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아라리움 뮤지엄
나랑 하는 데이트 첫날.
데이트 첫날은 역시 설렘이지.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기분이 좋다. 가뿐하게 이불을 밀어내고 일어났다. 미술관과 갤러리를 들락거릴까, 한가로이 거리를 산책할까, 아니 카페에 앉아 있기만 해도 좋겠다. 어제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는 아침이지만,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여유로운 마음 덕분인지 아침 일과도 달콤하게 느껴진다. 재빨리 가족들을 출근, 등교시키고 드디어 혼자 남았다.
데이트 코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디에 갈 것 인지, 무엇을 할 것 인지, 점심은 어디서 먹을지, 카페는 어디에 갈지. 아무것도.
그래도 두 가지는 정해본다.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 그리고 낯선 곳에 나를 데려다 놓는 것.
평소에 아끼느라 잘 입지 않던 보드랍고 고운 회색빛 얇은 니트에 윤이 반질반질한 플랫슈즈를 신자. 화장대에 앉아 데이트를 맞이한 주인공을 위한 액세서리를 고르는 시간, 어색하다고 느낄 정도로 오랜만의 데이트다.
준비하는 과정부터 데이트는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함께하는 사람의 취향을 고려하여 옷을 고르고 액세서리를 고른다. 예뻐해 줄 그의 반응을 상상하며 화장한다. 떨어져 있어도 함께 하는 것 같은 시간이다. 물론, 오늘은 나와의 데이트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나만의 취향을 고려하여 고르면 된다. 누구의 생각도 고려하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시간, 흔치 않은 일인 만큼 소중한 시간이다. 엄마의 결혼 예물을 다시 디자인해서 만들었던 작은 블랙 사파이어 귀걸이와 남편에게 첫 생일선물로 받았던 진주가 딸랑이는 반지를 착용한다. 엄마와 남편 생각이 잠깐 났다. 내겐 혼자인 시간마저 온전히 혼자일 수 없게 만드는 가족이 있다. 오늘의 데이트는 어떤 의미에서는 가족의 흔적이 짙게 묻어있는 주변으로부터 도망하려는 시도는 아닐까.
5월, 바깥은 이미 햇빛으로 가득하다. 오전부터 따가운 햇살은 초여름으로 접어들 준비를 하는 듯하다. 분주하게 준비를 한 탓일까,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 손으로 부채질하며 광역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자, 이제 생각해 보자. 어디를 갈까. 버스에 오르고 나서야 행선지를 생각하다니, 참 나답다. 이제야 나를 찾은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계획 없이 어딘가를 가기가 어렵다. 즉흥적으로 무언가를 해보기를 좋아하는 난, 늘 뒷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누구도 고려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 서울행 광역버스를 탔으니 서울 안에서 골라본다. 창밖으로 작고 오밀조밀한 주택들과 그 사이의 좁은 골목길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에 왔구나.
서울은 오래된 도시만이 갖고 있는 고즈넉함에 다양성의 활기를 동시에 느낄 수 있어 매력적이다. 시원하고 넓게 뚫린 신시가지의 도로도 편리하지만, 서울만이 가진 휴먼 스케일의 좁은 골목과 낮은 건물들 사이로 들어가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후암동 능선의 밀집된 주택들의 모습에 넋을 잃고 창밖을 바라본다. 결정했다. 오늘은 서울의 골목길을 거닐기로 한다.
버스는 어느새 도심으로 들어가 종로를 지나고 있다. 어디에서 내릴까, 고민하고 있는데 유리창 너머 커다란 종로빌딩이 보였다. 재빠르게 하차 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고 내리자마자 후회했다.
정류장 이름을 보니, 우리은행 종로지점이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의 오전 11시는 산책자의 여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차도는 지나다니는 차들로 바쁘고, 인도엔 사람이 부재했다. 조금의 사람들은 정장을 입고 있는 회사원들이 전부였다. 먼저 오는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는 조계사를 지나, 안국동 사거리 쪽으로 방향을 튼다. 인사동 거리와 삼청동 초입으로 오니, 거리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대부분이 학생이나 연인들, 관광객들로 보인다.
인사동은 학예사 업무를 시작했던 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십 년도 더 지난 그땐 학예사로서의 사명감이 충만했던 시절이다. 낮은 임금에 주말 출근도 있었지만, 일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꼈다. 학예사를 평생 직업으로 생각했던 당시의 난 이렇게 글을 쓰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십 년 전, 일터였던 이곳에 슬렁슬렁 놀러 나온 십년 후의 나는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을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나이도 먹었지만, 여전히 그때의 마음이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내가 속한 장소와 상황은 너무나 달라졌으니, 나 또한 달라졌다고 볼 수밖에 없으려나. 허망하기도, 재미있기도 한 잠깐의 회상 끝에, 입가에 혼잣말이 맴돈다. 역시, 인생은 알 수가 없어.
여전히 그림 읽기를 좋아하고, 인사동 거리를 손바닥처럼 훤하게 꿰고 있는 건, 조금은 학예사의 세포가 남아있어서가 아닐까. 아무것도 남김없이 사라져 버린다는 건 생각 속에서나 가능한 거니까. 내 몸 어딘가에 남아있을 학예사의 세포들아, 지금이야. 깨어나렴.
