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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ry Aug 06. 2020

꿈의 구장, 스탬퍼드 브릿지에 가다.

25살, 지구에 발도장 찍는중

   내가 기억이 있을 때부터 아버지는 축구를 좋아하셨다. 그런 아버지를 따라 종종 축구를 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축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축구를 하는 사람과 축구를 보는 사람. 나는 두 가지 모두 좋아하는 편이다. 


   언제 축구를 처음 했느냐는 질문에는 사실 답을 할 수가 없다. 언제 시작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기 때문인데. 앞서 말했듯 어렸을 적부터 축구를 좋아하던 아버지와 계속 공을 찼기 때문에 아마 어느 정도 뛰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버지는 나에게 축구를 가르치셨던 것 같다.(물론 전문적인 축구를 배운 것이 아니라 취미용으로 배운 운동이다.) 


   하지만 언제 처음 축구를 봤느냐 라는 질문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바로 2002년 월드컵 때부터 이다. 어릴 때 어떤 팀 혹은 어떤 선수를 좋아하는 기준은 단순하다 이기면 내편이고 잘하면 우리 선수였다. 그때 한국 팀이 그랬다. 다른 이들의 기억 속의 (2002년 이전 혹은 이후) 한국팀은 어떤 팀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본 한국팀은 단 한 경기를 제외하고는 항상 이기는 팀이었다.(미국전의 무승부는 제외하도록 하자). 처음 본 폴란드전, 포르투갈전, 16강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16강에 가서 기뻐하고 나중에 아버지에게 16강이 뭐냐고 물은 기억이 있다. 그렇게 이탈리아를 꺾고 스페인을 이기고 4강 독일까지 갔다. 사실 이때는 당연히 우리나라가 우승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도 지지 않았고 게다가 월드컵을 우리나라에서 하고 있으니 어린 초등학생의 사고로는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아쉽게 독일에게 패하고 터키에서 승리한 뒤 3위라는 결과를 가졌을 때 나는 축구를 보는 것 마저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해외축구를 접하기 쉽지 않았고 국내 리그는 잘 보지 않았던 주변 분위기에 나도 한동안 축구를 보는 재미를 잊었다.


   시간이 흘러 2002년 월드컵의 영웅들 중 박지성, 이영표 선수가 네덜란드 리그로 가게 되었고 우리나라의 축구 위상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을 무렵 2005년 박지성 선수가 프리미어리그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는 구단에 입단했다. 프리미어리그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지만, 계속해서 이야기되는 박지성 선수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 소식에 이 일이 단순히 어떤 팀에 들어갔다로 끝나는 일이 아닌 엄청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온갖 포털사이트 뉴스 기사며 심지어 TV에서도 심심치 않게 해당 뉴스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프리미어리그에 대한 나의 궁금증은 박지성 선수의 경기를 보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박지성 선수가 나오면 경기를 보고 나오지 않으면 굳이라고 하며 채널을 돌렸었다. 한국인이 없는 경기를 굳이 보아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를 기다리다 보면 박지성 선수가 선발로 나오는 일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었었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박지성 선수의 출전 모습을 보기 위해 나는 경기를 처음부터 보아야 했고 그렇게 서서히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


