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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ry Aug 04. 2020

나에겐 너무 어려웠던 영국

25살, 지구에 발도장 찍는중

   혼자 나가는 해외여행은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은 너무나 많았다. 언어부터 시작해서, 음식이 입에 맞는지, 물갈이를 하지는 않는지, 유심칩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 정말 많았는데, 그중 내가 가장 신경이 쓰였던 부분은 바로 "시차 적응"이었다. 


 

숙소 방 창문에서 보이는 런던 시내의 풍경

  나는 대부분 한국과 크게 시차가 나지 않은 나라들을 여행했는데 그러다 보니 시차적 응이라는 말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했었다. 가까이는 일본, 멀리는 인도를 다녀왔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시차가 나지 않았고, 인도는 3시간 30분 정도 시차가 존재했지만 인도에서의 여행은 몸이 피곤해서 인지 혹은 내가 좀 더 어렸기 때문인지 시간 때문에 어려움은 없었다. 머리를 침대에 누이면 잤고 아침이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소음 덕에). 하지만 영국과 한국의 시간 차이는 8시간, 하루 1/3의 시간 차가 있었다. 서울이 오전 8시일 때 영국은 자정인 시간, 서울의 사람들이 아침을 준비할 때 영국의 사람들은 잘 준비를 한다. 그렇게 내가 영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해야 했던 것은 물갈이도 음식 적응하기도 아닌 시차 적응이었다. 


   

숙소 앞 풍경

시차 적응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이다. 시차에 빠르게 적응하려면 최대한 잠을 안 자고 버티다 잠들기라고 한다. 새벽시간에 잠이 안 와 뜬 눈으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데 그럴 땐 날을 새고 버티고 버티다 밤 10시 이후에 잠이 드는 게 좋다는 조언을 받았다. 내가 런던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처음 혼자 타는 비행기에 그 어렵다던 영국 입국 수속을 받고, 숙소에 가기 위해 런던 지하철을 타고, 30분 동안 추위에 떨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기절하듯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이게 웬걸?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었는데 눈이 똘똘하니 잠이 안 온다. 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미 12시를 지나고 있는데 몸은 한국에서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지 잠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핸드폰도 만지작 거려보고, 양도 세보고,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써보기도 하고 잘 수 있는 방법들을 동원해서 잠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했건만 실패.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모든 걸 포기하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가만히 누워있다 보니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간신히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언제 잠들었지? 하고 사간을 보니 8시가 채 되지 않았다. 이왕 떠진 눈이니 무거운 몸을 일으켜 산책이라도 나가자 생각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런던의 2층 버스

   처음 나서본 영국의 거리는 너무 맑은 날씨와 이국적인 건물들과 사람들로 가득 차있었다. 골목에 들어서서 처음 본 차가 벤틀리에 재규어였다. 와 영국은 다르구나. 우리나라에서 고급 승용차로 솝꼽은 차들을 첫날부터 그것도 골목에서 마주하다니. (하지만 위와 같은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아마 내가 갔던 곳이 부촌이었던 것 같다.) 아침에 운동복을 입고 달리시는 분들고 계시고 출근하시는 듯 정장 차림으로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TV나 영화로만 보던 런던의 2층 버스를 처음 마주했을 때는 '내가 길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저 2층 버스는 꼭 타보겠다.' 다짐하기도 했다. 그렇게 맑은 하늘에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린다. 해가 이렇게 쨍쨍한데 갑자기 비가? 우산을 가져오지도 않았고 일기예보에도 저녁에 비 소식은 있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비가 내릴 줄 몰랐던 나는 다급히 COSTA 커피가게 앞 처마(? 차양막?)로 몸을 피했다. 

영국 날씨가 자기 마음대로라는 이야기는 블로그에서 종종 보았긴 했지만 이렇게 맑은 하늘에 비를 뿌릴지는 몰라서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나와 같이 비를 피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 틈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잠시 뒤 비가 그치는 것을 보고 근처 마트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서 세인트 제임스 파크로 향했다. 







세인트 제임스 파트의 모습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공원에서의 점심이었건만, 잔디가 다 젖어 앉지도 못하고 벤치에 엉덩이만 살짝 걸친 채 공원 앞 연못을 유영하는 오리들과 다양한 동물들을 보며 점심을 해결했다. 혼자 온 여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밥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식당에 들어가서 주문을 하면 혼자 먹기에 양도 많았고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볼 수 없다는 점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때부터는 동행을 구하기로 다짐했다. 혼자는 사진도 못 남기고 밥 먹을 때도 서러우니 다른 사람들과 같이 다닐 수 있도록 해야겠다 다짐헀다.


