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연 Oct 31. 2024

"내 핏줄이니까" 이 말이 당연해질 때 불행해집니다

[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111]  JTBC <조립식 가족>의 아이들 

 캐나다 밴쿠버에 잠시 거주할 때였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아이의 캐나다 공립학교 입학을 위해 밴쿠버 교육청에 등록을 해야 했다. 아이의 인적 사항을 적는데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다. 바로 '부모'에 대해 적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었다. 서류는 부/모를 구분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parents(패런츠, 부모)'라는 표현도 없었다. 단지 'care giver(케어 기버, 보호자)'를 적도록 돼 있었다.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이게 바로 다양성 존중이구나,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를 따르지 않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가족이 이성애에 기반한 부부와 그들이 낳은 자녀로 구성돼야 한다는 전제를 두지 않고,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가정환경조사서'에 부/모 성함을 따로 적고 직업까지 적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 다르다 싶었다.


JTBC 드라마 <조립식 가족>은 우리에게도 이런 '가족 다양성 존중'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드라마다.


투사하는 가족 vs. 존중하는 가족


▲정재는 산하·해준·주원 그리고 대욱은 함께 식사를 하며  한 가족처럼 지낸다. JTBC


 정재(최원영)는 아내와 사별 후 딸 주원(정채연)을 키우면서 국숫집을 운영하는 '홀아비'다. 어느 날 산하(황인엽) 가족이 아랫집에 이사를 온다. 그런데 딸을 잃은 슬픔에 빠진 산하 엄마 정희(김혜은)는 집을 떠나고, 정재는 아빠 대욱(최무성)이 일하는 동안 혼자 지내는 산하의 끼니를 챙기기 시작한다.


 그런 가운데 해준(배현성)과의 인연이 이어진다. 엄마가 떠난 후 제대로 된 밥 한 끼조차 먹지 못하는 해준을 정재는 집으로 데려온다. 이렇게 윤주원·김산하·강해준, 성이 모두 다른 세 아이와 정재 그리고 대욱은 위아래 집에 살면서 마치 한 가족처럼 지낸다. 세 아이들은 친남매처럼 진한 정을 나누면서 성장해 간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후, 갑자기 산하의 엄마와 해준의 부모가 등장한다. 의사 남편과 재혼해 딸 소희(김민채)까지 낳은 산하 엄마 정희(김혜은)는 산하를 찾아와 "가족은 함께 살아야 하니 서울로 가자"고 요구한다. 이를 산하가 거부하자 "(동생이 죽었을 때) 둘이 있었고 그건 너 때문이다"라는 말로 산하에게 생채기를 낸다. 임신 사실을 알고 자취를 감췄던 해준의 아빠(이종혁)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친자 해준을 찾는다.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났던 해준의 엄마 서현(백은혜)은 불쑥 나타나 빌린 돈과 양육비만 정재에게 주고 다시 떠난다.


 '혈연'인 산하의 엄마와 해준의 부모는 이처럼 아이들을 '자기의 필요에 따른 수단'으로 대한다. 정희는 아마도 대욱의 말처럼 딸의 죽음이 산하 때문이 아니라 "둘만 놔둬서 그렇게 된 것"(6회)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는 건 너무도 큰 죄책감을 남기기에 이 감정을 피를 나눈 자식인 산하에게 모두 투사한다. 직접 낳아 자신의 분신처럼 여겨지기에 자신의 감정마저 던져버린 것이다. 해준의 아빠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해준을 버렸다 찾았다 하고, 서현은 해준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고 자신의 사정만 챙긴다.


 뭐 이런 부모가 있나 싶겠지만, 현실에서도 부모가 자녀를 수단으로 대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대표적인 것이 자신의 꿈을 자녀에게 투사하는 경우다. 드라마 속 주원의 친구 달(서지혜)의 엄마처럼 "넌 엄마의 유일한 희망"(5회)이라며 자녀가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주길 바라는 경우는 실제로도 숱하게 많다. "가족이잖아!"(6회, 정희), "내 핏줄이니까"(3회, 해준 아빠)라면서 서로를 '한 사람'으로 존중하지 못하고, 온갖 욕망들을 투사하며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가족들을 나는 상담실 안팎에서 참 많이 만난다. 이런 부모와 자녀는 함께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산하·해준·주원·정재·대욱, 이렇게 모인 '조립식 가족'은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각자의 개성을 존중한다.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고, 힘들 땐 풀어주려 애쓰지만, 내 감정의 투사가 아니라 상대방을 위한 마음이 먼저다. 아마도 드라마를 본다면 누구나 알 것이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과 정재네 집에 모인 가족 중 어느 쪽이 더 '진짜 가족'의 모습인지 말이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해준의 아빠는 불쑥 나타나 '자신의 재산을 뺏기지 않기 위해' 아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JTBC


