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하고 단순히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중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칭다오는 맥주만 유명한 줄 알았지 이렇게나 많은 주얼리 회사들이 있는지 몰랐고, 나는 북유럽 브랜드에 수출하는 주얼리 회사에 입사했다. 아는 중국어라고는 谢谢 씨에씨에가 전부였던 내가 이제 중국어로 일을 지시한다. 와우
5년이 지나 덴마크, 프랑스, 미국 기타 16개국의 브랜드를 핸들링하는 테크니컬 디자이너가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의 이름을 모른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 일은 꽤나 흥미로웠기에 괘념치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영국으로 수출하는 회사의 테크니컬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2번의 회사가 바뀌었지만 내가 맡고 있는 브랜드는 변하지 않았다. 이제 바이어들은 내 영어 이름이 아닌 한국 이름으로 나를 부른다. 어려운 디자인에 대해서는 샘플링을 하기 전에 아이디어를 묻는 메일이 오기도 한다. 회사가 바뀌어도 맡은 브랜드가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는 그만큼 희소한 사람이 되었다는 얘기이다. 뭐 욕심 없어서 그 정도에 만족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꼭 유명한 브랜드의 디자이너가 아니라도 실망하거나 자존감이 낮아질 필요는 없다. 내가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존재를 나타낼 것인지 그거면 사실 이 직업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충분하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얘기를 해주고 싶었다. 혹여 자기가 속한 브랜드가 또는 회사가 유명하지 않아서 자존감이 낮아지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