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움
시골에 혼자 사는 팔순 노모는 글을 잘 모르셨다. 세상 돌아가는 일반 상식도 잘 모르셨다. 무지하신 분이셨다.
그래도 5남매를 키우며 잘도 살아오셨다.
집이 가난해서 아끼는데는 이골이 나신 분이라 한 여름에 선풍기 대신 부채질로 버텼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드니 더위에 지치신 듯 선풍기를 켜셨다.
폭염때문에 자식들은 효도한다고 에어컨을 설치하고는 더우면 에어컨 켜라고 얘기했다.
"에어컨은 돈만 나간다. 이렇게 창문 활짝 열고 선풍기 틀고 부채질 하면 된다. 뭐하러 에어컨에 돈 쓰냐?"
"엄마, 요즘에 노인들 온열질환으로 죽는 거 뉴스에서 못 봤어? 돈 아끼다 엄마가 죽는단 말이야. 제발 에어컨 켜."
장남은 글 모르는 엄마를 위해 리모콘 전원 글자에 청테이프를 붙여 놓고 이것만 누르라고 했다.
그날도 체감 온도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었다. 걱정이 된 장남은 직장에서 전화를 했다. 예상대로 선풍기만 켜고 계셨다.
"엄마, 폭염이니까 에어컨 켜. 빨리 리모컨 청테이프 붙여놓은 거 눌러." 장남은 독촉하듯이 말했다.
"그래, 알았다." 팔순 노모는 마지못해 리모컨을 눌렀다.
전화기 너머로 띠리릭 하며 전원 켜지는 소리가 나자 장남은 그제야 안심했다.
"엄마, 찬바람 나오지?"
"그래, 잘 나온다."
"해질때까지 에어컨 끄면 안돼." 장남은 몇 번이나 다짐을 받고 전화를 끊었다.
장남은 걱정이 되어 저녁에 엄마집에 들렀다. 엄마는 폭염에 초췌해 보였다.
"엄마, 설마 중간에 에어컨 끈 건 아니지?"
"야, 이거 벌써 고장났더라. 더운 바람 나오잖아!! 다시 선풍기 켰어."
"그럴리가? 리모컨 잘못 건드린 거 아냐?"
"처음에 켜고 계속 안 건드렸어. 일부러 시원하라고 창문까지 활짝 열어 젖혔는데 조금 지나니까 더운 바람만 나오더라. 빌어먹을 에어컨!"
*울 엄마도 늘 이런 식으로 안타깝게 살아오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