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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단편소설 소재가 떠올랐다. 주인공의 설정을 바꾸고, 사건 순서를 재배치하고, 조력자 캐릭터를 추가하니 제법 그럴듯해졌다. 문제는 주인공의 설정을 바꾸는 바람에 모터스포츠에 관한 내용이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운전 면허증은 신분 확인 용도로나 쓰고, 주행 속도가 120km/h를 넘어가면 안전벨트를 꽉 쥔 채 딱딱하게 굳는다. 그런 내가 살면서 모터스포츠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을 리가.
탈것은 두 가지 면에서 다루기 까다로워요. 하나는 실제로 타 본 경험 없이 상상만으로 세밀하고 리얼하게 쓰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중략) 또 하나는 탈것에 대한 묘사가 과하면 마니아적인 성향이 짙어짐에 따라 일부만 이해하고 즐기는 이야기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첫 문장부터 엔딩까지 생생한 어휘로 이야기 쓰는 법> p.149
카 레이싱이라고는 무한도전 스피드 레이서 특집으로 접한 것이 전부다. <사이버 포뮬러> 세대지만 본 적은 없다. <이니셜 D>? 그거 고속도로 주행용 플레이 리스트 아닌가요?
초단편을 쓰다가 필요한 지식이 생길 때면 인터넷 검색으로 해결한다. 작가가 이곳저곳 직접 취재를 다니면서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질 좋은 작품을 내놓는 게 정석이겠지만, (중략) 초단편 작가는 필연적으로 다작일 수밖에 없다. 다른 작가가 장편 하나 쓸 동안 초단편 한 편만 쓰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니 직접 취재에 불리하다는 변명으로 넘어가겠다.
<초단편 소설 쓰기> p.34
다행히 우리에게는 유튜브라는 훌륭한 취재원이 있다. 단편이나 장편을 쓴다면 주행 영상 몇 편과 브이로그 몇 편으로 취재를 갈음할 수 없겠지만, 초단편소설이다. 투어링 카 내부나 서킷에 대한 묘사는 몇 문장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카 레이싱, 보다 보니 은근히 재미있다. 레이싱 게임으로나 느끼는 스피드를 핸들링 몇 번으로 컨트롤할 수 있다니.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푹 빠질 만하다. 그렇게 내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ASMR, 요리, 해외여행, 야구, 뜨개질, 자수 등에 이어 레이싱까지 더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