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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반진반 Jun 10. 2023

한국 넷플릭스에서는 볼 수 없다는 일본 드라마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다룬 <더 데이즈>

(조금 과장하자면) 넷플릭스가 없었으면 이민 생활이 가능했을까? 한국의 OTT는 대부분 저작권으로 막혀 있고, 어둠의 경로는 찾기가 귀찮다. 예전에 <사랑이 뭐길래> 같은 드라마가 뜨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녹화를 떠서 마르고 닳도록 돌려봤다고 한다. 지금은 교민들을 타깃으로 하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기는 한데, 돈을 내고 볼 정도로 크게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주말이면 넷플릭스에 떠 있는 드라마 (가급적 메이드 인 코리아로) 하나 골라서 맥주 한잔 마시면서 보는 게 낙이다. 영어 음성은 지긋지긋하고 영어 자막은 신물이 난다. 영어는 당연히 안 들리는데 이상하게 한국어도 잘 안 들려서 한국어 자막을 꼭 켜 놓는다. 


<더 데이즈>라는 일본 드라마가 새로 올라왔다.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다룬 팩션이다. 그런데. 평화로운 주말에 내가 꼭 원자력 발전소 폭발을 봐야 하는가. 나의 소중한 평화를 해치려면 적어도 그에 상응하는 재미는 있어야 한다. 


평가가 어떤지 검색을 해봤다. 한국 블로그에도 SNS에도 거의 언급이 되지 않았다. 역시 재미가 없는 것일까. 요즘 한국에서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가 핫한데 이상한 일이다. 


기사를 찾아보니, 한국 넷플릭스에서는 <더 데이즈>가 서비스되지 않고 있었다. 국가마다 서비스하는 콘텐츠가 조금씩 다르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이상한 일이다. 이미 예고편까지 한국어 자막 버전으로 공개가 됐다. 한국 공개를 준비했었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최근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이 터졌으니 더 시급하게 공개하는 게 장사꾼의 도리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않겠나. 넷플릭스에서는 심의를 신청하지 않았느니 어땠느니 변명이 길다. 


어떤 행정적인 절차의 문제로 한국 공개를 미루고 있는 건지, 한국 정부에서 압력을 넣었는지, 넷플릭스가 원래 한국 공개를 생각하지 않았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기는 하다. 


<더 데이즈>의 이야기는 두 개의 축으로 진행된다. 하나는,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을 덮친 뒤 현장에서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분투하는 원전 직원들. 다른 하나는, 초유의 원전 사고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의사결정권자들. 


일본의 정치인과 관료, 전력회사 경영진은 원전 사고가 터지자 그야말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무능력, 비전문성, 무소신, 비겁함, 보신주의. 그리고 소탐대실, 교각살우, 주객전도, 지록위마, 연목구어, 정중지와, 허례허식…


지금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그래서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살려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르거나 아무도 결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상황은 점점 최악으로 흐른다. (아래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준다.) 


재난 드라마에 언제나 등장하는 클리셰지만 언제나 설득력이 있다.


(슬프게도) 세월호 참사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세월호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최종 책임자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제대로 된 일을 하는 건 아니지만 간 나오토 총리가 사무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는 모습이 나온다.) 이에 반해 현장 직원들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원전을 지킨다. 여기서 드라마가 나온다. 원자로 건물 안에 있는 밸브를 열기 위해 누가 가야 하는가. 지도부의 (잘못된) 결정을 현장은 따라야 하는가. 현장 책임자는 자신의 목숨과 직원의 목숨, 시민의 목숨을 저울질하면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계속 ‘결정’을 한다. 영웅의 서사가 등장한다. 영웅은 좌절하고 극복하고 부활하고 다시 좌절한다. 


물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모호하다. 도쿄전력이 무책임하게 정보를 왜곡하고 원전을 포기했다고 일본 정부 쪽에서 비난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도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고 어느 정도는 ‘극적인 첨삭’ 일 것이다. 


드라마는 찬핵이냐 반핵이냐를 말하지는 않는다. 원전의 위험성도 보여주지만, 일본 국민들이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보여준다. 1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사건을 다루면서 명확한 입장을 정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드라마는 명백하게 보여준다. 미증유의 사태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무지하고, 무능력하고, 무책임할 수 있는가.


한국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본다고 후쿠시마 오염수를 더 위험하다고 여기게 되지는 않을 거다. 원전 사고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보겠지. 어쨌든 누군가는 꽤 불편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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