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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반진반 May 12. 2023

우리는 딱 우리 수준의 언론을 가졌을 뿐이다

기자를 그만둔 기자가 '기레기'를 보면서 드는 생각

세월호 이후 기자는 기레기로 전락했다. 그래서 동네북이 됐다. 억울한가. 그럴 리가. 그래도 싸다. 21세기 한국의 기자는, 그러니까 우리 언론은, 그 얼마나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이며 가볍고 비루하고 초라했던가. 그래서 가끔씩 중계되는 ‘기레기 욕하기 올림픽’은 꽤 인기 있는 스포츠 종목이 된 지 오래다. 조금 지난 이야기지만 요 며칠 전에도 새로운 대회가 열렸다. 그런데 이번 대회는 재밌다기보다는 씁쓸했다. 


첫 번째 사진. 

핵심을 찌르는 질문은 하필 미국 기자들이 했다. 우연은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미국 ABC 기자가 질문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도청을 다시 하지 않겠다는 언급을 했냐는 질문이다. 한국 기자도 해야 할 질문이었다. 수십 명의 한국 출입 기자님들은 모두 꿀 먹었는지 밤에 술을 먹었는지 멍한 얼굴이었다. ABC도 몰라 못 알아 들었을지도 모른다. 


민감한 질문은 하지 말아 달라는 대통령실의 은근한 압박이 있었을 수도 있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이라는 경사스러운 날에 초치는 질문을 해서 눈총을 받기 싫었을 수도 있다. 약소국 국민이 어찌 감히 강대국에게 곤란한 질문을 할 수 있냐는 자기 검열일 수도 있다. 닥치고 가만히 있는 게 국익을 위한 길이라는 결연한 애국적 결단일 수도 있다. 


개똥 같은 소리다. 기자는 원래 남들이 듣기 싫어하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사진. 

참으로 공손한 기자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짝다리를 짚은 기자가 있었으면 크게 칭찬을 받았을 수도.

미국에 다녀온 대통령과 기자들이 환담을 하는 자리. 하필이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위치한 기자님들 세 명이 모두 두 손을 모으고 하늘 아래 가장 공손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렇다. 여기는 동방예의지국이었다. 게다가 최고 존엄 앞에 서면 제 아무리 대장부라 하더라도 두 손이 절로 모아지는 걸 어찌하겠나. 평소 싸가지로 밥을 말아먹는 기자라도 대통령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되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별 사진이 아니다. 손을 모을 수도 있고, 다리를 모을 수도 있고, 눈을 모을 수도 있고, 가슴을 모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문제는 사진 속 공손한 기자들의 모습이 ‘기자 일’을 할 때도 이어질 것 같다는 우려다. 필요한 질문이 있어도 공손하게 묻지 않을 거라는 걱정이다. 해야 할 보도가 있어도 국익을 고려하고, 대통령실과의 관계를 고려하고, 때와 장소를 고려해서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다. 결정적으로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한다는 기자들이 권력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는 듯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본인들의 이미지 메이킹에도 마이너스다. 


여기서 시간을 4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맞아 KBS 기자와 90분 동안 일대일 대담을 했다. 이런 방식의 대통령 라이브 대담이라는 포맷은 생소했고 그 때문에 내내 긴장감이 넘쳤다. 대담 자체는 평이했다. 질문의 수위와 구성은 평면적이었고 결정적으로 깊이가 부족했다. 하지만 기자는 최선을 다해서 질문했고 대통령도 답변에 최선을 다했다. 첫 시도로서는 손색이 없는 자리였다고 나는 생각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된 문재인 대통령 라이브 일대일 대담. 본의 아니게 나도 고초(?)를 겪었다.


문제는 이상한 곳에서 터졌다. 기자는 대통령 면전에서 물었다. 야당이 ‘독재자’라고 하는데 그 말을 듣고 어떤 느낌이었냐고. 기자가 야당의 발언에 동조한 것은 아니었다. 야당의 시각 자체가 워낙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대통령에게 바로잡을 기회를 준 셈이었다. 나도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많이 써먹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반응은 ‘기레기 따위가 어찌 감히 우리 문 대통령 앞에서’였다. ‘우리 문 대통령’ 앞에서 기자는 예의가 중요했다. 물어야 할 질문과 그러지 말아야 할 질문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있었다. 


실시간 댓글은 기자에 대한 인신공격과 욕설로 가득했다. 나도 ‘댓글이 댓망진창’이라고 페이스북에 댓글을 달았다가 오랫동안 온갖 사이버 테러에 시달렸다. 당시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었고, 후원 회원으로 운영되는 뉴스타파에 소속돼 있었다. 라디오 문자도 엉망이었고, 후원 탈퇴하겠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결국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했다. ‘불편하게 했다면 죄송하다.’ 이런 조건부 사과는 정말 사과하기 싫을 때 하는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유일한 소득이었다. 부끄러운 기억이다. 


덕분에 대통령과의 라이브 대담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됐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많은 기회를 망친다. 


자신이 지지하는 권력자 앞에서는 예의를 차리지 않는 기자가 기레기다.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권력자 앞에서는 공손한 기자가 기레기다. 자신이 지지하는 권력자 앞에서는 불편한 질문을 하는 기자가 기레기다.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권력자 앞에서는 불편한 질문을 하지 않는 기자가 기레기다. 


기자를 욕하는 건 당연하다. 기자는 욕먹는 직업이다. 나도 기자 생활을 하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기자 욕을 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그 욕도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딱 자기 수준의 정부를 가진다고 하지 않았나. 언론도 딱 우리 수준의 언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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