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85] JTBC <킹더랜드>의 구원
JTBC 드라마 <킹더랜드> 인물들은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직원들을 부당한 노동에서 구하는 본부장의 이름은 구원(이준호), 늘 사랑을 담아 고객과 주변인들을 대하는 호텔리어는 천사랑(임윤아),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공동체의 평화를 깨뜨리지 않는 승무원 오평화(고원희),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을’의 자리에 있지만 밝게 지내는 강다을(김가은).
이름만 들어도 이들 캐릭터의 특징을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구원과 사랑의 연애가 본격화된 요즘, 어쩐지 구원의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구원과 사랑의 연애에서 ‘구원하는 자’, 그러니까 상대방의 성장을 돕는 이는 구원이 아닌 사랑이기 때문이다. 구원은 사랑을 통해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 ‘사회적 관심’을 지닌 인물이 되어가고 있다. 사랑을 통해 변화하는 구원의 모습을 살펴본다.
사랑을 당황하게 하는 구원
구원과 사랑이 본격적인 연애 궤도에 들어간 것은 아마도 8회 무렵부터가 아닐까 싶다. 7회 아랍 왕자의 호텔방문 후, 자신의 사랑에 대한 감정을 확인한 구원은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랑에게 다가간다. 사랑을 호텔에서 쉬도록 배려도 하고, 보고 싶은 마음을 은근슬쩍 표현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마음을 드러내는 방식이 꽤나 일방적이다. 8회 구원은 호텔 일로 고생한 사랑을 스위트룸에서 쉬도록 배려한다. 하지만, 사랑이 침대에 누워 잠이라도 청할라치면 찾아와 노크하며 “이게 필요할 것 같아서”를 반복한다. 결국 사랑은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동료에게 들킬 뻔한 불편한 상황을 겪는다. 찜질방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 구원은 사랑이 지금은 친구들과 함께 있어 만나기 어렵다고 해도 “지금 봐야 한다”며 무작정 찜질방으로 찾아간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인 9회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 구원은 사랑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랑의 일터인 킹더랜드에 머물며 사랑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호텔 본부장인 구원의 이런 모습에 킹더랜드의 직원들은 매우 불편해한다. 사랑 역시 무척 당황해하며 “이러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지만, 구원은 “뭐 어때?”라고 답할 뿐이다.
내 마음에서 주변 사람의 마음으로
아마도 드라마는 이런 구원의 모습을 애정을 느끼는 과정으로 묘사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극 중 사랑이 당황하듯, 나 역시 이런 구원의 모습이 어딘지 불편하기만 했다. 이는 구원의 사랑이 사랑하는 대상을 향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더 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8회 사랑에게 쉬라고 하면서도 사랑이 보고 싶을 때마다 핑곗거리를 만들어 방문하는 모습은 진정으로 사랑을 쉬도록 하려는 마음보다는 ‘사랑과 함께 하고 싶은’ 자신의 욕구에만 충실한 태도다. 찜질방에서도 그렇다. 친구들과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랑에게 다짜고짜 ‘지금’ 만나야 한다며 무조건 찾아가는 것은 사랑과 친구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모습이었다. 자신이 보고 싶다고 사랑의 일터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 또한 사랑과 그 동료들이 불편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처사였다. 이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모습들이다.
구원의 이 같은 자기 중심성은 어릴 적 어머니를 잃은 상처로 타인과 세상에 마음의 문을 걸어둔 탓이 큰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를 잃고 슬퍼하는 자신을 향해 미소 지어준 사람들을 보며 구원은 자신의 마음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 후 그는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열지 못한 채 늘 굳은 표정으로 지내온다.
게다가 재벌 3세라는 신분은 이런 그의 굳은 마음에 그 누구도 다가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의 주변엔 그에게 진심으로 공감하기보다는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들뿐이었을 테니 말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구원이 타인의 욕구를 읽어내고 배려하는 법을 배우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할 때조차 자신의 욕구를 우선으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점차 넓어지는 마음, 사회적 관심
하지만 점차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7회 사랑과 함께 아랍 왕자 친구를 응대하면서 구원은 사랑에게 “웃는 모습이 참 예뻐”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미소 짓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 이는 ‘미소는 가식적인 것’이라 단정 지었던 마음의 틀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또한,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하는 사랑과 함께 테이블을 정리하며 사랑과 눈높이를 맞춰보기도 한다. 이는 자기 자신 안에 갇혀 있던 구원의 마음이 차츰 타인에게로 향하기 시작했음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그 후 구원은 직원들에게 줄 보너스를 결정하면서 “주기 좋은 선물 말고 직원들 의견 조사해서 받고 싶은 선물로 준비하세요”라고 말한다(11회).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 다를 수 있음을, 타인에게도 다른 욕구가 있음을 이해하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대사였다. 12회에는 사랑이 동료들과 회식이 다 끝나기를 기다리기도 하는데 왜 연락하지 않았냐고 묻는 사랑에게 이렇게 답한다.
“나 좋다고 즐거운 시간을 방해할 수는 없지.”
무작정 찜질방으로 찾아갔던 것과는 참 다른 모습이었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마침내 구원이 자기 중심성에서 빠져나와 ‘사회적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사회적 관심’은 개인심리학의 창시자 알프레드 아들러가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의 특징으로 명명한 개념이다. 아들러는 사회적 관심을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고, 다른 사람의 귀로 듣고, 다른 사람의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공동체와 타인의 마음에 관심을 갖는 이런 태도야말로 건강한 마음의 지표라고 했다.
자신의 상처에만 매몰돼 ‘웃지 말라’ 강요하고, 자신의 욕구만 채우며 타인을 불편하게 했던 구원이 타인의 욕구와 입장을 배려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마음이 건강해졌음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이렇게 건강해진 구원은 14회 자신의 비서 상식(안세하)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그룹과 직원들 모두의 번영을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
아마도 이는 늘 타인을 배려하면서도 자신의 마음 또한 솔직히 표현하는, 그러니까 자신과 타인을 모두 배려하며 살아가는 사랑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얻게 된 것일 테다. 즉, 구원은 사랑을 통해 심리적으로 건강해졌다고 볼 수 있다.
처음 <킹더랜드>를 시청했을 땐 등장인물의 이름이나 관계의 구조에서 ‘백마 탄 왕자님’ 신화를 연상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사회적 관심’이 부족한 건강하지 않은 인물들이 점차 변해가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에는 구원보다도 자기중심적인 인물들이 몇 명 더 나온다. 가족조차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취미나 편함만 생각하는 다을의 남편 충재(최태환), 돈과 권력만을 지키려 자식까지 매몰차게 대하는 화란(김선영), 오직 자신의 욕구만 채우는 무개념 다을의 매니저(이지혜). 이들은 모두 ‘사회적 관심’이 결핍된 이들이다. 곧 종영이 다가오고 있긴 하지만, 이들이 곁에 있는 건강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사회적 관심’을 회복하는 모습이 좀 더 그려진다면 좋겠다.
관계의 의미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자신의 부족한 면, 깨어나지 못한 자아를 깨워 가는 데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의 욕구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며 살아갈 때, 그러니까 자신과 타인을 향하는 마음에 균형을 찾으며 살아갈 때 공동체 역시 더욱 건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킹더랜드’의 사랑을 통한 구원의 변화는 이런 면에서 의미 있다 하겠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