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적 우리집엔 소, 돼지, 닭, 가끔 개도 키웠다.
그 중에서 시골에서는 소가 농사일에 가장 도움이 많이 된다. 그래서 어렸을적부터 소를 이용해서 논밭을 갈고 무거운 짐도 나르고 나중에 쓸모가 없어지면 내다 팔아 가계에 도움을 주곤했다.
쟁기질 하는 소의 모습: 쟁기로 땅을 갈아 엎어주어야 땅속의 영양분이 골고루 섞여 농사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가끔 소 때문에 골치 아픈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농사일 나갈 때 소와 함께 손수레나 경운기도 함께 끌고 나가야 되는데 그럴때면 소를 손수레나 경운기에 줄을 묶어서 뒤따라 오게 한다. 특히, 경운기로 끌고 갈 경우 속도도 빨리 내지 못하고 천천히 간다. 가끔은 소새끼가 뒤따라 가는 중에 잠깐 멈춰서 길가에 풀을 뜯는 경우가 있다. 손수레로 가면 뒤에서 소가 풀을 뜯는 느낌이 들어 멈출 수가 있지만 경운기는 기계라서 뒤돌아보지 않는 이상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경운기 힘으로 끌고 가버린다.
그렇게 되면 풀 뜯는 소는 경운기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풀을 뜯다 앞으로 고꾸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본의아니게 전방 낙법을 하는 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실력 좋은 소는 거뜬히 다시 일어나지만 운동신경 없는 소새끼는 가끔 소뿔이 부러져 부상을 당하기도 한다. 어렸을때 그 모습을 보고 얼마나 아플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외양간의 소 그리고 들판에서 풀 뜯는 소가 이탈하는 경우가 있다. 먼 곳에서라도 다시 발견하면 천만다행이지만 이 놈이 자기 구역이 아닌 남의 밭이나 논에 들어가면 그날 이웃과 마찰이 발생하기도 한다. 시골에서는 서로 아는 이웃이니까 직접 어른끼리 욕은 차마 하지 못하고 ‘저 소새끼 또 우리 밭에 들어왔네. 빨리 나가’라고 큰 소리 치거나 작은 짱돌을 던져 쫓아내기 바빴다.
한 번은 내가 소를 몰고 들판에 풀 뜯어 먹이다가 소 목에 매단 줄이 끊어져 버리는 일이 발생하였다. 소새끼는 8.15 광복 이후 자유라도 얻은 듯 걸음을 재촉하며 지멋대로 이리저리 가고 싶은 곳을 다녔다. 결국 이웃집 밭에 들어가 헤집고 다녔다.
이웃집 아줌마는 빨리 소 목줄을 잡아서 끌어내라고 했지만 멀리서 소리치고 계셔서 목줄이 끊어진 줄 모르셨다. 나는 소새끼한테 너무 화가나서 발로 엉덩이를 차버리고 겨우 집으로 데려온 적도 있었다.
그래서 소는 나에게 있어서 애증의 관계다.
지금은 소를 사육장에 가둬 놓고 사료를 주며 키우지만 당시에는 겨울철 빼고는 들판이나 산으로 끌고 가서 풀을 뜯어먹인다. 사료비도 아낄 수 있고 무엇보다 인공사료가 아닌 자연에서 나오는 풀을 먹이니 자연 생식이 소 건강에도 좋았다.
하지만 나는 풀 뜯어 먹이는 게 정말 싫었다. 방과 후 놀지도 못하고 소를 들판으로 데리고 나가 두 시간 정도 풀 뜯어 먹여야 하니 얼마나 시간이 아까운지. 소 위가 4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러니 얼마나 많이 먹는지 참..
들판에서 풀을 뜯는 소새끼들 소를 들판에 풀어 놓고 나는 들판에 엎드려 학교 숙제를 하던지 그냥 이것저것 딴 생각을 하며 시간을 때워야 했다. 정말 심심했다. 그 때 나는 깨달았다.
동화속 양치기 소년의 그 지루한 시간의 아픔을....
“늑대가 나타났다!!” 거짓말로 외쳤지만 오히려 양치기 소년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나 심심했으면 저렇게 했을까?’
풀을 배불리 먹고 물이 있는 개울로 데려가면 물도 한 번에 한 바께스는 거뜬히 꿀꺽 삼켜버린다.
겨울이 되면 날씨 때문에 풀을 뜯어먹일 수 없으니 정말 좋았다. 대신 사료를 주거나 저녁만 되면 큰 가마솥에 소죽을 따로 끓여주었다. 가마솥에 이름모를 풀떼기와 짚, 콩 등을 넣어 장작불로 열심히 끓였다.
