서 치명적일 수도 있는 다발성 경화증을 보다 의연히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누구처럼 살 필요 없어. 너는 너답게 살면 되는 거야."
마지막 회. 김사부처럼 살 자신이 없다는 동화에게 김사부는 이렇게 조언한다. 이 역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이 다른 사람에겐 틀릴 수도 있음'을 전제한 태도였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 이를 전제하고 살아갈 때 우리는 타인과 자신을 보다 잘 수용하고,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노화와 상실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김사부가 몸소 보여주었듯 말이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