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전 제1화
*앞에 심청전과 연결됩니다. 바로 읽으셔도 되나 심청전을 읽고 오시면 더욱 좋아요.
숲속의 토끼들은 나쁜 호랑이가 죽자 살판이 났다. 드디어 숲속의 왕이 죽은 것이다. 그러자 호랑이한테 아부를 제일 잘하던 2인자 비만 토끼가 숲속을 주름잡았다.
나머지 토끼들은 살아남기 위해 다들 비만 토끼에 아부를 했다. 그 소식을 소문으로만 듣고 있던 토돌이는 딴 세상인 양 혼자 아싸로 살았다.
한편 바다 용궁에서는 긴급회의가 열렸다. 용왕님이 병이 깊어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오징어 재상이 말했다.
“용왕님께서 예전에 심청이 엄마의 간을 기증받았지만 다시 병이 재발했소. 닥터 고래께서 육지에 사는 토끼라는 동물의 간을 먹으면 낫는다고 말했소. 한시가 급하니 누가 갔다 올지 정해야 할 것이오. 누가 가겠소?” 오징어 재상은 주위를 한 번에 훑었다.
모두들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손을 들기 시작했다.
“저요! 저요!”
어린아이처럼 여기저기서 손을 막 들었다.
그중에 문어 재상이 팔인지 다린지 여덟 개나 활짝 펼치며 기회를 잡았다.
“당연히 제가 가야 합니다.”
“이유는 무엇이오?”
“제가 듣기로는 토끼라는 놈은 재빠르다 하오. 보시다시피 제가 다리가 여덟 개 아니오. 제가 좀 빠릅니다.” 문어 재상은 빨판 다리를 들어 올려 흔들어 젖혔다.
“그건 아니 아니 아니 되오! 지난번 용궁 체육 대회 때 릴레이 마지막 주자로 뛰다가 자기 발에 꼬여 넘어졌잖소. 그때 상품이 명품 가방이었는데 당신 때문에 놓친 걸 잊었소? 어이그!” 오징어 재상은 그때를 떠올리자 입속에서 먹물이 부글부글 끓었다. 결국 참다못해 먹물을 뿜어 버렸다. 문어 재상은 검은 대머리가 되었다.
그러자 새우 재상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저를 보십시오. 이 등이 그냥 굽은 게 아닙니다. 토끼를 만나면 제가 굽신거려 아부를 하면 됩니다. 당연히 저를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새우 재상이 허리를 굽혀 스트레칭을 하자 U자 등이 되어 눈길을 끌었다.
“역시 아니 되오! 가다가 불량배 고래를 만나면 말짱 도루묵이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면 어쩔 것이오?”
역시 오징어 재상이 먹물을 뿌리자 새우깡 블랙이 되었다.
그러자 상어 재상이 이빨을 내보이며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얼마 전 아기 상어 노래가 빌보드 차트 1위를 했으니 제가 불러 주면 좋아할 것이오. 인기가 BTS를 능가하고 있소. 어허허허!” 상어 재상은 지느러미를 손인 양 가지런히 모아서 노래 부를 준비를 했다.
“아니 되오! 그 노래는 귀엽게 불러야 되는데 상어 재상 이빨을 보니 첫인상부터가 잡아먹을 인상이요. 토끼가 놀라서 토낄 거요!” 상어 재상은 입을 꽉 다물고 말았다.
그러자 크고 널찍한 가자미 재상이 옆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제가 가겠습니다. 제 몸이 평평해서 마치 양탄자 같습니다. 토끼를 편안하게 태워 오기 딱 좋습니다요. 제가 이래 봬도 용궁침대 홍보대사 아닙니까요?” 가자미는 몸을 바짝 눕혀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보여 줬다.
“역시 아니 되오. 가자미 재상은 눈이 삐딱하게 흘겨보는 눈이잖소? 오해하기 딱 좋은 인상이요. 맨날 째려보고 있으니 토끼가 신경질을 낼 것이오! 지금도 누굴 보고 얘기하는 거요?” 가자미 재상은 눈알을 꼼지락거렸지만 정면을 볼 수 없었다.
오징어 재상은 열 개 다리를 배배 꼬며 인상을 찌푸렸다.
“정녕 이렇게 인재가 없단 말이오?”
이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거북 재상이 손을 드는 대신 목을 길게 내밀며 말했다.
“먼저 육지는 바다와 달라 여러분들이 오래 머물 수 없습니다. 오래 있으면 숨도 못 쉬고 햇볕에 말라비틀어지지요. 인간들의 마른 술안주가 되기 딱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바다와 육지 둘 다 오래 머물 수 있는 피지컬이지요. 또한 토끼는 의심이 많으니 제 꾀로써 데려오겠습니다.” 거북 재상은 연장자답게 침착하게 말했다.
“무슨 꾀로 데려오는지요?” 오징어 재상이 꼬인 다리를 풀며 물었다.
