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감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제주도 여행, 오름 위에서.

by 세루코




대다수 사람들의 평균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를 찾고 싶었다. 어쩌면 어느 순간부터 이 것이 나의 목적이자 삶의 이유가 된 것 같다.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오직 나만의 감각, 그 감각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






제주 여행 이틀째엔 새별오름에 올랐다. 여러 오름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오름.

헥헥대며 오른 정상에서 나는 조금 완만한 땅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름에 오르면 명상을 하고 싶었다. 숨을 가다듬고 내 본래의 숨으로 돌아올 시간을, 생각을 가다듬고 본래의 나로 서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이상하게 명상을 하다 보면, 내 숨에 집중하다 보면,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다 보면 언젠가부터 꼭 눈물이 났다. 내 마음 어느 한 구석에 내가 돌보지 못한 내가 있었던 것인지, 내가 아직 마주하지 못하는 과거의 기억이 있는 것인지, 그렇다면 그것이 해를 입은 기억인 것인지, 해를 가한 기억인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어딘가 닿았고 눈물이 흐르고, 아주 조금 깨닫고 아주 조금 해소된다.

그 과정 중 흐르는 눈물은 기분이 나쁘다거나 슬프다거나 그런 종류의 감정에서 나오는 눈물은 아니다. 나와 닿아 스스로 나 자신을 만져주다 흐르는, 오히려 나를 긍정하는 시간을 보내다 흐르는 눈물. 그냥 그뿐이다.



새별오름에 오른 나는 ‘그리움’에 대한 생각을 잠시 했던 것 같다.


사람이, 시간이 그리운 감정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까.

당장 보고 싶은 사람들, 사랑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더 이상 육체적으로 나와 닿지 못하거나, 정신적으로 닿지 못하는, 혹은 서로 주고받는 마음의 모양이 너무나 판이한 경우. 나는 내 마음에 차오르는 감정들을 어떻게 흘려보내야 좋을까.


가끔은 감정이 나보다 커서 나를 넘어서고야 만다.

나를 빼곡히 채워주고 있는 수많은 인연들. 그 인연들에 대한 마음들이 내 안에 켜켜이 쌓여 내 모양을 이루는 큰 부분이 되고야 마는데, 최근에는 그 감정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사랑이 퍼져 나오는 내 마음 자체에도 미움이 생겨 그만하라고 하고 싶었다. 감당하기가 힘들었으므로.

이게 무슨 감정인지 한 친구에게 물으니, 친구는 내게 아직 감정만큼 덜 커서 그렇다고, 조금 더 주체적이게 된 거라고 했다. 좀만 참으라고. 자란 만큼 위로해줄 수 있는 양이 느니까 이건 좋은 일이라고 했다.


내가 정말 더 커져서 그들을 향한 마음을 사랑으로만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이 될까?

새별오름 위의 나는 그 시간이 아득하기만 했다.


짧은 명상 이후 눈을 떠 보니 나는 세상보다 조금 위에 있더라. 저 멀리 집이며 자동차며 자그마했고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그게 무어든 무용하게 느껴졌다. 회의감이나 무력감과는 결이 아주 조금 다른, 무용함의 미학이랄까. 나는 어쨌든 자라나기를 선택했다는, 작은 성취감을 가진 채 밑으로 저벅저벅 내려갔다.


그 누구의 속도도 아닌 나의 속도였고 나의 걸음이었다.



사흘 째 되던 날에는 애월 쪽에 있는 바굼지 오름(파군봉)이라는 곳을 올랐다. 유명하지 않은 오름이었고, 산책 겸 동네 주민들이 이용할법한 작은 뒷산이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사람들의 후기에도 서귀포시의 바굼지 오름만 나올 뿐이라, 입산하는 위치도 몰라 그 앞에서도 잔뜩 헤매고 말았다.

겨우 오르는 길을 찾아 입산을 했건만, 길을 잘못들어서 정말 난해한 길로 산을 탔다. 혹시 이 곳은 짐승의 길이 아닐까? 이 것이 길이기는 할까? 생각할 정도로 풀이 무성했고 무언가의 배설물들이 군데군데 있었던 길… 다 오르고 보니 올라온 길 반대편으로 사람이 다녔을 길도 하나 나 있더라.


숲을 헤치며 정상에 오른 것이 아주 싫지는 않았다.

어떤 모험을 했고 새로운 길을 개척한 기분에 (사실 새로운 길은 아니었다. 그래도 몇몇의 사람이 이용한 듯한 길이었다.) 뿌듯함도 조금 있었다.

정상에 오르니 공사 소리가 들렸고 비행기 소음도 크게 들렸다. 그리고 사람들의 집이, 차가 보였다.

그리고 저-멀리, 바다가 보였다. 바다가- 너무 아름다운 바다가 보였다. 들리는 소음과 다르게 보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어쩐지 아득해졌다. 사실 세상은 이렇게 모순적인 건가? 싶었다. 쿵쾅대는 공사 소리와 낮게 나는 비행기 소음 너머에 굳건하게 존재하는 아름다운 바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눈으로, 귀로 그 장면을 찍어두었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장면이었다.