   대게 유럽여행을 하는 분들은 유랑이라는 네이버 카페를 사용하여 동행을 구한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그러한 정보가 없어 동행을 어떻게 구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던 찰나 나에게도 혼자가 아닌 동행이 생기게 됐다. 


   시차적 응이 덜되어 이른 점심을 해결하고 잠이 가득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했다. 짧은 낮잠을 청하고 저녁시간이 돼서 숙소 식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는데 다행히 식사시간에 맞추어 다른 손님들도 모이기 시작했다. 다 같이 먹는 저녁, 이런저런 이야기 꽃이 피우기 시작했고 각자의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말하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런던의 추위가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는지 다들 런던의 날씨가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꽃피웠고 다들 스위스를 갈 예정이거나 다녀온 사람들이라 따뜻한 옷이 있었다. 나만, 따뜻한 옷이 없는 상황. 이러한 상황을 이야기하고 옷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하니 다들 하나같이 건강이 최고라고 내일 당장 사라는 조언을 해주었다. 하지만 첫 여행에 영어 울렁증을 가진 내가 런던 시내로 나가 옷을 살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 숙소에 묶고 있던 지연 누나가 함께 옷을 사러 가준다는 이야기에 격하게 반기며 같이 가자는 말을 꺼냈다. 


   그렇게 다음날 나는 나의 첫 여행 동행자와 함께 옷을 사러 향했다. 런던의 시내, 피카딜리 서커스로 향하기 위해 고대하던 2층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2층 운전자 바로 위의 런던의 정경이 보이는 창 앞에 앉아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처럼 런던 시내를 구경했다. 도시 곳곳에 큰 나무들과 공원들의 모습을 보고 언제 지어졌을지 모르는 오래된 건물들 틈으로 런던을 마구 느끼며 말이다.


   피카딜리 서커스로 가는 길 지연 누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럽여행을 얼마나 하는지, 왜 혼자 왔는지, 런던에는 얼마나 있는지, 어떤 옷을 살 건지 등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누나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미 꽤 오래 런던에서 살고 있었던 누나는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의사면허를 취득한 세상 멋진 분이셨다. 이런 멋진 사람이랑 함께 옷을 사러 간다니! 영어가 짧았던 나에겐 정말 엄청난 행운이었다. 피카딜리 서커스에 도착하니 영화에서 보던 거리와 스크린들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뉴욕 타임스퀘어와 비슷한 느낌의 이곳을 실제로 걸어 볼 수 있다니!(실제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거리들이 몇 군데 있다. 도쿄의 시부야, 뉴욕의 타임스쿼어, 상해의 와이탄 거리, 런던의 피카딜리 서커스 이렇게는 내가 진짜 꼭! 가보고 싶은 거리 들이었다. 드디어 나의 소원 하나를 이루는 날이었다. 피카딜리 서커스 전광판에 뜨는 삼성과 LG의 광고를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며 지연 누나의 도움을 받아(누나 아니었다면 정말 감기로 여행을 다 망쳤을지도 모른다.) 무사히 옷을 구매할 수 있었다.

피카딜리 서커스


   런던에서 또 한 가지 어려웠던 것은 도로와 교통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차선이 반대라는 점, (영국에서 내가 직접적으로 운전을 하진 않았지만) 차선을 따라 가는 것이나, 신호를 건너는 것 (신호를 건너려면 신호등에 있는 버튼을 클릭해야 신호가 바뀐다.) 어떠한 상황에도 경적을 울리지 않는 차들(영국에서 경적소리를 들어본 건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였다.), 엄청나게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들이 있었다. 낯선 환경과 우리나라와 다른 도로체계 때문이었지만 이 마저도 2~3일이 지나니 쉬이 적응이 되었다.


   런던에서 날씨도, 음식도, 옷도, 시차도 하나도 제대로 예상하지 못한 채 어렵게만 느껴졌던 환경들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며 하나씩 경험해보고 다름을 배우고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길을 건널 때 누르는 버튼이며 어딜 가든 챙기는 우산과 간이 전혀 되어있지 않던 영국의 음식들(음식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해보자), 이제야 비로소 여행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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