“용궁 투어 특별 이벤트가 있다고 하는 겁니다. 바다와 육지 간 자매결연을 하여 육지 동물을 초대한다고 하면 됩니다. 토끼가 지혜로운 숲속의 왕이라고 치켜세우면 좋아라 할 겁니다. 그리고 귀하신 몸이니 제 등에 태워 오기 딱입니다. 예전에 심학규 부부를 태워 온 경력도 있지 않습니까요?” 그러면서 쿠션 좋은 자신의 등판을 보여 주었다. “그 어느 외제차보다 안정감이 뛰어납니다.”
오징어 재상은 열 개 다리로 박수를 쳤다.
“역시 200년 사신 거북 재상이 지혜롭군요. 당장 출발하시지요.”
다른 재상들은 완전 부러워했다.
“그럼 토끼 몽타주 한 장 그려 주시지요.”
“미리 다 준비했지요. 제가 한때 전직이 웹툰 작가였소. 다리가 열 개니 금방 그렸지요.” 오징어 재상이 코팅이 된 몽타주를 내밀었다. “아, 그리고 용궁침대 홍보대사도 거북 재상이 하시지요.”
가자미 재상은 왼쪽으로 바짝 눈알을 흘기더니 진짜로 거북 재상을 째려보았다.
거북 재상은 몽타주를 고이 간직하고 바로 출발했다. 그런데 가는 도중 인간 여인이 다이빙으로 내려오는 게 보였다. 그 여인은 곧 기절했다. 거북 재상은 여인을 등에 태우고는 용궁으로 딜리버리해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효녀 심청이었다.
‘음⋯ 역시 내 등은 좋은 일만 하는 쓸모 있는 등딱지야.’
드디어 육지에 도착하자 몽타주를 보며 숲속을 헤맸다. 육지에서는 걸음이 느려 토끼를 찾는 게 어려웠다. 어느덧 깊은 숲속에 들어와 버렸다. 그런데 저쪽에서 나들이 나온 멧돼지 가족이 오고 있었다. 툭 튀어나온 뿔과 킁킁거리는 콧구멍만 봐도 겁이 났다. 거북 재상은 두리번거리며 숨을 곳을 찾았다. 저쪽에 바위가 있었다. 하지만 걸음이 느려서 들킬 게 뻔했다. 순간 꾀를 내어 목과 네 다리를 쏙 집어넣고는 작은 바위처럼 가만히 있었다.
“어! 저기 럭비공이 있어요. 아빠!” 아기 멧돼지가 럭비공한테 달려갔다.
“정말이네. 오늘은 저걸로 놀아 보자꾸나!”
‘이게 아닌데??’
툭! 툭! 툭!
거북 재상은 멧돼지 가족의 코와 발의 현란한 드리블에 이리저리 차였다. 그렇게 한동안 거북 재상은 컴컴한 등딱지 안에서 어지러워 정신이 없었다. 컴컴했지만 툭툭 차일 때마다 머릿속에 반짝반짝 밝은 별이 보였다.
“이제 재미없어. 다른데 가요, 아빠!”
멧돼지 가족이 가고 거북 재상은 얼굴을 내밀었다. 땅이 안 보이고 빙빙 도는 하늘만 보였다.
‘이런! 뒤집어졌군!’
거북 재상은 네 발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몸을 뒤집으려 했지만 제자리에서 맴돌 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요가 좀 배워 놓을 걸.’
그러다 뒤에서 누군가 반갑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친척 어르신!”
소리를 따라 쳐다보니 친척 자라가 거꾸로 엄청 빠르게 오고 있었다. 마치 발에 바퀴가 달린 것처럼 보였다.
“오! 반갑구나! 우린 과속하면 위험해!”
이미 자라는 거북 재상 앞에 와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킥보드라는 겁니다. 이젠 더 이상 우린 슬로우비디오가 아닙니다.”
진짜 바퀴가 있었다. 자라는 거북 재상을 낑낑거리며 뒤집어 주었다.
“바다에서 육지까지 어쩐 일로 오셨어요?”
거북 재상은 그동안의 얘기를 들려주며 몽타주를 보여 주었다.
“혹시 이 토끼 본 적 있어?”
“참 못~되게 생긴 토끼네요. 저 멀리 풀 뜯고 있는 걸 봤지요.”
“정말?” 거북 재상 목이 쑥 삐져나오며 어지러웠던 정신이 바로 돌아왔다.
“태워다 드릴게요.”
거북 재상은 세상에 이렇게 빨리 달려 본 건 처음이었다. 너무 빨라서 주변 경치를 보려고 하면 이미 뒤에 있었다. 고개 돌리기 바빴다.
“고개 돌리다 목 삐겠어. 다음엔 파스 준비해서 타야겠군. 허허.”
바람도 세게 정면으로 맞으니 하마터면 가발도 날아갈 뻔했다. 눈에서 눈물도 났다. 그때 뒤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났다.
다다다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