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국제 갤러리, 아니쉬 카푸어 전
서울의 우리은행 종로지점 버스 정류장은 흥미롭다. 우선 광역버스와 시내버스 정류장이 같은 곳에 있어서, 멀리서 온 승객과 근거리의 승객이 섞인다. 지리적으로는 종로구와 중구의 경계에 있다. 자세히는 종로 1가와 을지로 1가, 그리고 인사동과 안국동이 근처에 있다. 신도심과 구도심이, 빌딩 숲과 갤러리가 맞대고 있다. 거리에는 사증을 목에 건 회사원과 캔버스를 옆구리에 낀 예술가가 동시에 교차한다. 배낭 멘 외국인과 비닐봉지를 든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연스럽게 공존한다.
정류장 근처 카페에 앉아 거리를 바라본다. 재미있다. 동네에서 느껴보지 못한, 서로를 모르는 군중 속에서 피어나는 자유다. 버스를 타고 달려온 보람이 있다. 비로소 숨통이 트인다.
카페에서 나와 종로 방향으로 걷는다. 앞으로만 걸어가면, 흥미로운 거리의 시퀀스를 즐길 수 있다. 청계천을 지나 종로타워가 있는 사거리가 나온다. 거리엔 점심시간을 맞은 직장인들로 가득하다. 그들의 발걸음에 맞춰 나도 계속 앞으로 걸어간다. 조계사 부근에 오면, 금세 불교용품 상점에 둘러싸이고, 이어서 인사동 사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건넌다. 눈앞엔 열린 송현 녹지광장이 펼쳐진다. 잠시나마 탁 트인 공간에 마음을 뺏긴다. 그러나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단풍이 들기 시작한 덕성여중과 여고 사이의 좁은 가로를 걷는다. 돌담을 마주한 가로에는 조용한 바람에 낙엽들이 소리 없이 흩날린다. 거리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사람들이 북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삼청동. 작고 오밀조밀한 가게들을 지나, 멀리까지 걸어본다. 너른 잔디밭이 포근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옆에 끼고 계속 걷는다.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걷다 보면, 건물 끝에 지붕 위를 걷는 여자가 보인다. 국제 갤러리다.
국제 갤러리에서는 아니쉬 카푸어 전이 진행 중이었다. 인도 출신의 현대미술가 아니쉬 카푸어는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의 클라우드 게이트란 작품으로 유명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간들에 환경조각품을 남겨놓은 아니쉬 카푸어를 처음으로 만났던 것은 2012년 리움에서였다. 11년 전, 리움에서 했던 개인전을 통해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을 때는 충격적이고 선정적인 느낌을 받았었다. 거대한 조각품이나 구조물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강렬한 색채에, 끈적이거나 날카롭거나 거칠거나 하는 불쾌감을 주는 질감을 갖고 있었다. 보기 싫을 만한 것들을 모아서 거대하게 만들어 놓은 후, 전시장에 총집합해 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작품 앞에 서면, 거대함과 육중함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으면서 묘하게 끌리는 것이었다. 당시에 아니쉬 카푸어 전시를 보고 난 후 받았던 신선한 충격은 오래도록 남아, 큐레이터 일을 하는 데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이번 전시 역시, 아니쉬 카푸어만의 명상적인 조각품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명상적인 조각이란 무엇일까? 아니쉬 카푸어에 잘 붙는 수식어다. 형태를 알 수 없는 조각품과 그에 연관 없는 제목을 붙여놓은 그의 작업은, 무언가를 설명하지 않은 채로 그저 느끼도록 한 것 같다. 카푸어의 작품은 바라보는 동안 전시장이 아닌, 먼 우주의 행성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잠시나마 내가 있는 장소와 시간을 잊는 경험, 명상과 유사하다. 전시장을 거닐다보면, 어느새 명상하듯 아무런 생각 없이 마음을 비우게 된다. 카푸어만의 가장 검은 검은색을 바라보면, 블랙홀이 이런 것인가 싶어진다. 이것에 비하면, 내 검은 마음은 이 만큼 짙어지지 않았어, 라고 스스로 위안을 해보기도 한다.
K3 관에는 거대한 물감 덩어리 같은 작품 4개가 무심한 듯 놓여있다. 물감의 거대한 덩어리 같기도, 우주에서 떨어진 운석 덩어리 같기도, 토해낸 핏덩어리 같기도 한 물체들이다. 거대한 덩어리, 풀리지 않는 마음속 응어리를 형상화한다면 이러할까. 짜놓고 칠해지지 못한 물감들은 굳어서 말라비틀어진다. 자신의 몫을 해내지 못한 채 돌덩어리가 되어버린다. 쓰지 못한 물감 덩어리는 펼쳐보지 못한 마음, 지나가 버린 시간들을 생각나게 한다.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전시관에서 나오다가, 정원에 놓인 이우환의 작품 <관계항, Relatum-Dwelling>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녀를 보았다. 한복을 곱게 입은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큰 가방에 청바지를 입은 엄마였다. 가을날 고궁 산책에 나왔다가 갤러리에 들른 걸까. 거대한 철판이 돌들의 지붕이 되어주고, 우산이 되어주는 것 같은 이우환의 작품은 제목처럼 주변 환경과도 조화로웠다. 만약 작품명이 적혀있지 않았다면, 원래부터 그곳에 있는 자연의 일부로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작품 앞에서 발랄한 포즈를 취하며 모델이 된 아이와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어주는 엄마. 두 사람의 움직임은 모든 것이 정지된 이곳에 생동을 불어넣고 있었다. 작품과 함께 그들을 바라보며,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엄마가 있어, 딸은 한복을 입고 가을 정원에서 사진을 남길 수 있고, 딸이 있으므로 엄마는 아름다운 것들을 더욱 아름답게 느낄 수 있다. 엄마와 딸의 관계란, 존재만으로 기쁨이 되어주는 관계가 아닐까.
오늘의 전시는 잠시 일상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은 그간에 갖고 있던 마음속 고민과 불만들을 떠오르게 해주었고, 직면하게 해주었다. 덕분에 잘 바라보고, 잘 놓아줄 수도 있었다. 행성의 표면 같은 검은색 덩어리 <Moon Shadow>에 나의 검은 마음을 놓고 온다. 전시장 문밖을 나선다. 들이쉬는 공기가 조금 가볍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