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모양이 잔뜩 그리운 날에

사우스포인트의 연인, 요시모토 바나나

by 세루코

그저 ‘사랑의 모양’이 그리운 순간이 있다.


순수하고 계산없던 지난날의 만남 속에 핀 사랑을 되짚고 싶어 그와 비슷한 사랑의 이야기를 훔쳐보고 싶은 날도 있고, 용기와 패기로 똘똘 뭉쳐 열정으로 투신했던 지난 시간들을 사랑이라 그리며 그리워지는 순간들도 있다.


비단 남녀의 사랑 뿐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아는)사랑의 모양엔 하나의 공통된 질감이 있는 것 같다.

거칠지만 매우 견고하고 아주 매끄럽지만 어딘가 슬픔이 서려있는 질감.

그 질감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아름답게 표현해보고 싶은데, 굉장히 투박한 단어만 떠오른다. 지금 이 순간, 이런 사소한 고민을 하고 있는 저녁, 노트북 앞 나의 질감도 사실 사랑의 질감처럼 느껴진다.

사랑하는 것에 마냥 기쁨만 따르지 않는다는 것, 몹시 어렵지, 하지만 어렵다고 놓아버리지 않는 것. 그렇게 부단히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매 순간 사랑하기로 선택하는 것. 나를 깎아내는 고통스러운 속에서 피어난 진주같은 시간들.


사랑이라는 것은 그렇게 인고의 노력 속에 가까스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선택권이 자신에게 없던 시절, 외부의 여러 상황들 탓에 첫사랑을 잃어야 했던 테트라, 성인이 된 후 다시 만난 첫사랑 다마히코와 그의 형제 유키히코의 죽음으로 인해 상실로 가득 찬 그 쪽의 세계, 하와이. 그 곳에서 죽은 사람의 삶과 사랑의 모양을 퀼트로나마 엮어 만들고자 하는 가운데 아주 건실하게 피어나는 사랑, 치유, 극복의 모양.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올곧은 마음으로 사랑을, 삶을 또박또박 선택하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우스포인트의 연인', 그들의 이야기 안에서 경이로움울 느끼는 나는, 가장 깊고 진한, 순수하고 용기로운 사랑을 하리라 거듭 다짐하게 된다.




삶이라는 것은 과연 공평한걸까?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지는 걸까?

아주 얄팍하게도 나는 때에 따라 생각이 바뀌곤 한다. 가끔은 신이 존재해서 세상 만물 이치를 잘 돌아가게끔 돌보아 주는 것 같기도 하고, 또 가끔은 마치 신의 존재는 동화 속 이야기처럼,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추악한 일들이 현실 곳곳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세상의 돌아가는 모양새로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 고민하고, 삶의 공평성에 대해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워지려는 그 얄팍한 지점들에, 요시모토바나나의 책은 내 마음에 피어올릴 수 있는 작지만 강렬한 희망의 빛을 밝혀준다.


이 책은 올곧은 방향으로 선택해 나가는 삶과 그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로 내게 다가왔다.


책 속에 테트라는 인간에 대한 푸릇한 기대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어린시절 어쩌면 조금은 불우했고, '여러' 일들을 통해 인간 내면의 아주 좋지 않은 지점들을 바라보아야 했고, 겪어내어야 했고, 홀로 헤쳐간 사람이기도 하다. 삶의 궤적이 그러했기 때문인지 그녀는 하와이에서 마주한 다마히코와 그의 가족들의 환대(?)를 마냥 안전하게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에서 이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기를 선택하기로 몇번이고 다짐한다.

인간에 대한 불신이라기 보다는 인간이란 그런 존재라는 것을, 상황에 따라 얼마든 달라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아주 겸허히 인지하고 있었다. 미래에 자신이 불필요해지는 순간이 올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있음에도, 그녀는 '지금'만을 바라보며 선택을 했다.


