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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렌 Jan 28. 2023

Seren Lee 작가 소개 및 작가 노트




작가 소개


   투명한 바다는 상대의 색을 먹고 빛도 어둠도, 청춘도 죽음도 먹어 치웁니다. 죽음을 위해 삶에 저항하는 저는, 그러한 바다의 침묵과 포용을 사랑합니다. 찰나의 순간도 쉬지 않고 한없이 물결치는 바다처럼, 우리네 삶도 상승과 하강을 무한 반복하며 흐릅니다. 그 흐름은 잔잔할 때도 있지만, 고통스럽게 소용돌이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그 격랑은 한계를 모르고 휘몰아치는 내면의 폭풍과 닮아있습니다. 생을 부여받은 시점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 나가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는 작품을 제 손으로 빚어내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다에 저만의 색을 입히는 작업을 합니다. 우리 인간은 단색에 머무르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니까. 보잘것없는 인생을 아름답게 윤내기 위해.


Seren Lee 이세렌 イセレン

   서강대학교 자연과학부 생명과학과/국제인문학부 일본문화과 졸업 후 약 9년간 제약업계에서 일했습니다. 줄곧 단선적인 인과론주의자가 그득한 환경에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낭만주의적 사고관을 버리지 못하고 역사철학자처럼 말하는 특이종입니다. 인류의 건강과 생명 연장에 이바지하는 기업에 근무하면서 정작 본인은 자살 시도를 했지만, 이틀 만에 망망대해와 같은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깨어났을 때야말로 진짜 지옥이 열렸지만, 그 수렁 속에서 저를 건져낸 건 그림이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꿈이었고, 좌절당한 꿈이었고, 또 자포자기했던 아름답고도 잔인한 꿈이었어요. 그 꿈에 색을 입히고 시동을 건 순간, 조금이나마 행복을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림을 그릴 때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제가 가진 실존의 아픔과 고통, 불안과 우울,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초월하는 열정. 그걸 매일 같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헤매며 만들어 냅니다. 앞으로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지독한 우울증 환자도 숙원을 실행해 행복할 수 있고, 또 그 행복을 타인에게 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며, 아름다운 충격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파도는 수평선을 향해 by Seren Lee 2023 Oil and mixed-media on Linen 90.9×72.7×3.5 cm On sale


작가 노트


나는 바다를 만나면 여지없이 심장을 찔린다

  죽음이란 내 평생의 주제다. 철들기 전부터 죽음을 갈망했다. 생이란 어쩌면 죽음을 향한 여정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자면 생물의, 인간의 지향점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나는 죽음에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안락하고 평온하게 느낀다. 고로 나에게 삶이란 죽음으로 직행할 수 있는 길을 막는 장애물일 뿐이다. 인간의 삶의 주기는 내게 너무 길다. 자연의 주기가 오히려 타당하게 느껴진다. 인간이 비교적 긴 생의 주기를 갖고 있는 것은 나에게 재앙으로 다가오지만, 그렇기에 문학과 예술이 위대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한 사람의 생은 길어봤자 백 년 남짓으로 끝난다. 하지만 문학과 예술은 영원하다.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작품은 그게 무엇이든 시대를 불문하고 널리 감동을 선사한다. 내가 창작과 예술을 동경하게 된 것은 아마도 그런 사고의 흐름 덕분일 것이다. 살고자 하는 마음은 분명 생물 본연의 욕구다. 그러나 그와 동일하게 죽음에 대한 욕구가 반작용처럼 따라다닌다고 생각한다. 마치 바다의 밀물과 썰물처럼. 다만 그러한 반작용이 극심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는 거겠지. 누군가는 죽음에 대한 저항으로 삶을 살아내고, 또 누군가는 죽음을 위해 삶에 저항할 게다.


   나는 그러한 저항을 바다에서 찾는다. 나의 초자아는 너무나도 거대해서,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훈수하기 바쁘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초자아는 언제나 평범하고 판에 박힌 삶을 주문하고, 자아는 그에 대항한다. 단단한 바위에 힘차게 부딪혀 산산조각 나는 파도와 같다. 작은 물 알갱이로 부서지는 나는 그지없이 아프다. 하지만 다시 저 멀리 수평선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묵묵히 나의 길을 간다. 바다는 생과 죽음을 축약한 거대 자연이다. 


