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인물 탐구생활 125] tvN <견우와 선녀>
"재수 없어!"
아마도 한국어를 사용하는 이라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흔하게 쓰는 비속어 중 하나 일 것이다. 그 의미는 이쯤 된다 '너 때문에 운이 없어!'
tvN 드라마 <견우와 선녀>는 바로 이 '재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견우(추영우)와 견우를 살리려는 무당 성아(조이현)의 이야기를 담았다. 판타지 같은 이야기지만, 드라마는 편견과 차별에 노출된 사람들의 '현실적인 심리'를 보여주고 있다.
액운 낀 견우, 액운을 없애는 선녀
견우는 액운을 타고난 인물이다. 어릴 때부터 그의 주변에는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고, 그 역시 죽을 뻔한 위기를 여러 차례 넘긴다. 사람들은 그를 멀리하고, 심지어 부모마저 외면한다. 이런 그를 거둔 건 바로 할머니 옥순(길해연). 옥순은 가족들의 반대에도 견우와 함께 살며 그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쓴다. 견우는 양궁에서 특기를 발견하고 고교 양궁선수로 활약하기도 한다. 하지만, 화재 사건에 연루돼 방화범으로 몰리고 양궁마저 그만둔 채 성아가 다니는 학교로 전학을 온다.
성아는 8살 때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된다. 성아가 '미월동 아기무당'으로 유명세를 치를 때 성아의 부모는 성아를 돈벌이에 이용하고, 어린 성아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려고' 열심히 일한다. 하지만, 성아의 부모는 '무당' 성아를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버린다. 이런 성아를 신어머니 동천장군(김미경)이 거두어 보살핀다. 동천장군은 밤새 무서워하는 성아의 손을 꼭 잡아준다. 동천장군의 보살핌 속에 성아는 평범한 고등학생의 삶과 무당 '천지선녀'로서의 삶을 동시에 살아간다.
견우와 성아의 인연은 할머니가 견우의 액운을 몰아내기 위해 천지선녀를 찾으면서 시작된다. 무당이지만 사춘기 소녀인 성아는 견우에게 한눈에 반한다. 다음 날 견우는 성아의 반으로 전학을 오고 성아는 곧 죽을 운명인 그를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액운 낀 견우와 이를 막는 성아는 서로 반대되는 역할을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나는 이 둘이 무척 닮아 보였다. 견우와 성아는 둘 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견우는 '재수가 없고' 무당인 성아 역시 "무당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다. 귀신 보는 게 재주냐 천명이고 숙명이지"(4회)라는 동천장군의 말처럼 사람들이 꺼리는 존재다. 즉, 견우와 성아는 둘 다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 속에 살아가는 인물인 셈이다. 그런데 성아와 견우의 태도는 무척 다르다. 견우는 이런 사람들의 시선에 늘 주눅 들어 지내지만, 성아는 대체로 밝고 당당하다. 가끔 교실에서 쪼그라들기도 하지만, 크게 괘념치 않고 지낸다.
'자기 대상화'의 늪에 빠진 견우
'편견'속에 살고 있는 두 인물이 이토록 다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 차이가 '자기 대상화'의 여부에 있다고 본다.
우리 사회는 내 편과 남의 편을 가르고 다수의 우월을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편견들을 만들어 낸다. 편견은 가랑비에 옷 젖듯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든다. 편견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경우, '자기 대상화'가 일어난다. '자기 대상화'란 스스로를 자신의 시선으로 보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을 그대로 내면화해 바라보는 것을 말한다.
오랫동안 '재수 없다'는 편견에 노출된 채 지내온 견우는 '자기 대상화'에 빠진 경우다. 견우는 학교 창고에서 화재가 나 누명을 썼을 때 이렇게 말한다.
"불내고 안 내고가 뭐가 중요해? 애들이 그렇게 보면 그게 나지." (2회)
이는 견우가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내면화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대사였다. 이런 견우는 무표정한 얼굴과 축 처진 어깨로 '살기'보다는 하루하루를 버텨낼 뿐이다. 진웅(김성정) 일당이 괴롭힐 때도 "미워하고 증오만 하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라고 말한다. 마치 스스로를 '미움받을 만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듯 말이다.
