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따르면, 수집이란 '취미나 연구를 위해 여러 가지 물건이나 재료를 찾아 모으는 것'이다. '수집'하면 대표적으로 엽서 수집, 피규어 수집, 책 수집이 생각난다. 조금 더 특이하고 특별한 물건을 수집하는 경우도 있다. 에세이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김민철 작가님은 ‘맥주 병뚜껑 수집’이란 취미를 소개하셨다. 작가님은 병맥주를 마시고 나면, 병뚜껑 안쪽에 맥주를 먹은 날짜와 장소를 적어서 모은다고 한다. 병뚜껑을 보며 맥주를 마신 날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는 점이 근사해 보였다. 작가님에 대한 팬심을 섞어 나도 맥주 병뚜껑을 수집해보았다. 그러나 평소 병맥주보다 캔맥주를 즐겨마시는 데다가, 병뚜껑 수집을 핑계로 술을 더 많이 먹게 되고, 병뚜껑 챙기는 걸 자꾸 잊어버려서 그만두었다.
물건을 수집하는 건 아무래도 내 취향엔 맞지 않는 것 같다. 물건에 애착을 가지는 스타일도 아니고, 당장 쓰지 않는 물건이 집안을 빼곡히 메우고 있는 걸 보면 가슴이 답답~한 게, 당장 중고마켓에 내놓고 싶다. 옷도 몇 개월 이상 입지 않는 건 중고로 팔거나 기부하여 처분한다. 새로운 물건을 하나 집에 들이면, 오래된 물건 하나를 처분해야 한다는 나름의 법칙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여러모로 수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습관이다. 물론, 그런 나에게도 수집하는 항목이 있긴 하다. 그건 바로, ‘칭찬’이다.
칭찬을 수집하게 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나에 대한 부정적인 피드백은 아무 노력 없이도 오래 기억하지만, 칭찬은 잘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뒤끝이 길어서 그런 건지 상처 받았던 일만 세세하게 기억난다. 비단 나에게만 적용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원래 부정적 사건이나 정서에 더 많은 영향을 받도록 진화했으며, 이런 사고방식을 심리학에서 ‘부정성 편향’이라 부른다. 애초에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났다니, 긍정적인 사건을 기억하는데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에 대한 욕은 홀라당 까먹어 버리고, 칭찬은 최대한 적극적으로 기억하자고 결심했다.
칭찬은 다행스럽게도 물성이 없다. 집안에서 자리를 차지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를 수집한다고 해서 다른 하나를 버릴 필요도 없다. 물성이 없는 걸 어떻게 수집하냐고? 수집 방법은 간단하다. 바로 '캡처'다. 카카오톡 대화나 SNS 댓글 속 칭찬을 캡처한 후, 클라우드 서버에 업로드한다. 구두로 칭찬을 듣는 경우에도 수집은 어렵지 않다. 일기장이나 메모지에 칭찬받은 내용과 일자를 적고, 그걸 사진으로 찍어 업로드하면 된다. 클라우드 서버에는 '칭찬 수집'이란 이름의 폴더를 만들어 두었다. 직관적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칭찬을 모아두는 폴더다. 대부분의 클라우드 서버는 어플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업로드하기가 편하고, 다시 들어가서 보는 것도 용이하다.
긍정적인 피드백이면 제한을 두지 않고 수집하고 있으나, 막상 모으다 보니 칭찬의 주제가 편향적이다. 7개월 간 모은 약 30개의 칭찬 중 딱 하나를 제외하면, 전부 글에 관련된 것들이다. 글을 잘 읽고 있다는 브런치 댓글부터 yes24 '나도 에세이스트'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기록, 김신회 작가님의 수상 평, 내 글이 올라간 대학내일 페이지까지. 최근엔 독립 출판을 하고 받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모조리 캡처해두었다. 외모나 성격에 대한 칭찬엔 관심이 없지만 글쓰기에 대한 칭찬은 유난히 달디달다. 그때 받은 칭찬 몇 개를 아래에 남겨 본다.
“우연히 세로님 글을 읽게 되었는데 글 하나하나 정말 너무 좋네요. 문장도 어쩜 이렇게 가슴 안쪽까지 공감이 되고 표현이 아름다운지 글을 다 읽게 될까 봐 아껴 읽고 있어요.” “말주변 없는 저에겐 세로 님 글이 최고예요.” “저는 세로 님의 글이 좋아요! 제가 살면서 한 번쯤은 표현하고팠던 감정을 글로 써주심에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답고... 와 너무 좋다고 생각하며 마음이 무지갯빛이 된 적도 있었네요.” 칭찬을 받을 당시에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읽은 걸 읽고 또 읽고, 가까운 지인에게 자랑도 하고,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칭찬을 받으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드물다. 내 글은 왜 엉망인 건가 싶을 때 '칭찬 수집' 폴더에 들어가서 칭찬을 정주행 한다. 그러면 글을 쓰고 싶다는 의지가 퐁퐁 샘솟는다. 기분이 꿀꿀한 날에도 '칭찬 수집' 폴더에 들어간다. 칭찬 30개을 다 읽고 나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나에게 칭찬 수집이란, 긍정적인 기억을 축적하는 일이다. 내가 수집하고 싶은 건, 나조차 자주 잊어버리는 '긍정적인 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를 좋아하기 위해 긍정의 조각을 찾아 모으는 것이다. 물건은 하나 들이면 하나를 처분해야 속이 시원하지만, 칭찬은(그중에서도 글쓰기에 대한 칭찬) 모을수록 더 좋다. 축적된 기록 속에서 나의 지향점을 찾기도 한다. 내가 어떤 칭찬을 좋아하는지, 왜 좋은지 생각하다 보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모습이고 싶은지 조금은 감이 온다. 품이 많이 들지도 않고, 비용도 0에 수렴하니 제법 괜찮은 취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딱히 수집하는 게 없는 분이라면 칭찬을 한 번 수집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