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면서도 거세게 다가온다
조용하면서도 거세게 다가오는 영화. 처음에는 평범한 가장과 권력을 쥐고 흔드는 시장의 싸움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 권력자와의 싸움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까지 끌어내는군요. 러시아 영화는 처음이다보니 억양이나 말투 자체가 조금 어색한 감은 있었지만, 대사보다도 그들의 심리적인 갈등이 침묵으로 느껴짐에 눈을 돌리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영화의 반은 술을 마시는 장면이 차지 합니다. '술이나 마시자고.' 처음에는 참 술 잘 마시네 싶었지만... 그 대사 한 마디도 결국 권력에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약자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져 왔습니다. 사실 워낙 잔잔하게 흘러가다 보니 지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140분이라는 러닝 타임도 한 몫 했구요. 사실 무거운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워낙 평이 좋은 영화라 안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상영관이 적었던 탓에 보신 분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이 또한 갑과 을의 관계라고 보면 되겠군요.
평범했던 가정은 을의 입장에서 권력자 갑에게 휘둘리기 시작합니다. 한없이 다정했던 남편은 그로 인해 포악해져만 가고 원래 반항적이었던 사춘기 아들은 새 엄마를 괴롭히다 못해 무시합니다. 점점 지쳐만 가는 아내. 콜랴(알렉세이 세레브리아코프) 는 그런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내는 결국 남편의 친구와 마음을 나누게 됩니다. 물론 그 것이 권력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콜랴가 조금 더 이성적이며, 자신의 주위를 둘러 보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죠. 콜랴가 점점 무너지는 이유는 권력이 가장 컸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탓해야 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의 친구 드미트리(블라디미르 브도비첸코프)는 말 합니다. 단 한 사람의 잘못은 없다고. 각자의 잘못만이 있을 뿐. 권력이라는 틀 안에서 지쳐만 가던 그 들은 결국 하지 말아야 할 잘못들을 해 나갔고, 그 것은 그들을 무너뜨리려는 권력에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되었죠.
협박은 안 된다던 시장 바딤(로먼 마디아노브) 는 결국 그에게 총을 들이대며 협박을 했지만 만약 그가 콜랴의 아내 릴랴와 마음을 나누었다가 들키지 않았다면 그 협박을 받아 들였을까요. 그의 집이 철거 되던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진 콜랴의 마음과 콜라의 가정, 콜랴의 우정까지 모두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놓여 있다가 무너지는 콜랴의 집은 그가 어쩌면 철저히 외톨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일 뿐.
위에도 말했듯이 저는 무거운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 아닙니다. 만약 좀 더 가벼운 영화를 즐기시는 분들이라면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실 듯 하네요. 그만큼 영화는 잔잔합니다. 거세지다가도 어느 순간 잔잔해지는. 맑아보이지만 속에서는 태풍이 불어 닥치고 있는. 하지만 깊이 들여다 보지 않으면 그 속의 태풍을 읽을 수 없을 만큼 영화는 심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