또 사랑을 선택하는 삶이 혼이 비틀릴 정도로 괴로운 일이라는 것을 알았던 다마히코의 어머니의 존재 또한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어쩌면 그녀 스스로 아주 조용히 괴로움을 선택한 것이리라. 그녀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는 일이 기적과도 같은 사건이라는 것을 알았고, 거기에서 똑바로 걷는 삶이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아주 멋진 인생일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한 발 떨어져서 그녀의 삶을 상상해보면, 사실, 진짜를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굳이 진짜가 아닌 것들을 선택할 이유가,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하지만 나의 이야기로 대입해왔을 때, 허상이라는 것을 알았던 수많은 것들을 수없이도 많이 선택해오지 않았던가? 삶을 살아나가며 편리하기 때문에 타협한 순간들이 셀 수 없다. 그렇게 놓고 보면 그녀의 묵묵한 행보는 어찌나 외롭고 가엾고 강인하며 존경스러운지-

다마히코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과 연인인 테트라를 향해, 그들도 똑바로 올곧은 길을 걷기를, 당부했다. 자신의 아들을 계속 사랑하라는 당부가 아닌, 테트라 자신을 잘 들여다보라는 당부와 함께. 나는 나에게도 그녀의 이러한 바람을 거듭해서 말해주고 싶었다.


똑바른 길을 걷는 것, 그리고 자신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줄 아는 것. 지금을 사는 것.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는 것은 사실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나약한 지점을 바라보는 것은 말처럼 쉽지도 아니하거니와 매우 아프고 치열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올곧게 자신을 바라보는데에 잔꾀를 부리지 않는다면, 그 어려움에 투신한다면, 그것이 사랑을 이루는 길이 아닐까? 사실 사랑을 이루는데에는 그것만이 전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을 읽은 지금의 나는,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태초에 누군가는 더 따뜻하게, 누군가는 더 부유하게, 누군가는 더 안전하게, 누군가는 더 풍요롭게 - 가지고 태어나도록 결정되기도 하지만, 태어난 이상 우리에게 삶이 허락되었다는 그 지점 만큼은 공평하다.

물론 외부의 상황이 삶을 더 이어나갈 수 없도록, 생명에게서 삶을 빼앗아 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가슴 아픈 경우를 제외하고,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잔인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삶을 선물 받았다.



그들이 한 올곧은 선택들, 그리하여 그들이 일구어가는 삶의 모양들이 무척이나 용감하고 경이로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수없이 많이 나 스스로를 살폈다.

난 지금 내 삶을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가? 나는 어떤 모양으로 사랑을 쌓아가고 있는가?

나는 과연 올곧고 정성스럽게, 나 자신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소중한 지금을 만들어가고 있을까?

혼이 비틀릴 정도로 괴로운 지점에서 내가 포기한 것은 올곧은 나아감이었을까, 치사함이었을까, 결국 사랑이었을까.



매 순간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그 정도의 투명함으로 나를 대하고 세상을 대할 수 있다면, 아마도 삶은 혼이 비틀리고 꼬일 정도로 괴로워지겠지만, 끝가지 멋진 인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매일의 선택이 내 삶의 모양을 만들듯, 매일을 들여다보는 착실한 선택들이 일궈낸 삶은 그 무엇보다 진실하리라. 그렇게 하루하루 정성스럽게 쌓아 올린 사랑을 했다면, 그 사랑의 끝에 혹 아주 가슴 아픈 이별이 온다고 해도, 그 마저도 아주 짙은 아름다움으로 점철된, 그런 모양이 되리라.




나는 끝끝내 그런 삶을 살아내보고 싶고 그런 사랑을 이룩하고 싶다.

어느날 내가 가진 삶의 모양이 내 보기에 떳떳하고 내 보기에 아름다운 무엇이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며-






"있지, 사람을 정말 좋아하게 되면 언제나 괴로워. 아줌마도 아주 옛날에 다마히코의 친아빠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혼이 비틀리고 꼬일 정도로 괴로웠어. 그런데도 그 길을 똑바로 걸어갔어, 끝까지. 멋진 인생이었지. (중략) 사람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는 일은 그리 흔치 않아. 그러니까, 너희 둘은 똑바로 그 길을 걸어 주었으면 해. 멀어져 있어야 할 때도 있겠지. 하지만 정말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은 잘 없는 법이야. 테트라가 다마히코를 정말 좋아하는지, 앞으로도 너 자신을 잘 들여다 보도록 해." (p.8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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