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조심 살고 있어요"

내게 언제나 따스한 요시모토바나나, 스위트히어애프터

by 세루코

그래,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다. 나는 마음 한켠에 위로 받을 작정을 한 채 책을 읽어내려갔다.

연인인 요이치와 함께 사고를 당하고, 요이치만 죽음의 영역에 남겨두고 삶의 영역으로 '되돌아온' 사요코라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무엇을 원망할 수도 없다. 모두 나를 두고 가 버렸다. 분노조차도 한 발 늦고 말았다. (p.57)


죽음으로 연이 다해버린 사랑은 어떤 모양으로 남겨야 좋을까?

이 세상에 더이상 살아있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는 그 감정은 현재의 나로선 헤아릴 길이 없다.

사요코는 '죽음의 영역'에 잠시 다녀왔기 때문인지 그 현실을 꽤나 받아들여버린 것 같았다.

의지적으로 애쓴 모양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그래서 어딘가 더 아려오는- 그런 모양.

이 책은 사요코가 고통을 느끼고 견디고 겪어내고 회복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뱃속에 철이 관통하였으나 급소를 피했듯, 죽음이 관통하였으나 죽음의 문에서는 살짝 빗겨가 아슬아슬 삶으로 되돌아온 사요코가 다시금 삶을 살아내는 과정이 담겨있다.


남아있는 사람이 전하는 삶, 생명 그 자체에 대해 올리는 찬사.




유난히 교토를 사랑하는 내게, 이 책에 나오는 교토의 묘사는 (여행을 못하는 지금으로선) 그저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러다 머리를 딩- 때린 표현이 있었는데, 교토 거리의 아름다움에 대한 묘사였다.


'빛과 똑같은 양만큼의 어둠을 품고 있기에, 아름다움에 깊이가 있는듯 하다'(p.110)


그녀의 통찰이 담긴 이 문장에 나는 아주 오래 머물러 있었다.

처음엔, 교토가 그렇지, 아름답지, 교토가 아름다운 이유가 이런 지점때문이었으려나. 밤이 되면 등불이 켜지곤하지. 그 등불들이 지나치지 않네, 어쩌면 어둠 속에 피어있는 꽃같기도 하네. 처음엔 머릿속에서 교토의 밤거리를 여행하며, 핸드폰에 저장된 교토의 사진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문득, 아름다움의 깊이를 느끼게끔 하는 요소가 있다면 대체 무얼까? 정말 단지 빛과 똑같은 양의 어둠, 그것이 최초의 이유일까? 하는 생각에 도착하게 된 것이다.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도 어떤 것은 유쾌하면서도 무게가 있고 어떤 것은 진지한 척 그저 지나치다고 느껴지니 원, 도대체 '작품'에 깊이를 더하는 요소가 과연 무엇인지.

(사랑하게 되는 건 내 의지와 무관한 것 같지만 어쨌든) 이로보나 저로보나 나는 무엇을 좋아할 땐 꼭 깊이를 보게 되는데, 그 깊이가 존재하게 되는, 깊이가 생성되는 핵은 뭘까? 궁금하곤 했다.

이 문장 속에 언급된, 빛과 똑같은 양의 어둠에 대한 통찰은 나의 궁금증에 100퍼센트 꼭 맞는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정답이 과연 존재할런지도 사실 잘은 모르겠다.) 신통방통하게 정확한 지점을 짚어준 기분이 들었다.


책 곳곳엔 삶 자체에 대한 경이로움, 우리에게 육체가 주어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숨 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기회이며 경이로운 일이기에 우린 끈질기게- 꼭꼭 씹어 사는 것만이 삶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찬사가 구석구석 박혀져 있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살아야 해. 꼭 쓸모있는 일만 해야 되는 건 아니란다. (p.18)


나는 살아있는 한, 섬세하고 아름답게 움직이고 싶다(p.46)


그렇구나, 교환하는 거구나, 서로. 나는 이 세계에 이렇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는 내가 빛나면 똑같은 분량으로 되갚아 준다. (p.64)


