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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로 Oct 15. 2024

초단편소설: Show in the Mirror(1/2)

11/30


현관에 들어선 안시온은 신발 벗는 것도 잊고 입을 떡 벌렸다. 정금실의 집은 클래식 음악과 인연이 없는 사람도 알 만큼 유명했지만 실제로 보는 느낌은 또 달랐다. 뒤축이 다 닳은 스니커즈를 놔두기가 황송할 정도였다.


‘아냐, 움츠러들지 말자.’


오늘 그는 정금실의 초대를 받아서 온 손님이었다.


“사크룸은 제가 맡아 드리겠습니다.”


시야 바깥에서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정금실의 매니저였다. 매니저보다는 정장 모델이 제격이었지만. 정금실 장학 재단에서 선정하는 ‘내일을 빛내는 젊은 음악가’에 시온이 뽑혔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도,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는 말에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한 것도 바로 그였다. 그래서일까. 첫 만남치고 서먹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시온은 자기 몸통만 한 사크룸 케이스를 조심스레 넘겼다.


사크룸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봤다고 해서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사크룸은 긴 역사가 무색할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베일에 가려진 악기니까. 유명한 합주곡에 쓰이는 것도, 누구나 취미로 도전할 만큼 연주법이 쉬운 것도 아니다.


“대표님은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잠깐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괘, 괜찮습니다! 제가 약속 시간보다 일찍 오긴 했죠.”


좀 더 여유로워 보이는 대답도 있었을 텐데. 시온은 제 머리를 감싸 쥐고 싶었다. 당당하고 어른스러운 애티튜드가 몸에 배지 않은 시온에게 연주회 뒤풀이와 인터뷰는 특히 피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거울이, 많네요.”


시온은 응접실 벽면을 뒤덮은 거울로 화제를 돌렸다. 단순히 매무새를 체크하려고 걸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나같이 명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앤티크한 분위기를 자랑했다.


“대표님의 취미십니다.”


거울에서 거울로 옮겨 가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췄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어색했다. 좌우가 반대로 비치는 거울이었다. 사실 지금 이 모습이 남이 보는 나와 가장 가까울 테지만. 시온은 거울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갔다. 절반은 좌우 반전 거울인 것 같았다. 그는 오른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었다. 서로 다른 상(像)이 춤을 추듯 어지럽게 흔들렸다.


그 광경을 보던 매니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무 장난스러웠나.’ 시온은 밧줄에 묶인 사람처럼 양손을 바지 옆 재봉선에 붙였다. 하지만 매니저의 시선이 향한 곳은 그의 오른손이었다.


“잠시 보여 주시겠어요.”


시온은 쭈뼛거리며 오른손을 내밀었다.


“아름답지만, 부끄러운 손이군요.”


차분한 말투 아래 숨은 적개심. 중지가 없는 오른손이 시온의 손바닥을 받쳐 들었다. 그제야 시온은 매니저를 처음 봤을 때 느낀 기시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는 정금실 밑에서 사크룸을 배우다가 젊은 나이에 은퇴한 알렉스 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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