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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gi Jul 18. 2024

매일 죽어야 하는 사람


모든 생명체는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갑니다. 바로 죽음이라는 최종 목적지입니다. 대자연의 입장에서 죽음은 슬프고 허무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생물의 죽음은 또 다른 생물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사슴의 몸에 있던 원소들은 그를 사냥한 사자의 몸에 들어가 새로운 세포를 이룹니다. 한 인간을 이루고 있던 원소는 어느 날 동식물의 세포가 되고, 돌고 돌아 또다시 다른 인간의 일부가 됩니다.


누군가의 몸을 이루고 있던 물질이 내 몸의 일부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저는 지구의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낍니다. 지금은 잠시 나로 존재하지만, 나를 이루고 있는 물질은 곧 다른 무언가로 다시 세상에 존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파도가 되어 해안에 도착해 부서지는 삶을 삽니다. 그리고 파도는 바다의 일부로 존재할 뿐입니다. 바다로 돌아간 후에는, 다시는 똑같은 파도가 되어 육지로 올 수 없습니다. 삶은 단 한 번뿐인 소중한 여행인 샘입니다.


그런데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여행지에서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이곳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하고는 집을 짓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는 온갖 잡동사니를 채워 넣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에 여행의 마지막 날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배운 대로 과거에서 미래 방향으로 매일 시간을 셌습니다. 그런데 이 방식이 큰 착각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시간이 미래를 향해 무한히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나의 죽음은 오랜 시간을 넘고 넘어 저 멀리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여행 일정을 많이 낭비했습니다. 바로 내일 여행이 끝날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이제 시간을 거꾸로 세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제 또 하루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다행히도 오늘 하루가 나에게 또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생각했습니다. 나는 곧 죽는다. 얼마 뒤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자주 되새기는 것은 삶의 고통을 크게 줄여줬습니다. 매일 조금씩 더 여행이 행복해졌습니다. 이제 여행 일정을 낭비하는 날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이런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허무해서 자유롭습니다. 우리는 또다시 나로 태어나 전생을 평가받지 않습니다. 영원히 살아서 과거에 대한 무한한 후회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세상에 존재하다가 홀가분하게 떠나면 그만입니다.


유일하고 일시적인 것은 허무하지만 그 자체로 특별한 경험입니다.







내가 매일 생각했던 죽음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숨이 멈췄다. 심장 박동이 멈추고 혈관을 따라 몸 끝까지 전달되던 피도 그 흐름을 멈추었다. 곧이어 내 몸을 이루고 있는 37조 개의 세포도 호흡을 멈춘다. 온몸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죽음이 막 시작되었다.


삼일이 지나자 부패가 본격화되었다. 미생물이 내 몸을 분해하기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가스가 발생한다. 이는 신체를 부풀게 하고 피부를 변색시키며 악취를 풍기게 한다. 구더기와 온갖 곤충들이 들끓는다. 내 몸은 서서히 내가 기억하던 그 모습을 잃어간다.


나는 이 끔찍한 과정을 거쳐 곧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과정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인 후에 어떤 생각이 드는가? 두려움, 허망함, 후회, 슬픔, 안타까움, 잔인함 등의 감정이 덮쳐온다. 그래서 생각하기 싫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가끔 찾아오면, 머릿속 한 구석으로 보이지 않게 밀어 넣어 버렸다. 나는 이렇게 죽음을 잊고 살지만, 죽음은 매일 우리에게 빠르게 다가오는 중이다.


이렇게 죽음을 보이지 않게 잘 가려놓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 거라고 나를 위로했다. 후회 없이 미치도록 행복하게 잘 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들이쳤다.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다. "나는 오래오래 살 거야. 나는 특별해서 남들보다 더 오래 살거나 죽지 않을 수도 있어."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정말 괜찮을까?


방 안에 거대한 코끼리를 그대로 두고 외면했을 때, 나는 자유 공간을 잃었다. 답답하고 비좁았다. 내 방에서 쉬고 싶은데 자리가 없다. 죽음을 무시하고 사는 내 삶이었다. 아등바등 무언가를 위해 바쁘게 살아가지만, 삶은 자유롭지 못하고 답답할 뿐이다. 죽음을 직시하지 않으면 나는 자유를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죽음의 과정을 한번 더 읽어 보았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모두 평등하게 겪을 일이고 다가오고 있는 확실한 미래다. 인간은 무언가를 직시하지 않고 확인하기 무서워서 도망갈 때 두려움이 깊어진다. 그러나 막상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익숙해진 후에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되고 오히려 그것을 이용할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매일 죽음을 위와 같이 구체적으로 상상해야 한다. 관 속에서 자연에 의해 분해되는 내 몸을 상상할 때 죽음이란 존재를 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매일 이렇게 죽음을 떠올리고 하루를 시작하자, 어느 날 삶은 여행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마음에 더 와닿게 되었다. 여행지를 돌아다닐 때처럼 내 눈앞에 있는 모든 것들이 생생하게 느껴지고 기억하고 싶고 순간이 소중해진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고민과 문제들이 정말 그렇게 심각한 것인지 되묻게 된다. 세상 어떤 문제가 죽음보다 심각할 수 있단 말인가? “




다음 글에서는 내가 살았던 세상이 어떤 곳이었는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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