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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 쓰는 엄마 Jan 31. 2023

내 첫사랑은 '영어'다.

기록하지 않기엔 아까운 나의 영어 이야기

고백한다. 내 첫사랑은 '영어'다. (남편 미안)


나는 영어를 사랑해서 고등학교 시절 미국 고등학교로 교환학생을 다녀왔고, 캐나다에서 언어학과 심리학 학를 취득했다. 한국에서도 잠깐 대학을 다녔었는데, 수능도 제대로 치르지 않은 나는 이 마저도 영어특기자로 지원하여 합격했었다.


현재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은 영어에 대한 짝사랑을 이룬 결과 생각한다.


영어 성적과 해외 대학 학위를 앞세워 입사한 안정적인 현 직장,

영어특기자로 한국 대학을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우리 남편, (한국 대학 시절 함께 밴드 활동을 했던 선배의 결혼식에서 남편을 만나 서로 첫눈에 반해 결혼했다)

지친 일상 스트레스 완충제 역할을 해주는 내 인생 미드 '오피스(The Office)'를 알게 된 것 모두.


내 삶은 영어를 기반으로 지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닐듯하다.




1. 계기 - 짝사랑의 시작


영어에 대한 나의 짝사랑은 중학교 1학년 시절 시작됐다. 당시 TV에는 '리지 맥과이어(Lizzie McGuire)'라는 미국 틴 드라마가 더빙으로 방영 중이었는데, 그 프로그램의 크리스마스 에피소드, 'Here Comes Aaron Carter'에 나왔던 '아론 카터'라는 미국 팝스타를 보고 첫눈에 팬이 되어 버렸다.


당시 아론 카터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그의 형 닉 카터가 미국 보이밴드 Backstreet Boys(BSB)에서 활동하며 인기의 절정을 찍고 있을 무렵, 그는 BSB의 콘서트 오프닝 무대에 참여하며 9살의 어린 나이에 데뷔를 했다. 금발머리의 인형 같은 외모에 사춘기가 아직 오지 않은 앳된 목소리는 팬들을 사로잡았고, 10대 시절에는 'Prince of Pop'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여러 히트곡을 발매했다. (내가 영어를 좋아하게 된 계기인 아론 카터가 얼마 전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당시 나는 영어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영어뿐만이 아니라 공부 자체에 흥미가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교육보다는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더할 나위 없다는 주의 셨기 때문에 나는 공부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자라면서 공부하라는 말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고, 시험에서 20점을 받아왔다고 해서 혼 난 적도 없었다.


그랬던 내가 TV에서 아론 카터를 보고 영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가 무엇에 대해 그리 열심히 노래를 부르는지 궁금해져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스스로 펜을 들었다. 파란 눈을 한 우리와는 전혀 다른 외모의 외국인들이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와는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소통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에 일조했다.


처음 외웠던 팝송은 아론 카터의 "I'm All About You"였다. 지금이라면 몇 번 듣고 흥얼거렸을 이 가사를 그때는 한 번 따라 불러보겠다고 종이에 써가며 달달 외웠었다. 시험에서 100점을 맞은 것도 아니었고 누구에게 칭찬을 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이 곡의 가사를 완벽하게 외웠을 때 내 작은 15살 인생에서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큰 만족감을 느꼈다.



2. 짝사랑이 맞사랑으로


이렇게 흥미를 가지게 된 영어에 불을 붙게 한 장치는 '해외펜팔'이었다. 교과서에서만 배우는 영어가 아닌, 살아서 실제 쓰이고 있는 영어를 배우고 싶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영어가 기반이 되어 실제로 쓰이는 것이지만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그들 틈에서 이야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2000년대 초, 아직 인터넷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고 접속할 때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내던 모뎀을 쓰던 시절이었다. 해외 펜팔 사이트에서 'Maggie'라는 이름의 독일 여자 아이의 계정을 보고 (프로필을 확인하여 메일을 보낼 수 있었다) 무작정 메일을 보냈다. 당시 나는 male과 female의 차이도 모를 정도로 영어에 완벽한 문외한이었는데, 아빠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컴퓨터 옆에 사전을 두고 (당시 인터넷 사전도 없었다) 열심히 내 맘대로 영어 자판을 두드려 보냈다. Maggie와 손편지와 사진을 주고받기도 했고, 타이밍이 잘 맞을 때에는 실시간으로 채팅도 하곤 했었다. (대부분의 대화는 내가 사전을 찾느라 답장이 너무 늦어져 끊기곤 했었다.)


영어로 편지와 메일을 더 잘 쓰기 위해서는 영어 공부를 해야 했다. 성적을 잘 받기 위한 공부가 아닌, 실제로 그 언어를 사용하고 외국인과의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영어를 바라보고 공부를 하다 보니 영어가 재미있는 놀이처럼 다가왔다. 내가 썼거나 외국인 펜팔 친구가 썼던 문장이 교과서에 실려있을 때면 흥분됐다. 문법 책 한 장 펴 보지 않았지만 나는 엉터리 문법으로 아는 단어를 짜깁기하여 영어 문장을 만들어 쓰며 외국인들과 소통을 했고, 자주 쓰이는 표현은 따로 메모해 두고 익숙해질 때까지 외웠다. 영어 교과서도 영어로 된 이야기라고 생각하니 흥미로워 교과서 본 내용을 달달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었다. 이렇게 한 공부는 내게 영어 과목 만점이라는 결과를 안겨주었다.


나의 짝사랑에 대한 보답을 받는 순간이었다.



3. 영어와 사랑에 빠지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더욱 빠졌다. 내게 영어란 헤어져 나올 수 없는 늪이었다. 영어 공부를 할 때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고, 고등학교 시절 다른 공부를 하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백지를 꺼내 어떤 한 주제를 정해놓고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영어로 술술 써 내려갔다. 이게 내 스트레스 해소법이었다.


쉴 때면 영어로 된 팝송을 듣고 해석하며 시간을 보냈다. 실제로 팝송을 통해 여러 난이도 있는 단어들을 외웠었고, 원어민들이 자주 쓰는 문장 구조와 연음을 익힐 수 있었다.


문법 공부를 아예 배하지는 않았다. 소통에 있어서 문법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더 완벽하고 세련된 영어 표현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문법도 익혀야 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성문기본영어'를 읽고 마음에 드는 문장은 통으로 외우면서 문장 구조를 익혔다. (요즘도 성문기본영어로 공부하는지 모르겠다. 너무 올드한 방법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다.)


영어 듣기 평가는 물론이고 모의고사에서도 영어만은 만점을 놓치지 않았다. 영어 선생님 중 한 분은 우리 반에 들어오실 때마다 대학 입학 영어 시험 및 면접 문제를 출력해 오셔서 심심할 때 풀어보라고 하며 주셨는데, 수업이 끝나자마자 내가 답변을 정리해서 교무실로 찾아가자 놀란 기색이 역력하셨다.


학교 인원 전체가 참여한 교내 영어 경시대회에서 3학년들을 제치고 1학년이었던 내가 무려 3등을 차지했었고, 취미로 참여한 한국외국어대학교 주최 영어 경시대회에서도 수상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학창 시절 영어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안식처이자 첫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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