   축구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축구를 보는 것이 그다지 큰 재미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과 베스트일레븐이라는 축구잡지를 보면서 축구에 대한 흥미를 키웠다. 여러 나라의 선수들, 팀들을 보면서 누가 유명한 선수 있지, 어떤 팀이 잘하는 팀인지를 보게 되었다. 당시 학교에서는 바람막이를 입는 것이 유행이었고 나이키에서 나오던 아스날의 바람막이가 가장 인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물론 축구팀 한정이었고 내 주변에서의 이야기다. 가장 인기가 많았던 브랜드는 당연 north face이 아니었나 싶다.) 나도 부모님을 졸라 나이키 바람막이를 사고 싶었지만 아디다스 브랜드를 좋아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아디다스 매장에 갔고, 그곳에서 처음 첼시팀의 로고가 새겨진 패딩을 구매했다. 이게 내가 현재까지 CHELSEA 팀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단순히 패딩을 사서 좋아하게 된 건 아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패딩을 구매한 것 자체가 큰 부분을 차지하긴 한다. 다른 여러 이유들 중 일단 우리나라 기업인 삼성의 스폰쉽을 받고 있어 이 팀이 멀리 떨어진 해외 팀이라는 느낌보단 좀 더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수원 삼성 같은 친근함이랄까?)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좋아하던 선수(페르난도 토레스)가 CHELSEA로 이적한 역시 내가 이 팀을 좋아하게 된 이유이다. 첼시라는 팀을 좋아하게 되니 CHELSEA팀의 경기를 보면서 '한 번쯤은 CHELSEA팀의 홈구장인 스탬퍼드 브릿지에 가보고 싶다. 이곳에서 축구를 보고 싶다.'는 소원이 생겨났다.

   그리고 막연한 소원으로만 생각하던 일을 실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유럽여행을 계획했을 때 영국, 런던을 나의 첫 여행지로 정했을 때 나의 마음은 이미 축구장에 가 있었다.  비행기 표 예약과 숙소 예매 후 나는 바로 축구 경기 일정표를 찾았다. 다행히 내가 런던에 있을 때 CHELSEA팀 경기가 홈구장에서 있었다. 바로 티켓을 예매할 수 있는 방법을 검색했고, 경기 티켓을 구할 수 있었다. 이루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소원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대망의 경기가 있는 날.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출발을 했다. 오후 3시 경기인데 오전 10시에 경기장에 도착을 했으니 내가 얼마나 설레는 마음으로 경기장에 갔는지는 충분히 설명이 되었을 듯하다. 경기장 주변을 산책하고 CHELSEA 스토어에 들어가서 전시되어있는 우승 트로피들과 CHELSEA팀 유니폼들을 구경하고 내가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HAZARD)을 선택하여 내가 구매한 유니폼에 마킹했다. 근처에서 요깃거리로 햄버거를 사 먹기도 하고 계속해서 경기장 바깥을 구경했다.(입장시간이 아닌 때에 입장이 불가능하다.) 첼시에 한국인 선수가 있는데 첼시 레이디스에 소속된 지소연 선수이다. 경기장 바깥 큰 포스터에 지소연 선수의 모습을 보며 괜스레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설렘으로 한참을 기다린 후에 입장 시간이 되자마자 경기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TV로만 보던 그 경기장에 내가 있다. 괜스레 가슴이 벅차올랐다. 몇 년 동안 TV로만 보아오던 곳에 내가 서있다. 경기 시작 전 보이던 경기장에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이 꿈만 같았다.



   입장하고 시간이 흐른 뒤 감정이 조금은 정리가 되자 양 팀 선수들이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상대팀에는 우리나라 선수인 이청용 선수가 있었는데 타국에서 유명인을 보니 더 반가웠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더 흐른 후 경기가 시작되었다. 디펜딩 챔피언이 었던 첼시의 우승가와 응원가가 펼쳐지고 관중들의 함성 소리가 나의 몸을 흔들 정도로 크게 들려왔다. 마치 큰 행사장 스피커 앞에 서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사실 그 느낌이 몸에는 남겨져 있는데 어떻게 그 느낌을 글로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 나의 필력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인 듯하다.) 처음 느껴보는 함성이었고 내가 꿈꾸었던 경기장에서의 순간은 정말 순식간에 지나갔다. 아쉽게도 경기에는 패배했고, 선수들의 사인을 받지는 못했지만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을 경험했음에는 틀림이 없다.


   시간이 오랫동안 흐른 지금에도 나는 여전히 그 팀을 좋아한다. 가끔은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 팀을 좋아하고 응원할 수 있다는 것이 지금 나에겐 하나의 행복으로 여겨진다.


첼시팀이 얻은 트로피 유리면에 받은 트로피의 내용들이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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