   그러한 거대 자연을 표현하기에 앞서, 바다를 찾아갔다. 바다로 향하는 길, 전철 안에서 바다의 끝자락을 발견한 순간부터 나의 마음이 간지럽다. 솜털처럼 휘날리는 마음을 억지로 부여잡고 해변에 다가선다. 바다는 언제나 그곳에서 넘치는 생명력과 포용력으로 나를 포박한다. 모래사장에 가만히 앉아 끝없는 바다를 바라본다. 먹먹한 색으로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바다. 저 멀리 산과 같은 물결의 봉우리가 보이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윤슬은 나의 눈을 멀게 한다. 바다는 감히 바라볼 수도 없을 정도로 태양의 빛을 눈부시게 반사한다. 이대로 넋 놓고 바라보다간 실명할 것 같아 눈을 돌리니 파도가 육지 근처의 바위를 때리며 무수한 물방울로 깨지고 있다. 아프다. 그 잔해가 무수히 하늘 위로 솟아오른다. 태양의 높이에 따라 시시각각 그 색을 달리 한다. 너울이 육지로 밀려드며 비명을 지른다. 수일, 수개월, 수년 동안 같은 행위를 반복하며 돌과 모래를 깎는다. 나는 그 행위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만 가까이 서서 물결을 관찰한다. 물 먹은 모래가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조개껍질은 흡사 보석과도 같은 색으로 빛난다. 금실 은실로 수놓은 듯한 윤슬은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얇은 비단처럼 바닥에 깔리는 파도의 끝자락은 때에 따라 붉은빛으로, 노란빛으로 풍부한 색을 자랑하며 흩어진다. 저 멀리 머리 위의 해가 수평선 너머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하자, 파도는 흡사 용암과 같이 들끓는다.


업화조차 재현하는 바다의 마법 by Seren Lee CANON EOS 90D / TAMRON 18-400mm 


   나는 여지없이 바다에서 푼크툼을 만나고, 그 강렬한 감각을 서둘러 사진과 간단한 스케치, 몇몇 어설픈 문장으로 기록한다. 지금 이 순간의 아우라는 복제할 수 없지만, 복제품을 통해서라도 줄곧 이 매료와 몰입의 순간을 떠올릴 수 있게. 힘을 뺀 채로 찰나에 몰두하다가, 그 감각에서 조금 깨어나면 있는 힘껏 기록한다. 상실의 과정에 불과한 내 인생에서 이런 경험은 값지다.

   나는 달변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말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은 무의식 중에 거짓을 내포한다. 나 또한 달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다. 눌변도 이런 눌변이 없다. 그렇기에 청산유수 달변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바다는 말이 없고,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침묵으로 저항한다. 그렇기에 믿을 수 있고, 경외를 느낀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삼켜버리는 포용력에 멈출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그 고요한 침묵이 언제나 그립다. 바다는 그저 보여줄 뿐이다. 천상의 빛부터 지옥의 업화까지.

   바다는 푸른빛이 아니다. 상대의 색을 먹는다. 맑은 하늘의 빛, 희고 검은 구름의 색, 황금빛 태양, 숲과 나무의 푸르름과 암색 바위. 수많은 색을 머금는다. 빛도 먹고 어둠도 먹는다. 청춘도 먹고 죽음도 먹어치운다. 보잘것없는 나의 색도 탐한다. 그렇기에 내가 어떤 색을 칠해도 용서해 주겠지. 그 사실에 큰 위로를 받으며 안도하는 순간. 이토록 무서우면서도 따스한 존재가 있을까.


   나는 죽음을 위하여 산다. 인간이 육체와 비물질적 존재인 영혼으로 나뉜다는 이원론을 믿지 않기에, 더욱더 죽음을 위해 산다. 그런 나는 바다를 만나면 여지없이 심장을 찔리고, 속절없이 그 앞에 무릎 꿇는다.

   바다는 나의 희망이자 절망이며, 삶이자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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