바굼지 오름의 정상에서는 친구와 넷플릭스(헤드스페이스 : 명상이 필요할 때)를 이용하여 ‘감사하는 마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자리에 드러누워 각자 고요한 시간을 보냈다.


감사하는 마음이라- 지도자 앤디는 감사한 순간에 대해 떠올려보라고 했는데, 깊은 고요 안에서 감사한 순간을 떠올리니 습관적으로 작동하는 뇌의 회로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언제고 좋은 지점을 찾고 그것에 만족하는 회로를 가동하며 살고 있었는데, “진짜 감사한 순간”을 떠올리라는 와중에도 나의 사고 흐름이 바로 그쪽으로, 그저 습관적으로 흐르는 것이었다. (이를 눈치챈 것은 깊은 고요 안이라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매 순간 감사를 선택하는 습관이 나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나빴다. 명백히 나빴다.

습관적으로 떠오른 감사한 순간에 대해 생각했더니, 내가 나의 부모님의 자식인 것, 내가 너의 연인이며, 내가 너의 친구인 것,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하고 있는 것,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으로 삶을 살고 있는 것, 내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것. 정도가 줄줄이 떠올랐다.

이 생각들은 깊은 사유 없는, 어떤 습관에 불과했다. 적어도 그때의 내게는 말이다.

나의 습관적인 감사함에 대해 깨닫게 되니, 깊이 없는 감사였다는 것을 또 깨달았고, 그것을 깨닫다 보니, 그렇다면 정말, 진짜로 감사한 게 무얼까-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나는 나의 부모님의 자식인 게 감사해. 나의 부모님이 당신들인 것이 감사해. 물론 미운 순간들이 있었지. 상처를 받은 순간들이 있었어. 성숙하지 못한 당신들의 태도에 아주 무력하게 당한 적도 많았어. 근데, 진짜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이 나의 엄마와 아빠인 게 감사하네. 나와 웃음코드가 거의 완벽히 똑같은 사람을 엄마로 두고 있는 게 감사하고 세상에서 가장 귀엽게 웃을 줄 아는 소녀 같은 당신의 모습을 사랑해. 품위 없지만 귀여운 춤을 추고 목소리가 크고 이상하리만치 단순하지만 때로 기이하게 깊이 통찰하고 그를 바탕으로 나를 아주 크게 사랑해주는 아빠가 나의 아빠인 게 감사해. 당신들에게 정말로 사랑을 느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에, 혹은 종교에, 또 혹은 자연에 조금 심취해서, 보통의 다른 사람들과 관심사가 많이 달라서 외로웠는데, 근데 내가 지금 이 순간 자연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해. 누워있는 땅에게 말을 걸 수 있는 나인 게 감사해. 내가 느끼는 어떤 풍요로움을 나라서 느낄 수 있는 거라면, 내가 나인 게 무척이나 감사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꽃이 피면 예뻐하고, 바다를 보며 사랑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인 게, 그래서 차고 넘치는 감정들을 내 안에 담을 수 있어서 감사해. 때로 굉장히 외롭고 고통스럽고, 나 자신이 미워 어쩔 줄 모르겠지만, 그래도 정말 좋은 것들을 황홀하게 많이 느끼니까, 감사해. 그것만큼은 정말로 감사해.




무구하게 감사할 수 있는 일이 내 세상엔 없는 것 같다.

내가 무척 사랑하고 진정 감사할 수 있는 일들은 흠이 있다. 미움이 박혀있다. 상처와 함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정말로 깊-이 감사함을 느꼈다.


나는 또다시 눈물이 났다.

어쩌면 살아생전 처음 느껴보는 “진짜 감사함”은 아니었을까?

누군가의 책에서, 누군가의 경험에서 보고 배운 감사하는 습관이 아닌, 진짜 내가 나로서 얻은 사유의 산물.




사람의 생명만큼 무수히 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는데, 그 고유한 나의 우주에 대한 책임은 무조건, 전적으로 내게만 있다. 내 우주의 경계가 더 짙어지고 굵어져서 혹 내가 더 외로워진다고 해도, 나는 내 우주를 결코 져버리지 않겠노라 다짐해 본다. 누구를 닮은 누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닮은 우주 안에서 나로서 생각하고 나로서 말하고 나로서 행동하기를 바란다. 내가 걷고 싶을 때 걷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고 내가 느끼는 대로 움직이며, 그렇게 나만의 흔적들을 나의 우주에 새겨놓고 싶다.

오름에 올라 밑을 내려다보면, 세상이 참 무용해 보이듯이, 길어야 100년 남짓일 내 인생에서, 남의 우주를 엿보느라 내 우주를 살피지 못하는 종류의 행위는 이제 정말로 멈추고 싶다. 누군가 때문에, 혹은 누군가 덕분에, 습관적으로 굴러왔던 많은 것들을 한 번 더, 다시금 생각해보고, 나를 한 번 훑고 나온 것들로 나를 새롭게 채우고 싶다.


그렇게 나의 모양대로, 나의 속도로, 삶을 사랑하고 삶을 살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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