견우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마음을 닫는다. "사람은 다 싫다"며 다가오는 성아와 지호(차강윤)를 밀쳐낸다. 성아와 지호의 끈질긴 진심공세에 결국 마음을 열긴 하지만, 성아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기 전까지 견우는 작은 사건에도 금세 마음의 벽을 높이 세우며 내게 좋은 일이 생길 수 없다고 쉽게 마음을 닫는다.
옥순의 지극한 사랑도 이런 '자기 대상화'의 늪에서 견우를 꺼내주지는 못한다. 옥순은 세상 사람들 대신 '미안하다'는 말을 견우에게 자주 들려주며 조심스럽게 대한다. 견우를 생각하는 마음이겠지만, 할머니의 미안함은 견우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며 스스로를 더 초라하게 느끼게 하지 않았을까 싶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성아
반면 성아는 다르다. 성아는 무당에 대한 사람들의 '혐오 반응'을 종종 경험하고 (견우도 성아가 무당임을 알았을 땐 혐오감을 드러낸다),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지니고 있다. 무당에 대한 시선을 알기에 학교에서는 절친 지호 외에는 무당임을 알지 못하게 하려 애쓰기도 한다. 하지만 성아는 '자기 대상화'로 나아가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보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욕구를 존중한다. '평범한 학생'으로 살고 싶은 마음도 존중해 달라 신어머니께 당당히 요구해 낮에는 학생으로 살면서, 방과 후에는 무당 '천지선녀'로도 열심히 살아간다.
성아는 어떻게 자기 대상화로 나아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무당'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봐주는 신어머니 동천장군과 친구 지호의 존재가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동천장군은 성아를 '신딸'로 입양했지만, 단지 무당으로만 대하지 않는다. 평범하게 살아가고 픈 성아의 욕구도 존중하며 "스파이더 맨도 쫄쫄이 입었을 때나 거미지 평소에는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이야"(4회)라고 말해준다. 지호 역시 성아를 평범한 학생 친구로 대하면서 동시에 무당으로서의 삶도 존중해 준다. 이렇게 온전한 '한 사람'으로 바라보고 존중해 주는 시선은 지독한 편견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준다.
또 다른 중요한 보호 요인은 성아에겐 비슷한 운명을 받은 공동체가 함께 한다는 점이다. 꽃도령(윤병희)과 맹무당(이영란)은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성아와 동천장군과 힘을 합친다. 이들은 어린 성아를 보호해 주면서 성아에게 무당으로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준다. 각자의 사연을 지닌 채 무당이라는 숙명을 받아들인 이들과 함께 하면서 성아는 내가 '이상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이런 공동체의 연대와 사랑 속에 자란 성아는 비록 무당이라는 정체감을 수용해 낸다. 그리고 점차 학교에서도 '커밍아웃'하며 자신의 고유함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액운이 사람을 죽인다고 생각하지? 아니야. 재수 없는 새끼라는 손가락질, 쟤랑 놀지 말라는 부모들의 고함, 얘 언제 죽을지 내기하자는 못된 인간들의 농담, 살아 있어도 죽은 취급을 받으면 사람은 그때부터 죽는 거야. 조금씩 조금씩. 사람은 사람이 죽여."
옥순은 세상을 떠나면서 선녀에게 이렇게 말한다(2회). 정말로 그렇다.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편견은 조금씩 조금씩 우리 마음에 스며들어 '자기 대상화'를 유발하고 결국 살아갈 힘마저 잃게 한다. 편견 없는 세상이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 이미 우리 사회엔 수많은 편견이 있다. 이런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길은 자기 대상화의 늪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다.
<견우와 선녀>는 자기 대상화를 막아주는 보호 요인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 사람을 전체적이고 고유한 존재로 존중해 주는 시선, 그리고 '너만 그런 게 아니'라는 공동체의 따뜻한 손길은 '편견' 속에서도 나를 지키며 살아가는 힘이 된다.
드라마가 중반을 넘어선 현재, 견우는 악귀에 빙의되고 만다. 하지만 성아와 지호, 그리고 무당 공동체의 힘은 악귀마저 고분고분하게 다스려가고 있다. 우리 사회도 이렇지 않을까.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시선과, 함께해 주는 공동체의 힘은 편견과 이로 인한 자기 대상화의 늪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이다. 이런 힘이 커질 때, '액운' 따윈 없는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