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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작가 윤효재 Jul 07. 2024

청소년과 다수 철없는 어른?을 위한 21세기 전래 동화

토끼전 제3화

내 예상대로 독이?’


토돌인 복어 볼이 더욱 부풀어 오른 것을 보며 흥분했다.

“앗! 뭐가 이리 뜨거워! 내 목구멍이 구멍 날 뻔했잖소?” 복어 재상은 문어 재상을 흘겨보았다.

“누가 무식하게 뜨거운 차를….” 문어 재상은 더 말하려다 고개를 숙였고, 동시에 찻잔을 또 살펴보았다.

“으흠. 흠흠! 보십시오. 아무 일 없잖습니까? 안심하고 드세요.” 복어 재상은 목을 만지며 찻잔에 차를 따랐다.

“잠깐! 내가 알기론 복어는 해독 기능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문어 대머리, 아니 문어 재상이 한번 드셔 보세요.” 그러면서 토돌이는 슬쩍 문어 재상을 쳐다보았다.

문어 재상은 멈칫 뒤로 물러서며 복어 재상 눈치를 봤다. 복어 재상이 마셔 보라는 눈짓을 주었다. 문어 재상은 다시 평온한 얼굴로 긴 팔을 뻗어 조심스럽게 찻잔을 집어 들었다.

“용왕님을 위하여! 토끼님을 위하여!”

문어 재상은 어울리지 않는 구호를 외치며 세 번 나눠 마시고 찻잔을 그대로 내려놓았다. 목구멍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유독 잘 보였다. 문어 재상 얼굴은 곧 일그러지며 토돌이를 응시했다.

“흑!!”

문어 재상은 다리 네 개로 목을 잡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래, 진짜 독이 맞았어!’

“문어 재상 왜 그러시오!” 복어 재상은 문어 재상을 부축하며 볼을 또 부풀렸다.

“몰라서 물으시오? 독이 든 차를…?” 문어 재상은 자신의 목을 더욱 졸랐다.

토돌이는 귀를 쫑긋하고 얼굴을 찌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짜잔! 서프라이즈!!” 문어 재상은 여러 다리를 흔들어 대며 토돌이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어허! 싱겁기는! 문어 대머리 재상, 놀랐잖소?” 복어 재상은 그제야 부푼 볼에 바람을 뺐다.

“하하! 용궁개그 수준이 높군요.” 토돌이는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자, 이젠 됐지요? 이렇게 멀쩡하답니다.” 문어 재상은 찻잔에 차를 또 따르고는 팔을 뻗어 토돌이 앞으로 밀었다.

“음… 내가 괜한 의심을 했나 보군요. 그럼 마시겠습니다.” 토돌이는 조금씩 천천히 홀짝 마셨다.

곧 편안해지고 피로가 풀리는 듯 소파에 기댔다. 그런데 몸이 빠르게 축 늘어지고 눈꺼풀도 무거워졌다. 복어와 문어 재상은 토돌이 풀린 눈만 바라보았다.

“하마터면 복어 재상 때문에 내가 먼저 꿈나라로 갈 뻔했잖소? 복어 재상이 차를 마시고 찻잔 방향만 쳐다보고 있었소.” 문어 재상은 복어 재상을 보며 약간의 앙탈을 부렸다.

토돌이는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와중에 둘의 대화를 어렴풋이 듣고 있었다. 그제야 알아차렸다.

“이놈들, 내가 마시는 찻잔 방향에 독을 묻혀 놓았군.” 그리고 털썩 쓰러졌다.

“걱정 마시오. 독이 아니라 수면제만 발라 놨을 뿐이오.” 복어 재상이 쓰러진 토돌이 뺨을 지느러미로 때리며 한 번 더 확인했다.     

토돌인 새벽에 악몽을 꾸었다. 누군가 자기 몸을 꽉 감싸는 꿈이었다. 잠에서 깨려고 몸을 움직였지만 생각만 그러했다. 몸부림칠수록 뭔가가 더 꽉 감쌌다.

눈을 떴는데도 몸이 움직이길 거부했다.

‘아직도 꿈속인가?’

아니었다.

“가만히 있어!!” 문어 재상이 여덟 개의 다리로 토돌이를 묶고 있었다.

토돌이는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속았다!!’

밧줄에 꽁꽁 묶여 용왕 앞으로 끌려왔다. 거북이를 비롯해 온갖 생선들이 와 있었다. 오징어 재상이 입을 열었다.

“우리 용왕님께서 불치병에 걸렸는데 토끼 간이 좋다 해서 이렇게 데리고 온 것이오. 부디 용서하시고 장기 기증 한다 생각하시오. 가문의 영광스러운 일이 될 것이오.”

“난 가족도 없이 아싸로 사는데 뭔 가문의 영광??”

“어쨌든 간을 좀 꺼내 가야 하니 어쩔 수 없소.” 오징어 재상은 옆에 있는 닥터 고래한테 눈짓을 했다.

닥터 고래는 흰 가운 주머니에서 수술 도구를 꺼내 들었다.

헉! 토돌이 얼굴엔 잔뜩 힘이 들어갔다.

토돌이 머릿속에는 오직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잔꾀를 생각했다. 예전 할머니 말씀이 생각났다.

‘침착! 또 침착! 그러면 지혜가 발휘될 것이다!’

토돌이는 얼굴에 힘을 풀었다. 천천히 수산물 시장을 둘러보았다. 이 자리가 마음에 안 드는지 가자미만은 딴 곳을 째려보고 있었다.

“어허, 참 답답한 사람들, 아니 답답한 생선들아!!” 토돌이는 이판사판 반말로 호통쳤다.

“??”

