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몇 년 전 처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단유전학이 그것을 저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유전학적으로 인류의 기원을 찾다 보면 초기 인류는 아프리카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부터 아메리카 대륙까지 자유롭게 퍼져나갔죠.
당시 인류는 대자연에 속한 자유로운 존재였습니다. 비록 수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고 삶은 짧았지만,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과 같았습니다.
그들이 갖고 있던 자유는 자연이 준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민주주의’라는 단어 앞에 ‘자유’를 붙이느냐 마느냐 싸워대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머나먼 조상들의 삶을 상상하다가 문득 내 삶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는 감방 안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자유는 어딘가에서 대가 끊겼습니다.
인류는 자유를 머금고 있는 자연의 법칙을 대신할 법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고는 스스로 구속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죄인과 같은 삶을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24시간 법의 감시를 받습니다. 내가 동의를 한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법전은 본 적도 없습니다. 내가 의식도 없는 아기였을 때 강제로 지장을 받아 놓은 것일까요?
잠시 갑갑한 이곳에서 벗어나 여행을 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완전한 해방감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며칠 뒤에 돌아가야만 할 감방이 자꾸 머릿속을 해 집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자연과 격리되어 인류가 만든 문명사회에 갇혀 있습니다.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위로하지만, 실제로는 이 사회를 벗어나 생존할 수 있는 자유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수감자로 이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더 예쁜 감방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감방이 내 소유라는 종이는 있지만, 우리 수감자들 이외에 우주의 어떤 존재도 그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쁜 옷을 입고 특식을 먹으며 다른 수감자들보다 덜 힘든 노동을 하려고 애씁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로의 물건들을 가지려고 발버둥 치지만, 우리는 모두 출소일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모든 것을 두고 나가야 합니다.
인간을 제외한 지구의 어떤 생물도 이런 것들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존재에만 몰두합니다. 인간보다 어리석은 생물체는 이 지구에 없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감옥에 있는 수감자들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감옥에서 나오는 것, 바로 빠른 출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물리적 시간을 앞당길 수는 없습니다. 사실은 그럴 수 있지만 그것은 고려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우리에게는 상대적 시간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가장 쉬운 예로 주말을 들 수 있습니다. 평일보다 주말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갑니다. 왜냐하면 재미있는 것에 몰입하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시간은 같지만 우리는 시간이 매우 빨리 간 것처럼 느낍니다.
이제 저의 다음 과제는 이 사회라는 감옥을 나갈 때까지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가 바로 직업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직업을 선택할 때 많은 요소를 고려합니다. 우리 수감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순서대로 보자면 돈, 사회적 지위, 안정성 정도가 있습니다. 이것들이 있어야 아름다운 감방에 들어갈 수 있고 다른 수감자들의 부러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정작 중요한 '상대적 시간을 이용한 출소일 앞당기기'와는 별로 연관성이 없습니다. 그 말은 수감생활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감옥을 관리하는 무시무시한 간수들 때문입니다.
몰입할 수 없는 직업을 선택하게 되면, 단순히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은 정신적 고문을 당하는 존재들입니다. 이 정신적 고문은 몰입하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간수들은 몰입하지 않고 있는 수감자들을 귀신같이 찾아내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고문 도구로는 끊임없는 과거에 대한 후회, 나에 대한 의심, 미래에 대한 두려움, 오늘 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 등 무한히 많습니다. 그들은 아무 감정 없이 우리를 무자비하게 괴롭힙니다.
그래서 우리는 간수들이 나를 찾아낼 수 없게,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마저도 잊을 정도의 일을 내 직업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저에게 슬기로운 수감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직업 선택의 단 하나의 기준이었습니다.
연구자는 높은 연봉을 받는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 가끔은 주말이 더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통을 느낄 새가 많이 없었고, 그것이 좋았다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수감자로 살면서 출소일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빠르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우리는 계속 무언가에 몰입할 수는 없습니다.
반드시 휴식이 필요하고, 그래서 몰입의 공백이 발생합니다. 그 말은 간수들의 무자비한 공격을 받는 시간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우리는 수감자이기 때문에 간수들을 공격해서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더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는 있습니다. 방어를 위해서는 당연히 수련이 필요합니다.
저는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적절한 수련을 통해 마음속에 매일 작은 돌 하나씩을 쌓아갔습니다. 이 돌이 모여서 언젠가 돌담이 되면 우리 모습이 가려지고, 간수들이 우리를 찾아오는 시간도 늦춰지게 됩니다. 마침내는 하루를 마치고 잠들기 전까지 우리를 찾지 못하는 날도 생기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을 보기 시작한 후로 저는 줄곧 수행자로 살아왔습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보기에 불쌍한 비관주의자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 삶은 평온했고 마음의 고통이 적었으며, 그래서 행복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제가 이런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수련했는지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