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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작가 윤효재 Jul 02. 2024

청소년과 다수 철없는 어른?을 위한
21세기 전래동화

21세기 심청전 제1화

심학규는 옷이 흠뻑 젖은 채 손을 앞으로 더듬거리며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오다가 몇 번이나 넘어졌는지 젖은 옷에 묻은 흙과 모래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바닷가에서 집까지 얼마 되진 않지만 앞을 못 보는지라 겨우 집까지 도착했다. 마침 옆집에서 나오는 봉산댁이 심학규의 몰골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헉! 청이 아버지! 옷이 왜 다 젖었어요? 청이 엄마는요? 그리고 눈은 왜 감고 계세요? 제 미모가 그리 눈부신가요?”

“아니, 그게….”

심학규는 바닷가에서 있었던 자초지종을 봉산댁에 설명했다.

“세상에나! 「서프라이즈」에 나올 얘기네요!” 역시 봉산댁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봉산댁, 이건 청이한테는 절대 비밀이오.”     

그 후 심학규는 한부모가정이 되어 마을 사람과 봉산댁의 도움으로 청이를 열심히 키웠다.

“아빠! 아빠는 어쩌다가 눈이 안 보이게 됐어? 엄마는 왜 없어?” 어린 청이는 항상 궁금해했다.

“아, 그건… 나중에 청이 네가 크면 말해 줄게.”     

세월이 십여 년이 흐르자 청이는 다시 물었다.

“이제 내가 컸으니까 아빠 눈이 왜 안 보이는지 말해 줘. 그리고 엄마 얘기도.”

“그건… 어느 날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미끄러져서 바다에 빠졌지. 그때 네 엄마는 돌아가시고 나는 봉사가 되었단다.” 심학규는 말하면서도 그때를 생각하니 입술이 떨렸다.

“고기 잡다가 미끄러졌다고? 미끄러졌는데 봉사가 될 수 있어?” 청이는 뒷이야기를 더 해 달라는 듯 물었다.

“여기까지!! 더 이상은 노코멘트!! 내 설정이 신비주의잖아. 허허.” 심학규는 손을 더듬어 뭔가를 찾는 척 넘어갔다.     

심학규는 남의 말을 너무 잘 믿어서 별명이 ‘팔랑귀’였다. 그는 정부가 지원하는 맹인 학교에서 지압 기술을 배워 지압원을 운영했다. 앞을 못 보는 대신 그의 귀와 손 감각이 눈을 대신했다.

청이는 어려서부터 소녀가장이 되었다.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도 하며 아버지를 위해 밥벌이를 했다. 청이가 없을 때 심학규는 홀로 마루에 앉아 ‘혼밥’을 즐겼다. 밥풀과 반찬 흘리는 줄도 모르고 입에 넣어 오물오물했다. 사정을 잘 아는 쥐 한 마리가 옆에서 여유 있게 주워 먹었다.

청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저녁에 심학규는 마루에 앉아 청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우리 청이가 컴백할 때가 되었는데 오늘 유난히 늦는구나.”

그때 문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났다.

“오, 웰컴 투 우리 청이!” 심학규는 마루에서 일어나려 했다.

“아닙니다, 어르신. 지나가는 중이외다. 시주 좀 하시지요.” 스님은 목탁을 안단테(느리게) 속도로 두드렸다.

“시주요? 보다시피 앞 못 보는 봉사인 데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해 죄송합니다.” 심학규는 실망하며 다시 앉았다.

“어허, 그것 참 딱하게 되었군요. 제가 아는 용한 무속인이 있는데 그 무당한테 굿을 하면 눈을 번쩍 뜰 수 있다고 합니다.”

“네! 정말이오? 거기가 어딥니까?” 심학규는 다시 일어섰다. 역시 팔랑귀였다.

“마침 제가 그쪽으로 가는 중이니 함께 가시지요. 앞을 못 보니 제가 안내해 드리지요. 출바알!!” 스님은 목탁을 알레그라토(조금 빠르게)로 두드렸다.

“고맙소. 이 은혜는 잊지 않겠소.”

심학규는 스님 승복을 잡고 근처 낮은 산으로 향했다.     

“이제 다 왔소. 여긴 꽃선녀 보살이오.”

보살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스님은 심학규 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말이 꽃선녀지 실은 할매요.”

“아…! 어흠…! 보살님, 제발 눈 좀 뜨게 해 주시오. 제 딸 청이 얼굴을 보는 게 소원이오.” 심학규는 보살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걱정 마세요.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지금 당장 굿을 하시지요. 사주나 빨리 불러 주세요. 다음에 여기 또 찾아오긴 힘들잖아요.” 보살은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심학규의 감긴 눈을 보며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요? 고맙습니다.” 심학규는 고개를 숙여 꾸벅 절했다.