“용왕을 살릴 수 있는 그 귀한 간을 내가 가지고 다니겠느냐?”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네 몸속에 있지 않느냐?” 오징어 재상도 큰소리쳤다.

“무슨 소리!! 내 간을 탐하는 자들이 하도 많아서 숲속에 숨겨 두고 왔다. 미리 주문해 놓고 테이크아웃했으면 될 것을. 어리석구나, 해산물들아! 정말 답답하다!! 다시 육지에 가야 된단 말이다!!” 토돌이는 눈에 힘을 잔뜩 주고는 수산물 시장을 째려보았다.

“잔꾀 부릴 생각 마라!” 오징어 재상은 믿지 않았다.

“잔꾀? 그럼 나를 응급 수술해 보시오. 나도 죽겠지만 용왕님 생명은 이젠 끝이오! 그리고 여러분들도 살아남지 못하겠지.” 토돌인 또 생선들 눈을 노려보았다.

생선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오징어 재상도 약간은 혼란스러워 다리 열 개가 꼬물거렸다.

“웃기고 있네! 우릴 바보로 아느냐?!” 그때 닥터 고래가 앞으로 나서며 호통을 쳤다.

오징어 재상은 의사인 고래가 나서자 꼬물거리던 다리가 제자리를 찾았다.

“내가 이래 봬도 장기 이식 전문의사란 말이다! 모든 생명은 간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지. 그건 너도 마찬가지지 않느냐? 어디서 구라를 치느냐? 내 앞에서는 어림도 없느니라!!” 닥터 고래의 호통 속에는 토돌이에 대한 비웃음도 섞여 있었다.

“그렇지! 역시 닥터 고래라 똑똑하오. 하마터면 저놈 애드리브에 넘어갈 뻔했소.” 오징어 재상은 다리를 나풀거리며 만족했다.

“당신들은 육지 동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잖아!” 토돌이는 속으론 심장이 벌렁거리면서도 눈 하나 얼굴 표정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토돌이는 다음 꾀를 생각했다.

“사실대로 말해 주지. 내 간은 이미 장기 이식 했다. 워낙 중요한 간이라 진짜 간은 숨겨 두고, 동물 병원에서 만든 간을 내 몸속에 이식했단 말이다!!” 그러면서 앞발로 간 쪽의 몸통을 한 번 툭 쳤다.

오징어 재상의 나풀거리던 다리가 굳어진 것처럼 멈췄다.

“육지 동물들도 장기 이식 기술이 있는 거 맞소?” 오징어 재상이 닥터 고래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 그건 맞을 겁니다.” 닥터 고래 얼굴이 약간은 난처했다. “하지만 이놈이 진짜 장기 이식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닥터 고래는 의심의 눈초리로 토돌이를 쏘아보았다.

“여전히 내 말을 못 믿나 본데 그럼 나를 다시 거북이 등에 태워 육지로 데려가 보면 되잖아! 육지로 올라가 내 간을 가져오면 되지.” 토돌이는 한 술 더 뜨며 말을 이었다. “내 간은 그냥 생간으로 먹기보단 숲속에 있는 산삼과 대추, 밤 등과 함께 하루 동안 푹 고아서 참기름 간장에 찍어 수입산 와인과 먹어야 효과가 있단 말이다!” 토돌이는 오징어 재상 눈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오징어 재상은 굳은 다리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이렇게 디테일하게 설명해도 믿지 않으니 그럼 지금 날 수술하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 봐! 그럼 나도 죽고, 용왕님도 죽고, 당신들도 저세상 구경할 준비나 해야 될 거다! 용궁 투어 좋아하네! 저세상 투어다!!” 토돌이는 있는 말 없는 말을 다 내뱉었다.

닥터 고래는 여전히 수상해했고, 오징어 재상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다들 재상들은 어찌 생각하오?” 오징어 재상은 수산물들을 보며 물었다.

다른 재상들도 아는 바가 없으니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나보다 간 큰 토끼들도 많은데 하필 나를 데려오다니!” 토돌이는 거북 재상을 흘겨보았다.

재상들은 서로 비린내 나는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다.

“용왕님 치료할 시간이 없으니 빨리 결정해야 합니다.” 옆에 있던 문어 재상이 재촉했다.

오징어 재상은 두통이 나서 한 발을 들어 이마에 갖다 댔다.

“그럼 제 등에 꽁꽁 묶어서 다시 갔다 오겠습니다.” 거북 재상이 또 나섰다.

오징어 재상은 이마에 발을 떼고는 거북 재상을 쳐다보았다.

“그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간을 얻기 전까진 절대 풀어 주지 않으면 되잖습니까?” 문어 재상이 토돌이를 째려보며 말했다.

토돌이의 눈동자가 조금 휘청거렸다. 시나리오가 엇나간 것이다.

“음… 좋다! 엄청 꽁꽁 묶어 가시오. 혼자는 위험하니 보디가드 거북 둘과 함께 가시오. 재상은 이번엔 실수 없도록 하시오. 간을 얻기 전까지 절대 밧줄을 풀어 주지 마시오!”

“네!!”     

수산물들은 토돌이를 거북 재상 등에 눕혀서 태우고는 함께 꽁꽁 묶었다. 이제 둘은 한 몸이다. 양옆에는 험상궂은 보디가드 거북 둘이 동행했다. 급히 육지로 다시 헤엄쳤다. 거북 재상이 자신의 네발을 모터가 달린 것처럼 휘저었다. 킥보드가 따로 없었다. 토돌이는 누워서 생각 또 생각을 했다. 드디어 육지에 도착했다. 누워 있으니 맑은 하늘만 보였다.

‘원래 하늘이 저렇게 맑았었나?’

그전엔 땅만 쳐다보며 살았는데 오랜만에 보는 하늘이었다. 하늘은 맑았지만 토돌이의 마음은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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