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은 자신의 이름보다 아이의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곤 합니다. 과연 엄마도 이름을 가진 존재, 나다운 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pixabay
2019년 2월 22일
오마이뉴스의 ‘올해의 뉴스 게릴라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로 가는 KTX에 몸을 실었다. 매끄럽게 속력을 내는 기차 창문 사이로 다양한 풍경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계속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동수단 안에서의 곤한 낮잠이 피로 해소 수단인지라 난 서울에 오가는 기차에 탈 때마다 휴대폰을 방해금지 모드로 해두고 잠을 청한다. 하지만 이 날은 진동모드로만 해두었다. 그리고도 혹시 기차의 진동 때문에 울리는 전화를 확인하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며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옆자리에 동승한 곧 5학년이 되는 아들 녀석은 나와는 완전히 달랐다. 가방에 넣어 온 책을 꺼내더니 이내 독서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언제 저렇게 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에 다녀오기 전인 2년 전만 해도 기차 안에서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이것저것 챙겨 와야 했던 아이였다. 아이와 기차를 탈 때면 소리 안 나게 보드게임을 해줘야 했고, 혹시라도 투정 부리거나 큰소리를 낼까 봐 조마조마했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 아들은 나보다도 더 어른스럽게 기차 여행을 하고 있었다.
‘경단녀’ 탈출을 알린 문자 한 통
그때였다. 며칠 동안 휴대폰만 들여다보게 했던, 그토록 기다리던 문자메시지가 왔다. ‘2019년 객원상담원 모집에 합격하셨습니다. 2월 27일 10시까지 학생상담센터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기차 안에서 아들을 붙잡고 호들갑을 떨었다. “아들! 이거 봐봐!” 아들은 잠시 책 읽기를 중단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꼭 안아 주었다. “엄마, 진짜 진짜 축하해!”
나는 40대 초반의 한국 상담심리학회 소속 상담심리사다. 결혼 후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임신한 몸으로 대학원에 다니면서 자격을 취득했다. 육아와 살림을 병행하느라 전일제로 일하진 못했지만, 근근이 10년간 유지해오던 나의 중요한 사회적 정체감은 ‘상담심리사’였다. 하지만, 2017년 남편의 해외연수를 위해 캐나다에 함께 가면서 완전히 나의 경력은 단절되고 말았다.
캐나다라는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일도 좋았지만, 상담심리사로서의 정체감이 사라진 느낌은 2년 내내 나를 불안하게 했다. 때문에 난 캐나다에서도 워크숍에 참석하고 한국의 소속 학회 사이트를 수시로 드나들며 귀국 후 일자리들을 봐 두곤 했었다. 지난 연말 귀국을 준비하면서부터 이력서와 자기소개를 여기저기 냈지만, 워낙 알음알음 소개받아 연결되는 일자리들이 많은 탓인지 원하는 연락은 거의 받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데 드디어 이 불안감을 싹 가시게 해 준 문자 한 통을 받은 것이었다. 단지 일자리를 구한 기쁨이 아니라 나의 정체감을 다시 찾은 것 같은 충만함이 느껴졌다.
세상과 나를 이어준 글쓰기
기차를 탈 때와 내릴 때 1시간 45분 사이에 나의 마음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그렇게 꽉 채워졌지만, 더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오마이뉴스의 시상식장에 도착했다. 시상식에는 지난 한 해 동안 활약한 오마이뉴스의 필진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여느 시상식과 다르게 상은 이미 각자의 자리에 놓여 있었고, 호명이 되면 수상자는 앞으로 나가 긴 수상소감을 말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상을 받기보다는 글을 쓰는 이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지는 자리 같은 느낌이었다. 매 수상소감마다 감동과 힘이 있었고 마침내 내 차례가 돌아왔다.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걸어 나가는데 쑥스러움 많은 아이가 웬일로 나를 따라 나왔다. ‘글쓰기를 통해 일상에 의미를 찾았다’는 요지의 수상소감을 말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정말 그랬다. ‘경단녀’로 살았던 캐나다에서의 시간 동안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나의 불안감은 더 커졌을 것이다. 글쓰기는 사회적 정체감을 잃은 나를 세상과 이어주고 내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줬다. 벅찬 마음으로 말을 마치자 사회자가 아이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엄마가 상 받은 것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아이는 또박또박 이렇게 답했다.
