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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노답민국

정부, 결국 의대생에 무릎 꿇다

by 유송

이재명 정부는 의대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해 장기간 파업과 집단휴학에 나섰던 의대생 및 전공의들의 요구를 사실상 전면 수용하며, 향후 이들에 대해 어떠한 법적·행정적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는 정책 시행을 미루고, 징계와 불이익 조치를 철회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실질적으로는 정부가 "항복 선언"을 한 셈이다. 협상의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매우 부실한 전략과 메시지 관리 실패를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라 할 수 있다.


1. 협상 원칙의 상실 – 대가 없이 준 양보

협상에서 핵심은 ‘give and take’다. 상대방의 요구를 수용하더라도,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양보나 약속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서 정부는 '징계 철회'라는 엄청난 양보를 하면서도 의대생 측으로부터 어떠한 확약도 받지 못했다. 의대생들이 스스로 복귀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아니고, 향후 정책 참여나 공공의료 강화에 협조하겠다는 입장도 없었다. 이는 협상이 아니라 일방적 후퇴이며, 정책 권위의 자해다.


2. 도덕적 해이 유발 – 나쁜 선례 만들기

정부가 "책임을 묻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순간, 이미 선례는 만들어졌다. 추후 어떤 직역이든 집단행동을 통해 정책을 철회시킬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면, 국정 운영 전반에 도미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이번 결정은 단기적 갈등 봉합에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법과 제도의 신뢰를 훼손하는 뼈아픈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3. 메시지 전략 실패 – 국민은 어디에 있는가

협상은 항상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적 메시지 싸움’이기도 하다. 국민 여론은 명백히 ‘공공의료 인력 확충’에 찬성하는 쪽이 많았다. 그러나 정부는 그 지지 기반을 활용하지 못했고, 의사단체의 조직적 압박 앞에서 방어조차 못하며 정치적 메시지를 상실했다.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린 채 “기득권과의 타협”을 선택했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4. 협상력 부재의 드러남 – 정책 신뢰도 추락

정부가 일관된 원칙 없이 협상에 임하면, 향후 어떤 정책도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이번 결정은 단지 의대 정책 하나의 후퇴가 아니라, 전체 국정 운영의 협상력 자체가 무너졌다는 신호로 읽힌다. 정권 초부터 강하게 밀어붙이던 ‘의대정원 확대’ 정책이 결국 ‘의사단체의 반발’ 앞에 철회됐다면, 향후 누가 정부의 정책을 신뢰하고 따르겠는가?


최근 방영된 다큐멘터리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병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과학기술 인재를 사활적으로 키우는 중국과 달리, 우리는 10대부터 30대까지 모두가 ‘의대’라는 단 하나의 출구를 향해 내달리고 있다. 국가는 단 한 명의 의사를 더 양성하려 했을 뿐인데, 기득권은 그마저도 막아섰고, 정부는 아무런 대가 없이 물러섰다. 이 사태는 단순한 협상 실패가 아니라, 국가의 방향감각 상실을 보여주는 징표다.

한국 사회가 다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공공정책이 정치적 타협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라도 정부는 '의대 쏠림'이라는 구조적 왜곡을 바로잡을 정공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대에 미친 나라’라는 오명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한국 미래의 비극적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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