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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골 일기

첫 번째 일기 : 책상다리 흑백 테레비를 사다!!

by 꿈꾸는작가 윤효재

인간의 기억은 네 살 이전은 기억을 못 한다고 했던가?

텔레비전이 내 기억의 처음인 걸 보니 아마 내가 다섯 살 때(1978년쯤) 텔레비전을 샀나 보다.

지금의 포터 같은 트럭에 텔레비전을 싣고 와서는 우리 집 큰 방에 설치를 했다.

GOLDSTAR”!! “금성”!!, 추억의 상표였다.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 제품인 금성사 'VD-191'이 경매에서 3410만원에 낙찰됐다. [코베이옥션 제공=연합뉴스]출처 : 뉴스퀘스트

당시엔 뜻도 모르고 어른들이 ‘테레비’, ‘테레비’하니깐 나도 그냥 테레비라 했다.

동네 또래 아이들은 그 테레비가 신기한 듯 우르르 우리 집 앞에 몰려와서는 목이 빠져라 바라보았다.

책상다리에다 브라운관은 지금처럼 납작한 게 아닌 크고 볼록한 데다 주름진 문으로 스르륵 열고 닫을 수 있었다는 게 특이했다.

수동으로 채널을 돌릴 수 있는 손잡이가 있었는데 채널이라 해봤자 KBS1, KBS2, MBC 각각 9번 7번 11번 세 개뿐이었다. 그것마저도 KBS1은 교양 프로그램이라 아이들한테는 인기 없는 채널이었다.

시골이라 그런지 방송시간도 오전과 낮에는 없었고, 오후 5시 30분부터 시작되었는데 하루 종일 놀다가 5시 30분만 되면 만화 본다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던 기억이 난다.

미디어를 처음 접한 나에게 만화는 무조건 재미있었다. 짱가, 마징가, 독수리 오형제 같은 만화는 우리 아이들에게 있어 우상과 같았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렇게 재밌는 만화가 모두 일본 만화라는 걸 알고 살짝 실망을 했다.


저녁 시간만 되면 온 식구가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채널이 몇 안돼서 채널 쟁탈전은 잘 일어나지 않았지만 만화 하는 시간이면 항상 아버지와 눈치 싸움이었다.

아버지는 오직 뉴스!! 그중에서도 날씨에 목숨을 거셨다.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항상 날씨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오직 만화!! 재미도 없는 뉴스 따위는 시간 낭비라 생각했다.

내가 만화를 볼 때마다 아버지는 “만화가 뭐 재밌다고....”하시면서 혀를 차셨다.

난 그 말이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조카 녀석이 만화 보는 걸 보고 그때 아버지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진짜 만화가 뭐 재밌다고....” 내가 혀를 차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 식구가 공통적으로 아무 말 없이 보던 프로가 몇 있었다. 가족오락관, 전원일기, 전설의 고향, 웃으면 복이 와요.


결국 식구가 많다 보니 아버지는 중고 텔레비전을 하나 더 사서 아버지와 엄마방에 따로 놓으셨다.

그런데 큰 난관이 있었다. 내가 있는 시골은 산이 많아서 그런지 방송 전파가 잘 잡히지 않아 가끔 텔레비전이 잘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지붕 위에 올라가서 안테나를 손보곤 했다. 아버지가 지붕 위에서 안테나를 붙잡고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면 형과 나는 텔레비전 화면이 잘 나오는지 확인을 해야만 했다.

“지금은 잘 나오나?”

“아니오.”

“인제는?”

“잘 안 나오는데요.”

다시 아버지가 지붕 위에서 낑낑대며 이리저리 안테나를 돌리며

“지금은 어떻노?”

“네! 좋아졌어요.”

안테나.jpg

옛날 안테나


아버지는 뉴스를 보기 위해, 우린 만화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에 정성을 쏟았다.

특히, 비바람이 부는 날이면 텔레비전은 더욱 말썽을 부렸다. 지붕 위에 올라가서 안테나와의 한판 싸움!

비바람 속에서도 텔레비전 시청을 향한 우리 식구의 의지는 대단했다.


9시 뉴스 할 때가 되면 항상 이런 멘트가 나왔다.

“어린이 여러분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착한 어린이가 됩시다.” 당시 이 말은 나에게 자장가인 동시에 수면제였다. 그래서 별일 없으면 마땅히 아홉 시에 잠드는 줄 알았다. 지금의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게임하고 늦게 자는 걸 보면 “요즘 아이들은 체력도 좋구나!”하는 생각만 들었다.


지금은 텔레비전 같은 미디어가 너무 많다. 가정집에 큰 벽걸이형 텔레비전은 마치 영화관을 연상시키고, 개인적으로 스마트폰, 태블릿으로 혼자만의 텔레비전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24시간 손에 텔레비전을 갖고 다니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본 방송을 놓쳐도 보고 싶은 게 있으면 골라서 봐도 되고, 유튜브로는 연예인이 아닌 모르는 사람의 개인 방송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미디어 생산자와 소비자가 구분되어 있었다면 지금은 구분이 없어져 시청자가 생산자가 되어 방송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채널도 워낙 다양해져 오히려 뭘 골라서 봐야 할지가 고민이다. 텔레비전을 켜면 뭘 봐야 할지 몰라서 리모컨만 몇 분째 만지작 거리며 시간 낭비를 하곤 한다. 선택 장애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쩌면 예전처럼 채널이 몇 없을 때 선택의 고민이 없었던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몇 안 되는 프로그램에서 나름 만족하며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방송에는 연예인만 출연하는 게 아니고 연예인 가족은 물론이고 장인, 장모, 외국인, 개, 고양이, 심지어 이혼한 사람끼리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다가 ‘나도 언젠가는 죽기 전까지 한 번은 텔레비전에 등장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부모님도 다 돌아가시고 형제들도 뿔뿔이 흩어져 예전처럼 한 방에 앉아 흑백 테레비를 볼 일이 없어졌다.

오늘따라 화질이 좋진 않았지만 여덟 식구가 저녁밥 먹으면서 흑백 테레비를 보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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