인사동 입구를 지나니, 금세 현대 사옥이 보였다. 조금 더 가면 창경궁을 지나 대학로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 같았다. 하차 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렸다. 현대 사옥 옆에는 장대한 담쟁이 왕국, 아라리오 뮤지엄이 있다.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정식 명칭은 그렇다. 건축 설계사무소였던 공간 사옥이 미술관으로 재탄생된 곳이다. 봄날에 온 아라리오 뮤지엄은 온통 초록색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푸르르다. 건물 두 개가 공생하듯 붙어있는 이곳은 새로운 공간 사옥과 옛 공간 사옥이 나란히 서 있다. 유리와 철근, 노출 콘크리트로 매끈하게 지어진 신사옥과 벽돌과 전돌을 주재료로 하여, 담쟁이덩굴로 덮여있는 구사옥의 건물은 서로 다른 재료들이 충돌하며 복잡함과 다양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서울의 이미지를 그대로 나타내는 건물이 아닐까. 두 건물이 감싸고 있는 중정에는 오래된 석탑 하나와 한옥이 있는데, 이것을 보니 생각이 더욱 확고해진다. 현대 서울에 존재하는 여러 시대의 층위를 건축물로써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아닌가.
2014년에 개관한 아라리오 뮤지엄은 현대 미술을 전문으로 전시하고 있다. 권오상, 백남준, 앤디 워홀, 데미안 허스트, 신디 셔먼, 키스 해링, 바바라 크루거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담쟁이에 감탄하며 서둘러 입구로 걸어가는데, 중년 여성분 세 명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하늘을 배경으로 걸어놓은 네온사인 작품 앞에서였다. 내부 공간이 오밀조밀하고 좁은 아라리오 뮤지엄의 특성상, 모르는 사람과 함께 관람하면 민망할 것 같아 서둘러 발권하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 후로 세 명의 여성분과는 마주치지 못했다. 그만큼 아라리오 뮤지엄은 내부가 미로처럼 설계되어 있다. 한 공간에 한 작품을 설치한다는 모토에 맞게, 작은 방과 화장실, 복도, 코너 등 곳곳에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분명 함께 들어온 이들이 있었는데(중년 여성들을 비롯하여 일본인 커플도 있었다), 관람하다 보니, 미술관에 나 혼자 밖에 없는 듯한 느낌이 들어, 점차 무서워졌다. 현대 미술 특유의 특이성과 괴기스러움, 이해하기 어려운 느낌과 공간이 주는 이질적 느낌이 나를 두렵게 했던 모양이다. 한편으로는 익숙한 것들 사이에서 지긋지긋하게 느껴온 편안함 대신, 새로움과 낯설음이 주는 신선한 충격에 즐겁기도 했다. 인사동, 삼청동에서 갤러리를 들락거리며 현대 미술을 자주 접해 오던 나인데, 이 정도에 충격이란 표현을 쓰다니. 자신이 변하는 것도 모를 만큼 오랜 시간을 집에만 있었나 보다.
미술 공부하러 온 것도 아닌데, 심각하게 볼 필요가 있을까. 오늘은 나와의 데이트 날. 데이트란 자고로 가볍고 가벼워 붕 떠야 하는 법이니, 전시는 잠깐 보고 옆의 한옥으로 향했다. 한옥 건물은 프릳츠 커피의 카페로 쓰이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에도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몇 보였다. 미술관의 음습했던 기운을 떨쳐내고자, 나도 따뜻한 햇살 아래 둥근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정수리가 뜨거워져 갔지만, 괜찮았다. 내겐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있으니까! 딸각딸각. 찰랑찰랑. 얼음이 부딪치며 내는 청량한 소리를 들으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을 바라본다. 그의 테이블은 작은 스케치북과 색색의 색연필로 가득 차 가뜩이나 작은 테이블이 더 작아 보였다. 어깨로 가려진 스케치북에는 앞에 보이는 석탑을 그렸는지, 아니면 한옥의 둥근 처마를 그렸는지 알 수 없었다. 상관없었다. 나 역시 작은 노트를 꺼내 무언가 적는다. 그가 그리고 있을 그림을 상상하면서, 조금 전 보았던 전시를 회상하면서. 그 역시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알 수 없겠지. 나란한 테이블에 앉은 두 사람이 서로를 궁금해 하며, 각자의 세계에 빠져든 모습은 꽤 근사한 풍경이지 않을까. 이곳이 낯설었던 내가 이제는 이곳 풍경의 한 폭을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낯섦은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기에 필요 충분한 조건이었을까. 적어도 지금의 내겐 필요하다.
어쨌거나 아이들 없이 거리를 산책하는 일은, 걷는다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즐겁다. 어깨 위에 앉아있던 묵직한 가방이 사라지고, 아이들 없이 양팔이 자유로운 지금, 종이 인형이 된 것처럼 날아갈 듯 가볍다. 오늘의 일탈 아닌, 일탈을,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데이트의 시간을 지속해야 할 이유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