 그럼에도 이들은 '진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이웃들은 산하·주원·해준 셋이 함께 있는 걸 보면 "참 기구하다"라며 혀를 끌끌 찬다(2회). 주원의 친구들은 주원에게 산하·해준이 '진짜 오빠'가 맞냐며 종종 확인해 온다. 학교에서 인기가 많은 산하와 해준에게 연애편지를 전달해 달라고 주원에게 다가오면서도 "어떻게 성이 다른데 친오빠냐"며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주원을 좋아하는 준호(윤상현)는 주원에게 고백을 하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울 엄마가 맨날 가정환경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니 보면 선입견 같다." (4회)


 이는 산하·주원·해준이 아무리 밝고 행복하게 지내도 '이성애 부부와 이들이 직접 낳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이 아닌 가족은 비정상'이라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이들 주변을 늘 감싸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장면들이었다.


 이런 시선들은 아무리 밝고 건강하게 자란 산하·주원·해준이라 해도 종종 불안을 느끼게 한다. 때문에 주원은 '양자입양'을 해서 서류상 가족, 즉 성이 같은 가족의 관계를 만들자고 주장(2회)한다. 그리고 산하는 이런 주원의 마음을 이렇게 꿰뚫는다.


 "난 김산하고 넌 윤주원이야. 성을 통일해, 서류상으로 가족이 돼.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사람은 자기가 젤 부족한 부분에 집착해. 네가 자꾸 가족가족 그럴 때마다 티나, 서류상 가족이 아니라서 불안한 거." (2회)


편견에 당당히 맞서기


▲산하엄마 정희는 딸 소정을 잃은 죄책감을 모두 산하에게 투사한다. JTBC


 한편, <조립식 가족>의 아이들은 이런 편견에 당당하게 대응한다. 먼저, 기죽지 않고 되받아 친다. 주원은 혀를 끌끌 차는 이웃들에게 "저희 하나도 안 기구한데요? 세상에 평범한 사람이 어딨고 사연 없는 집이 어딨어요, 다 각자 나름 스페셜한 거지"(2회)라고 말한다. 학교에서 "어떻게 너네가 가족"이냐 묻는 선배에게도 "재혼해서 새로 생긴 형제는요, 입양하면요, 이래저래 피 안 섞인 가족들도 많아요"라며 팩트를 날린다(2회).


 때로는 힘을 합쳐서 대응하기도 한다. 주원이 "엄마 없는 애 치고 밝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산하와 해준은 그 말을 한 친구를 찾아가 사과하라며 독려하고 주원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해 준다. 해준의 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나 "내 핏줄이니까"라며 혼란스럽게 할 때도, 산하의 엄마가 "이젠 용서해 줄게"라며 산하에게 자신의 감정을 퍼부을 때도, 셋은 함께 있으면서 서로의 상처를 감싸 안아준다.


 물론 서로 다른 상처를 지닌 셋은 가끔은 투닥거린다.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해준은 산하가 엄마에게 모질게 대하는 걸 보고는 화를 내기도 하고, 산하는 이런 해준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은 한바탕 싸운 후 솔직한 마음을 나누고 더 진하게 연결된다. 6회 산하가 "보고 싶다 소정이"라고 말하자, 주원 역시 "엄마 보고싶다"고 털어놓고, 해준도 "내도 엄마보고 싶다"고 고백한다. 동시에 이들은 서로의 처지를 동정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지, 나도 그래'라는 공감과 유머로 서로를 다독인다.


 나는 드라마를 보면서 만일 캐나다처럼 학교 서류에 '부모'가 아닌 '보호자'를 적는 사회였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 봤다. 그랬다면, 주원·산하·해준이 혀를 끌끌 차는 이웃들의 반응도, "가족 맞냐"며 의심하는 친구들의 시선도, '가정환경' 운운하는 말들도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에서도 다양하고 특별한 가족들이 보다 존중받으며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조립식 가족>의 산하·주원·해준이 하고 있는 것들을 우리도 함께 했으면 한다. 편견을 가진 이들에게 당당히 '바른 관점'을 알려주고, 주변에 힘들어하는 이웃이 있다면 함께 편이 돼 주는 것. 또한 서로 다른 가족의 사연을 '동정'이 아닌 '공감'의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


 이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를 감싸고 있는 견고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조금씩 그 힘을 잃어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서로를 돌보는 다양한 관계들이 모두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에도 실렸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