“엄마가 상담이랑 글 쓰는 것을 같이 하고 싶어 했는데 엄마가 꿈을 이루게 돼서 기뻐요”
아들의 말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면서 뭉클해졌다. ‘꿈’. 나에게 꿈이 있었을까? 상담하고 글을 쓰는 것. 이것이 정말 나의 꿈이었을까? 그리고 나는 지금 꿈을 이룬 걸까? 나는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종종 이렇게 묻는다. “너는 꿈이 뭐야?” 여기서 꿈은 미래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묻는 말이다. 또 한편으로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묻는 말이기도 하다. 즉, 꿈이란 일과 정체감을 함께 이르는 말인 셈이다. 이는 일과 정체감은 떼어 놓을 수 없으며, 사람들은 일을 통해 정체감을 찾고, 자신의 꿈을 실현한다는 의미다. 많은 이들은 일을 통해 꿈을 이루기 위해 애쓰며 살아온다. 나 역시 일 속에서 나의 가치를 느끼는 청년기를 보냈었다. 하지만, 결혼 후 남성과 여성의 길은 달라진다. 남성들의 경우 일에서 꿈과 정체감을 찾는 것을 결혼 후에도 대부분 지속된다. 물론, 경제적인 면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될 것이고 꿈보다는 생계가 더 먼저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하고, 아빠가 되었다고 해서 일을 통해 형성된 정체감이 축소되지는 않는다.
결혼하고, 엄마가 된 후 많은 여성들은 일을 통해 가꿔온 자신의 정체감을 잃어버리는경험을 한다. @unsplash
여성의 일과 정체감, 그리고 꿈
그런데 여성들은 다르다. 결혼과 동시에 시댁 중심 가부장제 속으로 편입되는 한국의 여성들은 며느리나 아내라는 정체감이 일로 통해 가꿔온 나의 정체감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그러다 출산을 하면 ‘엄마’라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정체감을 뒤흔들어 놓는다. 여성들은 ‘엄마’라는 정체감을 자신 안으로 소화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지만, 오랫동안 사회적, 문화적으로 규정되어 온 엄마의 모습은 내적 갈등을 일으키게 할 때가 많다. 전형적인 엄마의 이미지를 실천하는 여성들은 엄마가 아닌 자기 자신의 모습을 억누르며 암묵적인 심리적 고통에 시달린다. 반면 익히 들어온 모성애가 잘 발휘되지 않는 여성들은 아이를 향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한다. 일에서와 엄마로서의 정체감을 모두 발휘하는 여성들은 다중역할로 인한 갈등과 피로감을 달고 산다. 즉, ‘엄마’로 불리는 많은 여성들은 그 정도와 모습은 다르지만 저마다 정체감의 위기를 겪으며 분열적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일에서의 정체감을 당연시 여기며 살던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면서 분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엄마로서의 삶은 이런 혼란을 인식하고 꿈을 설계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내면서 분열된 자리를 조금씩 메우고 통합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할 뿐이었다. 그렇게 만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만 10살이 된 아들은 내가 꿈을 이뤘다며 기뻐해주고 있었다.
나는 결혼을 하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고 엄마가 된 후, 자격증을 따고 학교를 졸업했으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엄마, 주부, 아내, 며느리로 살며 동시에 상담심리사로서 일을 하고, 여전히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내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글을 쓴다. 내가 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서로 다른 것 같은 이 일들이 하나의 꿈을 향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것은 유명한 심리학자도, 저명한 작가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나 다운 나'로 살아가기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것. 바로 이 한 가지 궁극의 꿈을 위해 나는 상담과 글, 심리학을 선택해 온 것이었다. 그리고 엄마, 아내, 주부로서의 삶도 ‘나다운 나’라는 소망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2019년 2월 22일은 내가 상담자로서 정체감을 찾고, 글 쓰는 이로서의 각오를 다진 날이었다. 또한, 그 기쁨을 아들과 함께 나누었으니 엄마로서의 정체감도 그 자리에서 통합된 셈이다. 아들의 “꿈을 이뤘다”는 말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갔다. 변화하는 정체감 속에서 그 꿈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나 자신이 ‘나답게’ 느껴졌다. 이를 확인한 2월 22일은 내게 무척 특별한 날이었다.
“너는 꿈이 뭐니?" 어린 시절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의 답은 다양하게 바뀌었다. 피아니스트, 판사, 의사, 기자 등. 다양한 직업이 곧 꿈이었다. 중년에 막 접어든 요즘.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이 모든 꿈들의 지향점은 ‘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것’이었음을 말이다. 사실, 심리학적으로 중년은 젊은 시절의 여러 경험과 미처 채우지 못했던 마음속 소망들을 통합하며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서는 시기다. 정체감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 자신’이 된다는 것에 완성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내가 ‘나답다’고 느끼며 중년을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앞으로 쓰게 될 글들은, 결혼 후 직면했던 여성의 조건 속에 잃어버렸던 나의 이름을 찾고 분열된 정체감을 통합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이야기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 이야기들이 글이 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했었다. 하지만, 시상식 날 아이의 말을 전해 들은 많은 여성들이 나만큼이나 뭉클해했음이 떠올랐다. 한국 사회에서 엄마로 살면서 꿈을 이루는 것, 그러니까 ‘나다운 나’로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또 간절한 것인지 알 수 있는 반응이었다.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새기며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이 땅의 엄마들이 자신의 이름을 찾는데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연재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