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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써지지 않는다.
쓰고 싶은 글은 있지만, 써지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지금까지 써 온 글과 결이 다르다. 새 카테고리를 만들고 싶지 않다. 이런 주제로 글을 써 봐야 누가 읽기나 할까. 자료를 보강하면 더 좋은 글이 될 것이다. 당장 돈 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글쓰기 창의 줄바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직 쓰지도 않은 글이 아무도 매기지 않은 내 점수를 깎을 것이 두렵다.
이런 상황에서 정제된 글을 내놓는 것은 무리다. 하다 못해 '가'부터' '하'까지 열네 글자 중 하나만 골라 발행하더라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누군가는 그 한 글자에서 의도를 캐낼 테니까. 그때 떠오른 것이 '30일 챌린지'다. 30일 동안 천천히 재활하는 것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1. 하루에 하나씩 30일간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2. 최소 글자 수는 1자.
3. 주제는 자유. 단 인용만으로 글을 채워서는 안 된다.
엄마와 5박 6일간 일본을 갔다 왔다. 동생과 백일을 맞이한 조카를 보기 위해서다. 일정을 짤 때만 해도 길게 느껴졌는데 호텔과 이층집과 마트를 오가다 보니 어느새 귀국일이 되었다. 나리타공항으로 가야 했던 우리는 신주쿠역에서 야마노테선으로 갈아타 스카이라이너가 다니는 닛포리역까지 가기로 했다.
신주쿠역,
일본 여행을 가 본 적 없는 사람이라도 그 악명은 한 번쯤 들었을 것이다.
사실 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노선 이름이 통 외워지지 않았다. 야마노테선, 야마노테선.... 되뇌이는 내 머릿속에서 노래 한 곡이 흘러나왔다.
山ノ手線 最終で何処へ行こうと云うの?
야마노테선 막차로 어딜 가자는 거야?
도쿄지헨(東京事変)의 '블랙아웃(ブラックアウト)'이다. 시이나 링고의 목소리를 떠올리면 되겠다고 생각하며 캐리어를 끌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한 곳은 마루노우치선 승강장이었다. 직원들에게 길을 물어보자는 엄마를 진정시키며 원인을 찾아나섰다. 원인 역시 시이나 링고에 있었다.
기나긴 역사를 걷는 동안 머릿속을 채우던 노래는 '블랙아웃'에서 '마루노우치 새디스틱(丸の内サディスティック)'으로 바뀌었다. 이음매 하나 없이 자연스럽게 매시업된 노래처럼.
옆에서는 엄마가 길을 잃은 이유를 캐물었다. 일본어로 된 표지판을 읽을 수 있는 딸이 길을 잃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하지. 나는 신주쿠역은 출구만 이백 몇 개라는 정보로 대답을 얼버무리며 캐리어 손잡이를 늘여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