보살이 한 시간 정도 땀을 흘려 가며 방울을 미친 듯이 흔들고, 스님은 옆에서 도와주었다.

“이제 끝났습니다. 보름 후면 눈을 뜰 테니 걱정 마세요.” 보살은 제주 삼다수를 원샷하고는 땀을 닦았다.

“보살님, 정말 고맙소.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 심학규는 이미 눈을 뜬 듯한 표정이었다.

“은혜요? 당연히 갚아야지요! 열흘까지 3억만 준비하시면 됩니다. 더 받으려고 했으나 제 첫 고객인 데다 이벤트 행사 기간이라 특별히 파격 세일이오!” 부드럽던 보살의 목소리가 딱딱해졌다.

“네? 3억이요? 에이! 3십만이겠지. 카카오뱅크로 입금해 주겠소. 계좌 번호나 여기 적어 주시오.” 심학규는 손바닥을 내밀었다.

“혹시 영탁이 팬이신가?” 보살이 뜬금없이 물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요?” 심학규는 흰자위만 보인 채 고개를 들어 보살을 쳐다보았다.

“왜 자꾸 영탁이 막걸리 한잔하는 소리 하시오? 영감쟁이가 이제 귀까지 먹으셨나? 달팽이관이 외출 나갔소?” 보살은 심학규의 귀를 쭉 잡아당기고는 또 소리쳤다. “3억! 3억!! 억!! 억!! 억!! 일주일내로 안 주면 저주가 시작될 것이오. 그 귀까지 멀 줄 아시오! 썩 내려가시오!”

옆에 스님은 한심한 듯 심학규를 쳐다보았다.

“아니, 세상에 공짜가 어딨소? 눈을 뜨게 해 준다는데 그깟 3억이 문제요? 여기 계좌번호가 있으니 입금이나 시키시오. 내려가는 길은 알아서 가시오. 난 이제 모르겠소!” 스님은 명함을 쥐여 주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꽃선녀 보살과 스님은 자신들의 능력을 나쁜 쪽으로 이용하는 사기꾼들이었다. 평소 팔랑귀로 소문난 심학규를 목표 삼아 이런 몹쓸 짓을 한 것이다.     

등산객의 도움으로 겨우 산에서 내려온 심학규는 주름이 더 깊어진 얼굴이었다. 차마 청이를 마주할 수가 없었다.

청이는 아버지 말을 듣고는 하늘, 아니 지붕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내가 눈 뜰 욕심에 괜한 짓을 했구나.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꼬?” 심학규가 감은 눈에 힘을 주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너무 걱정 마세요, 아버지. 일부러 겁을 주려고 했을 거예요. 일단 기다려 봐요.” 청이는 안심을 시켰다.

“제발 일주일 뒤 아무 일 없어야 될 텐데….”

심학규는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가시방석이었다. 청이도 설마설마하며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일주일이 다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자 보살과 스님은 다시 굿을 준비했다.

“흥, 본때를 보여 주마. 시작하시지요.” 보살이 다시 방울을 잡았다.

“네, 할매. 아, 아니 꽃선녀 보살님!”

보살은 짚으로 사람 모양의 인형을 만들어 저주의 굿을 시작했다. 붉은 글씨가 적힌 악귀 같은 부적을 인형의 가슴에 붙였다. 귀를 멀게 해 달라고 또 방울을 미친 듯이 흔들어 댔다.

며칠 뒤 심학규가 집에 혼자 있는데 귀가 멍해졌다. 손바닥으로 귀를 몇 번이나 쳤다.

‘어! 소리가 왜 잘 안 들리지?’

아침마다 들리던 새 소리가 약하게 들렸다.

‘새들이 늦잠 자고 있나?’

그러자 밖에서 그 땡중이 다시 찾아왔다. 그러고는 얼굴을 심학규 귀에 가까이 갖다 댔다.

“점점 귀가 안 들릴 것이오.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이제 눈 뜨는 건 다 틀렸소. 귀라도 다시 들리게 하려면 3억을 빨리 준비하시오!”

“몹쓸 놈들!! 당신들을 사기꾼으로 경찰에 신고하겠소!” 심학규는 주먹을 쥐고는 부르르 떨었다.

“신고? 굿을 해서 귀가 안 들린다고 할 거요? 과학적 증거도 없이 그 말이 증거가 되겠소? 맘대로 하시오!” 땡중은 음악 용어에도 없는 빠르기로 목탁을 치며 사라졌다.     

집에 돌아온 청이는 저주가 사실이었음을 알고는 밤새 뜬눈으로 지냈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발바닥까지 내려앉을 지경이었다.

‘당장 어디서 3억을 구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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