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엄마
한 달 전 엄마의 칠순 모임 이후 처음으로 고향집에 방문했다.
칠순 모임때 드렸던 쨍한 보라색 꽃은 이제 색 바랜 연보라의 기운만 남긴 채 시들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좋은 향기가 제법 진하게 풍기는 게 기분이 좋더라, 그래서 계속 두고 봤어!"
엄마의 말에 후드득 떨어지는 꽃잎에도 의미가 생긴다.
돌이켜보니, 그녀의 딸로 사십 년을 살면서
나는 엄마에게 특별히 어떤 조언을 구하거나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엄마는 그저 묵묵히 응원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전적으로 당신의 딸을 믿었다.
어떤 대학을 선택하던지,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할지,
오로지 내가 판단해서 결정했고
부모님은 그런 내 곁에 늘 있어주셨다.
엄마는 대신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그녀에게 삶은 먹고살기 위한 투쟁이었지만,
한 번도 돈에 대해 타령하거나 신세 한탄을 들어본 적이 없다.
운전면허 시험이라도 본다면 각 잡고 공부해서 만점을 받았다.
늘 배움에 목말라하던 엄마는 60이 넘어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사회적 그 어떤 베네핏도 없건만 EBS 방송을 꾸준히 보면서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했고 70이 된 지금도 하고 있다.
67세에 드디어 일을 그만두게 되자 아빠는 엄마에게 퇴직 여행을 가자고 하셨다
그렇게 두 분 오붓하게 국내를 여행하고 사진도 남기고 참 좋으셨단다
하지만 세 달 뒤, 우리 아빠는 엄마만 두고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예기치 못한 사고에 충격과 슬픔이 엄마를, 우리 가족을 덮었다.
엄마.
엄마는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
엄마는 지금 복지관 수업에 열중하고 계신다.
월화수목금 꽉 찬 일정과 일요일 성당까지
엄마에게 버려지는 시간은 없었다.
엄마는 이번주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요즘은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해.
내게 이렇게 건강하게 삶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이토록 빠르게 하루가 가는데 10년도 금방이겠지.
그래서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는데 온 힘을 다하고 있어"
엄마의 말이 맞았다.
엄마는 죽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생을 더 찬란하게
오롯이 큰 마음으로 바라보고 감싸 안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 나 있잖아"
나는 그 간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를 전했다.
"난 왜 이렇게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사는 걸까?
놀이터에 가도 다른 누군가 있으면 그게 편하지가 않아.
우리 애들이 불편한 행동을 할까 봐, 그래서 뭔가 피해를 줄까 봐
그러면 괜히 내 애들을 혼내게 돼.
그러고 나서. 꼭 후회가 돼.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이나 상처가 신경 쓰이기보다
애들을 혼내는 내 모습을 그 사람이 보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상한 엄마라고 욕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괴로워.
난 왜 이럴까?"
엄마는 의연하고 굳건한 말로 답하셨다.
"혜진아, 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이제 다시는 사람들 앞에서 애들을 혼내지 마"
"어 그러려고. 요즘 마음 알아차리고 고치려고 하고 있어"
"아니, 점점 고치는 게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다시는 절대로 한 번도 하면 안 되는 거야.
만약 혼내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꾹 참아"
이보다 명쾌할 수가 없었다.
마음공부를 하지만 울컥울컥 샘솟는 본연의 습관을
쉽게 고칠 수 없었고 괴로운 날이 줄었지만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해답은 내가 괴로운 일(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을 그냥 내 안에서 알아차리고 그대로 흘려보내 버리는 것이다.
오, 어머니
당신의 지혜는 어느 위대한 영적 스승의 두꺼운 책 보다
나의 뇌리에 박히는 것이었어요.
간결한 그 한마디가 어떤 의미인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신 안에서 피어나는 향기는
시들지 않고 우리 마음을 온화하게 만들어준다.
엄마.
그래도 울고 싶어 지는 건
마른 꽃은 언젠간 다시 땅으로 되돌아 가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