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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로 Apr 06. 2021

보내지 못한 편지와 답장 없는 편지

우리 집 옷장 맨 왼쪽 선반. 그 위에 놓인 상자에 그간 받은 편지를 보관하고 있다. 그곳엔 나를 수신인으로 한 편지뿐 아니라, 보내지 못한 편지가 한데 섞여있다. 보내지 못한 편지들은 갈 곳을 잃고 상자 안에 쓸쓸하게 남아있다. 수신인에게 문제가 생겨서 보내지 못한 것은 아니다. 문제는 오직 내 부족한 용기다.


나는 말재주가 부족하고, 칭찬을 주고받는 일을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편지는 내 진심을 전달해주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꼭 친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고마운 마음이 생기거나 칭찬해주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를 수신인으로 편지를 쓰곤 한다. 대학 동기 언니에게 썼던 편지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언니를 생각하면 항상 웃는 얼굴이 떠올라. 무표정일 때가 있기는 했나 싶을 정도로. 사진만 봐도 방실방실 웃고 있더라. 언니랑 안 친한 사람은 있을 수 있어도 언니를 싫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어. 항상 웃고 다니고 상대의 장점을 찾아주는 모습이 멋져. 나는 칭찬을 받는 것도, 칭찬을 하는 것도 서투르거든. 그래서 언니가 칭찬해주면 당시엔 너무 민망하더라고. 물론 기분은 좋지만! 내게는 어려운 일을 자연스럽게 해내는 걸 보면서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더불어 언니 같은 사람이 내 주변에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더라.


언니의 밝은 에너지가 좋고 부러웠다. 그와 가까워지고 싶었으며, 내가 느낀 그의 장점을 상대에게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편지엔 일방적인 칭찬과 호감만 가득했다. 나의 호감을 상대가 부담스럽게 여길 수 있다는 생각에 발송이 망설여졌다. 우리 사이는 아직 '친구'라고 하기엔 거리가 있었다. 편지를 보내 놓고 되려 멀어질까, 내 호감이 거절당할까 두려웠다. 결국 편지를 주지 못했다.


수신인이 남성인 경우, 상대가 부담스러워할까 걱정하는 마음뿐 아니라 '연애감정으로 오해받으면 어쩌지?'라는 고민까지 더해졌다. 21살 봄, 아빠가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자 울던 내게 "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라고 말해줬던 남자 선배가 있었다. 그에게도 아래와 같이 썼다.


1학기 때 오빠는 왠지 말 걸기도 어렵고 친해질 일도 없을 것 같았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편해졌나 모르겠어. 먼저 말도 걸어주고, 장난도 쳐서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 나한테 먼저 다가와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알다시피, 내가 인간관계에서 적극적인 편이 아니거든. 고쳐나가고 있지만 쑥스러워서 표현 같은 것도 잘 못하고, 고맙다는 말도 이렇게 편지로 하게 되네.

오빠 보면서 배울 게 참 많다는 생각을 했어. 특히, 사람들 잘 챙기는 게 제일 대단하더라. 부모님께 편지도 쓰고, 용돈도 드린다는 거 듣고 반성 많이 했어. 나는 나 하나 챙기기도 버거워서 남을 잘 못 챙기거든. 얘기 들으면서 앞으로 나도 좀 더 노력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


차라리 원망 가득하고 저주 섞인 편지였다면 보내지 않길 잘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편지엔 고맙고 좋아하는 마음이 꾹꾹 담겨있었다. 그런 편지들을 보내지 못한 채 6년이 흘렀다. 때를 놓치고 나니 이제는 편지의 수신인과 연락처도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 다투거나 각자 사정이 생겨서가 아니라, 아무 일도 없었기에 자연스레 그리 됐다.


우린 SNS 친구도 아니고 몇몇은 접점도 없으니 이 글 역시 그들에게 가닿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내가 그들을 수신인으로 편지를 썼다는 사실조차 영원히 모르겠지. 한때나마 좋은 시절을 공유하던 우리가 연락처조차 모르는 사이가 된 건, 역시 나의 용기 부족 탓이었을까?   


'실천하지 않는 지성은 쓰레기다.' 어디선가 들은 문장이 문득 떠오른다. 문장을 곱씹다가 엉뚱하게도 '표현하지 않는 마음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내지 못한 편지는 쓰레기다...라고까지 말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표현하지 못한 마음은 상대방에게 '없는 마음'이 아닌가. 혼자 생각하고, 혼자 좋아하고, 혼자 응원해봤자 그걸 입밖에 내지 않으면 상대는 도통 알 수 없으니까. 관계는 타이밍이라는 말도 있다. 마음을 보여주는데도 적당한 때가 있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보다시피 연락도 끊기고 만다.


최근의 나는, 답장 없는 편지를 쓴다. 특히 S라는 친구에게 편지를 자주 보낸다. 그간 보낸 걸 다 합하면, 적어도 열 통은 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답장이 돌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는 무언가를 쓰는 걸 싫어해서 애인에게 편지를 쓰는 것도 8년간 딱 한 번 보았다. 매사에 화통하고 시원시원하지만, 나름대로 소심하고 섬세한 구석이 있어서 나에게 답장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에 미약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내가 편지를 건네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매번 받기만 하네." 하지만 아주 미약한 죄책감이기 때문에 그게 답장으로 이어진 적은 없다.


의외로 나는 그가 답장을 쓰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나에겐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단이 필요하고, 그게 편지일 뿐이다. 오히려 상대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편지를 보내지 못하는 것보단 답장이 없어도 고마움과 애정을 거리낌 없이 풀어낼 수 있는 쪽이 좋다. 그래서 나는 자꾸만 좋아하는 이들에게 편지를 쓴다. 답장이 오지 않더라도 괜찮다. 모두가 나처럼 글을 통해서만 표현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답장이 오지 않더라도 최대한 자주 내 마음을 발송해보기로 한다. 편지를 보낼 수 없는 사이가 되기 전에, 상대에게 내 마음을 실컷 전해야겠다. 일방적인 마음이라도 쏘아 올리지 않으면, 마음과 마음이 만날 일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낸 모든 마음이 꽃피울 순 없겠지만 적어도 어떤 마음은 진심으로 되돌아 테니, 오늘도 편지를 한 장 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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