그래서 시골에는 저녁만 되면 가마솥에 밥할 때 나오는 연기와 소죽 끓이는 연기가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소죽 끓이는 풀맛 냄새가 맛을 보지 않아도 풀맛이 날 듯 구수했다.
소죽 끓이는 모습
시골 굴뚝 연기 모락모락그런데 나중에 커서 식당에서 육개장을 먹는데 깜짝 놀랐다. 육개장 냄새가 소죽 끓이는 냄새와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육개장 건더기도 소죽 건더기와 비슷한 느낌도 들어서 처음에 육개장 먹는데 반감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향의 향기이거니 생각하고 잘만 먹는다.
그리고 말도 마찬가지지만 소도 뒤에서 함부로 건드리고 까불다간 뒷발차기에 희생양이 될수 있다. 특히 태권도 발차기보다 몇 배가 강하니 잘못 맞으면 많이 아프다.
어렸을 때 동네 서너살 먹은 애가 멋도 모르고 소 뒤에서 까불다가 뒷발차기에 맞고 3미터 정도 뒤로 자빠진 것을 목격했다. 그 이후로 나는 우리 집 소한테는 뒤태만 구경하고 일절 건드리지 않았다.
다행히 옆에서는 소를 구경하는 게 그나마 안전하다. 소새끼가 태권도 옆차기는 덜 배워서 그런지 발이 45도 이상 올라가지 않아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이다.
송아지 얼짱 각도그리고 일년에 한 번 정도 송아지를 낳는데 집안에는 경사지만 나에겐 짐이었다.
풀 뜯어 먹이러 갈 때 두 마리를 데리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송아지라 개념이 없어서 지멋대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남의 집 논밭에 들어가기가 일쑤여서 관리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저놈의 소새끼, 빨리 자라서 내다 팔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뿐이었다.
결국 우리집 소는 온갖 궂은 일 다하고 말년에는 소시장에 팔려 장렬하게 전사하셨다. 그리고 1++한우로 환생하셨다.
1++한우. 죽어서도 우리 인간을 위해 희생하신 소님, 소새끼에서 소님으로 추앙받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가 아닌 "소새끼 함부로 대하지 마라!! 넌 죽어서도 우리의 혓바닥을 즐겁게 해줄수 있느냐?" 가 되셨다.
우리집엔 소말고도 조연급 가축인 돼지, 닭 그리고 똥개가 있었다.
돼지는 더럽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소보다는 좋았다.
적어도 돼지는 밖으로 데리고 나갈 일이 없어서 사고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날은 팔려가는 날이었다. 그냥 가둬놓고 먹다 남은 음식이나 주면 “킁킁” 냄새 맡다가 “꿀꿀”하며 잘만 먹었다.
새끼도 한 번에 여러 마리를 낳으니 가성비가 최고다.
닭도 마찬가지로 집안에서 키우니 말썽이 없어서 좋았다.
요놈은 달걀이라는 영양가 있는 제품을 낳으니 금상첨화다. 어느날은 학교에 갔다오니 닭한마리가 보이지 않았는데 아버지가 잡아 먹으셨다. 동네 친구분들과 옻닭을 해먹었다고 한다. 우리를 위해 열심히 달걀을 선사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저세상 가시다니 미안할 따름이었다.
개는 우리 집안과 맞지 않았던 것 같아 안타까웠다.
내 기억으로 두 번 정도 개를 키웠던 것 같은데 모두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첫 번째는 조금 큰 개였는데 어느날 학교에 갔다오니 농약을 먹고 죽었다고 했다.
두 번째는 엄마가 시장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사오셨는데 처음에는 어미로 잘 자라서 새끼까지 낳았다. 하지만 새끼 한 마리는 경운기에 밟혀 죽고, 또 한 마리는 소 뒤에서 까불다가 뒷발에 차여 죽었다.
‘내가 그렇게 소 뒷발차기를 조심하라 했건만..’
그리고 어미는 어느날 보이지 않았는데 역시 아버지가 복날에 친구들과 꿀꺽하신 것 같았다.
어렸을적 시골에서 가족과 마찬가지였던 이런 가축들이 이젠 시골에서는 거의 볼 수가 없다.
지금은 사육장에서 대규모로 공장에서 물건 만들 듯이 인공적으로 키우고 있을 뿐 자연스런 멋의 가축은 없어진지 오래다.
먼저 저세상 가신 어렸을적 그때 그 소님, 돼지님, 닭님, 개님들 하늘 나라에서 잘 계신지요? 그땐 우리 집안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특히, 소님!! 인도에 계셨으면 더욱 추앙을 받으실 분이었는데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저희 나라에서도 나름 선방하셨습니다. 다음 생애는 부디 인도에서 태어나거나 인간으로 태어나시길 천지신명님께 비나이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