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가는 길에서부터 설렘과 감탄을 자아낸다. 숲으로 둘러싸인 길을 10분 이상 드라이브 하게 된다. 서울대공원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오거나 리프트를 타고 호수를 가로질러 오는 방법도 있지만, 대개는 차를 끌고 오게 된다. 셔틀버스는 수고롭고, 리프트는, 혼자서 리프트는 상상하기 어렵다. 미술관에 대략 도착한 것 같아 보여도, 내비게이션에서는 여전히 10분이 더 걸린다고 나와 있다. 굽이굽이 산길에 소요되는 시간이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자.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는 시간이다. 10분은 미술관에 오기 전, 일상에서의 어수선하고 너저분한 마음을 차분히 정돈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준다.
Taylor Swift의 <Lover>를 들으며 달리는 길, 낙엽을 떨구는 앙상한 겨울나무들이 퍽 낭만적으로 보인다. 도로엔 차 한 대, 나뿐이다. 역시 완전히 혼자서 어떤 공간에 있게 되면, 시공간을 잊고, 자신도 잊고 잠깐은 충분히 이 곳만의 정서에 파묻힐 수 있는 것 같다. 이것이 미술관이 내게 줄 수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이 아닐까.
숲 속 캠핑장 근처의 주차장에 주차를 한다. 자동차 앞 유리창으로 산이 담겨진다. 차 문을 열고 나가니, 산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숨 쉴 때마다 들고 나가는 공기가 차갑고 깨끗하다. 산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조금만 걸어 내려가면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계단길이 나온다. 계단까지 가는 길엔 양 옆으로 호수와 정원이 있는데, 정원 중간 중간에 나무처럼, 바위처럼 불쑥 작품들이 놓여있다. 풀 숲 사이로 빼꼼 고개를 내민, 조각 작품들이 귀엽다. 오랜 시간 밖에서 눈과 비, 바람을 맞으며 나무처럼 살아왔을 작품들이다. 얼핏 보면 지나칠 만큼 자연 속에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미술관에 오면 감각적으로 예민해진다. 평소와 다른 상황 -조용함, 아무도 없음, 집으로부터의 물리적 거리감, 작품으로 둘러싸인 낯선 분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미술관에 오기 전에는 기본적으로 전시의 작가, 작품에 대해 공부하고 가지 않는 편이다. 미리 공부하고 가는 것만이 기본이 되는 걸까. 나처럼 공부하고 가지 않는 것에서 얻어지는 것도 많을 수 있다. 일단, 전시를 볼 때 감각이 생생히 살아난다. 잘 모르는 작가에 대해, 전시장에 쓰인 설명글을 읽으며, 작가의 생애에 대해,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작품에 담긴 철학, 감정들을 함께 따라가 본다. 그렇게 흐름에 몸을 맡기듯이 따라가다 보면, 미술관 전시에서 느끼게 된 감상은 온전히 그날, 나만의 감상으로 남을 수 있다. 조금 더 궁금한 점이 생기거나, 더욱 자세히 알고 싶어진다면 돌아와서 추가로 공부를 한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의 몇 시간은 여행하는 것과 비슷하다. 여행지에서의 즉흥적인 감상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데 집중하기 위해 계획을 구체적으로 짜지 않고, 그저 그날의 흐름에 맡기는 편인데, 미술관에서의 경험도 그와 유사하다. 여행지에서 새로운 것을 만나면서 느껴지는 감각의 날선 느낌, 낯선 느낌.
미술관에서는 별게 다 궁금하다. 전시장에 찾아온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한다. 특히 혼자 온 사람들에게 궁금증이 이는데, 혼자 온 만큼 대화가 없으니 정보가 없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이신자 전시회에서는 중년의 여성이 자신보다 훨씬 더 나이가 많은 여성과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쩌다보니, 작품을 보는 속도가 비슷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알고 보니 모녀사이였던 그들은 자수와 태피스트리를 공부하고 있는 중이었다. 작가와 작품에 대해 엄마에게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설명하려던 딸은 도리어 엄마의 오랜 경험과 노하우에서 오는 지식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한국의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시에서는 혼자 온 헌팅캡을 쓴 여성을 보았다. 유독 유영국 작가의 작품 앞에서 오래 머무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걸친 것 없이 단출한 차림의 그녀는 유영국 작품 앞에서는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 전화를 꺼내더니, 사진을 찍기도 했다. 유영국 작가의 작품이 연달아 배치된 곳에서는 중앙에 있는 벤치에 앉더니, 오래도록 작품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고보면, 옷차림새도 유영국의 작품을 닮아있었다. 모더니스트 유영국의 작품처럼, 모던하고 심플하다. 여유 있는 걸음걸이와 느긋한 자세까지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다.
점심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는 회색빛 털 자켓을 입고 온 예쁜 여성이 옆자리에 앉았다. 나처럼 그녀도 혼자였다. 나는 이신자 전시회의 카탈로그를 보고 있었고, 그녀는 기하학적 추상미술 전시의 카탈로그를 보고 있었다. 왜 혼자 전시회에 왔을까? 범상치 않은 옷차림의 그녀는 디자인쪽 계열에서 일을 하는 사람일까? 그렇다면, 일의 영감을 받으러 온 것일까?
평소에도 볼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미술관에서 보는 사람들은 왠지 더 특별한 느낌을 준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그들은 조용히,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실제로 말이 없다), 무언가 굉장한 걸 숨기고 있는 것 같은, 존재감이 있다. 그들에게서는 이야기가 줄줄 흘러내린다. 내가 잘 모르는 공간에 와서, 감각의 피부가 예민해진 탓일까. 그래서 정말 별 게 아닌 것 까지 예민하고 특별하게 다가오는 걸까? 아니면, 정말 독특한 사람들만이 혼자서 미술관으로 모여드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문득 미술작품 앞에 홀로 서 있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 아침, 우유에 씨리얼을 말아 먹고, 부지런히 두 아이를 학교로, 어린이집으로 보낸 다음, 작은 노트와 펜을 챙겨 미술관으로 출근한 나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사람인가? 숨겨둔 무언가가, 사람들을 홀릴 만한 재미있고 대단한 무엇이 있는가?
아무것도. 그저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렇다. 미술관은 대단한 곳이 아니다. 그저,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와서 그림을 보는 곳일 뿐이다. 그러나 미술관은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잠시나마 그런 착각 속에서 구름위를 걸어가는 느낌을 가져볼 수 있는 곳이다. 비일상, 일상을 벗어난 것 같은 감각을 주는 곳, 낯선 감각을 주는 곳이 미술관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