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세로 Oct 17. 2024

내가 음식물 쓰레기를 비우는 이유

13/30


'결벽증'과 '그냥 깔끔한 사람'을 오가는 K와 맡은 일은 군말 없이 해내는 나. 덕분에 우리 집은 2년 전 이사 왔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K와 나는 각자의 특기와 희망을 고려해 집안일을 나눴다. 집안일을 좋아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희망이라고 해 봐야 어디까지나 '이거라면 그나마' 수준이다. 제철 식재료와 새로운 요리법에 관심이 많은 내가 식사를 준비하고(K가 식사를 맡으면 매일 고기 반찬만 올라올 테니까 건강 면에서도 올바른 선택이다) 싱크대에 그릇 쌓이는 걸 못 참는 K가 설거지를 한다.


저녁 식사를 마치면 K가 설거지를 하고 조리 과정에서 나온 채소 껍질과 잔반을 모아서 스테인리스 통에 담아 준다. 그동안 나는 겉옷을 걸치고 카드를 챙긴다. 엘리베이터로 1층까지만 내려가면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까지는 3분도 걸리지 않는다. 더러워진 싱크대 거름망을 주기적으로 닦는 일은 K의 몫이다.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가면서도 '왜 내가 해야 하지?' 하는 불만은 들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설거지랑 거름망 닦기가 훨씬 더 싫었으니까. 나를 위해 K가 힘든 일을 자처한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밖에 나가기가 너무 귀찮아서 K에게 대신 버려 달라고 부탁했다. 예상과 달리 K는 사색이 되어 손사래를 쳤다.


"냄새 나서 싫어."

"그렇게 심한가? 숨 참으면 되잖아."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의아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나는 '시각형 인간'이고 K는 '후각형 인간'이다. 나는 눈에 보이는 더러움을 참지 못한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장은 뚜껑이 열리자마자 내용물을 털어 넣으면 되니까 상관없지만 싱크대 거름망은 찌꺼기가 눈에 보이니까 싫다. 악취에 대한 기준도 높아서 가리는 음식이 없다. 외국에서 만난 새로운 식재료나 향신료도 일단 입에 넣고 본다. 반면 K는 냄새에 민감하다. 호불호 갈리기로 손꼽히는 음식은 모두 '불호'다. 향수나 디퓨저보다는 탈취제를 선호한다.


부부는 서로 비슷해야 잘산다는 말이 있다. 반대되는 사람끼리 보완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 도덕관, 정치관, 종교관은 비슷하면서 감각에 관해서는 보완할 수 있는 관계가 이상적일지도 모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