내 생명이 움직이라고, 움직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인생에는 결말이 없고 이뤄야할 목표도 없다. 그저 흐름이나 움직임이 있을 뿐이다. (p.81)


이 흐름에 올라 있으면 생명이 있는 한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다. 태양도 얼마나 굉장한지 모르겠다. 감동하게 된다. (p.115)


사람은 결국 어디를 가든 누군가를 만나고, 그 누군가란 생명이 있을 때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누군가이다. (p.150)



이러한 삶을 향한 찬사는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 참 따스히, 온 마음에 퍼졌다. 어쩌면 빛과 똑같은 양의 어둠이 아름다움에 깊이를 더해준 것처럼, 죽음 근처에 다녀온 사람이 죽음의 무게를 삶의 영역으로 달고 왔기에, 삶과 죽음이 같은 무게로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시선으로 하여금 나 스스로 내 삶의 아름다움에 깊이감이 생긴 것은 아니었을까?

빛과 어둠이 분리되지 않고, 어느 한 쪽이 지나쳐 한 쪽을 먹는 모양이 아니고, 함께 같은양으로 존재함으로써 깊이를 더한 것처럼, 삶과 죽음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쪽만이 소중하여 다른 한 쪽이 멸시되는 영역이 아니고, 같은 값어치로 존재한다는 시선.

작가는 그 시선으로 사요코를 바라보며 흐르는 우리 삶에, 생명에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래, 이 책은 부단히도 생명 그 자체에 대한 찬사를 올리고 있으나, 이는 생명 때문이 아니라, 어쩌면 죽음 때문이다. 생명 바로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 생명과 같은 무게의 죽음을 인지하는 것. 생명과 죽음이 함께임을 명확히 인지함으로 인해 느끼는 생명에 대한 아름다움.

나이가 듦에 따라 어느새 조금씩 죽음이 다가오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도 분명히 죽음이 존재하고 있음을 의식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지금 내가 호흡하는 이 일상이 더없이 소중해진다. 깊-이 아름다워진다.


있음과 없음,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 모-든 것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어 인지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냥 그 자체로 기뻐질 수 있음을, 그리고 살아있다는 그 자체로 느릿느릿 아주 경탄할 일만이 가득함을-


죽다 살아난 사요코는 뱃속에 쇠가 박혔기 때문에 조심조심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조심조심 살고 있어요. 하지만 조심조심 살다 보니까 많은 것들이 눈에 보이고, 많은 것들의 고마움을 알게 되네요. (p.92)


아마 조심스럽게 사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보다 천천히 사는 삶이리라.

왠지 소심함과도 연결되는 조심스러움은, 이 문장을 접하기 전까지는, 내게는 어쩐지 부정적인 것이었다. 당당함에서 파생된 것들은 온통 미덕이며 조심스러움에서 파생된 것들은 속도가 중요한 현대사회에서 왠지 개선해야하는 무엇 같기도 했다. 굉장히 많은 부분에 지나치리만치 많은 주의를 기울이며 통 앞으로 나아가는 일에는 더딘 나이기에, 이런 나의 성격이 스스로 못나보인 날들도 있었기에 이 문장이 내게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더디지만 꼭꼭 씹어서 삶을 즈려밟으며 살아 나가는 것은 어쩌면, 무어 하나 번듯하게 이룬 게 없대도,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경탄해마지않는 기적같은 일은 아니었을까?



내 영혼의 정원사, 요시모토 바나나.

그녀는 아주 소박하지만 굳건하게 이러한 시선이 있다는 것을 나에게 끊임없이 속삭여준다.

이런 속삭임을 계속하는 그녀가 30대에 접어든 오늘의 나에게는 무척이나 대단하고 위로이며 또 아-주 사랑스럽다.




나는 당신에게 위로받고 있어요.

세상에 당신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내가 숨쉬는 세상 속 어딘가에 당신의 숨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혹여나 당신이 나보다 먼저 삶 너머의 영역에 가 이 세상에 당신의 숨이 더이상 없대도요,

당신의 작품이 있는 한 내 세상 어딘가엔 언제나 반짝반짝 노란색 바나나 색 불빛이 반짝반짝 영영 꺼지지 않을 것 같아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