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르셀로나 2일 차 - 1.
남편과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면서,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으로 계획했기에 중간중간 관광지를 다니면서 설명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에서는 가이드 투어를 미리 알아보고 예약했다. 나는 가이드 투어 받는 걸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내가 잘 모르는 곳에 여행을 가서 박물관을 가든 건축물을 보든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이나 문화를 압축해서 먼저 듣는 것이 내가 작품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전체적인 큰 틀의 배경지식을 갖는데 훨씬 도움이 많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긴 시간 스페인에 머무른다면 혼자 책을 읽으며 천천히 공부하고 부딪혀갈 기회들이 많겠지만, 단기간 여행은 스페인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기에 그 기간 안에 많은 것을 흡수하고 배우려면 전문 가이드분의 설명이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 외에도 가이드 투어를 한다는 것의 또 다른 장점은 바로 여행 온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투어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비록 오랫동안 이어질 인연도 아니고 투어 시간만큼만 함께 하다 인사하고 헤어질 인연들이지만 예상치 못한 잠깐의 만남들을 통해서 내가 받는 좋은 에너지가 있다는 것도 많이 느꼈다.
둘째 날은 내가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가면 가장 하고 싶었던 가우디 투어를 하는 날이었다. 매번 스페인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 항상 나오는 가우디의 건축물들. 여행 TV프로그램에서 볼 때, 가늠할 수 없는 장엄함을 느꼈는데 실제로 보면 어떨까. 항상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던 거 같다. 정말 실제로 볼 수 있게 되다니. 너무 설레고 기대됐다는 표현으로는 다 담지 못하는 마음들이 있었다는 말 밖엔 그 이상의 표현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아침 9시 30분에 가이드와 만나서 오후 4시까지 부지런히 걸어 다니며 가우디의 작품들을 보기로 되어있기에 아침을 든든히 먹고 만나기 위해 남편과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해서 나갔다. 스페인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아침을 보통 늦게 시작한다. 그래서 아침 식당들도 보통 문 여는 시간이 10시 정도 되는데 그래도 식당들 중에 아침 일찍 문 여는 데도 많기에 우리는 숙소 근처에 맛집을 찾아갔다.
8시 30분에 오픈하자마자 들어가서 브런치를 시켜서 먹었는데 사람도 없고 음식은 어찌나 고급스러웠던지.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먹는 브런치가 정말 너무 맛있었다. 스페인에서 브런치라니. 분명 스페인에 온 지 2일 차인데도 순간순간 마음이 설레는 건 왜일까.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면서 오늘 하루 가우디 투어가 너무 기대됐다.
가이드 투어 약속시간에 맞춰 장소로 가니, 가이드 분과 신혼부부 한 커플이 있었다. 우리가 그쪽으로 다가가니 이름을 확인하고 서로 인사를 하고 바로 이동했다. 우리와 같이 동행하는 커플은 신혼여행을 왔다고 했다. 우리 보고도 신혼여행 온 거냐고 묻기에 우리는 신혼여행은 아니고 부부여행이라고 했다. 신혼은 아니니깐. 그 멘트가 재밌었는지 서로 웃었다. 이제 막 결혼해서 신혼여행을 온 커플을 보니 몇 년 전 나도 결혼했을 때가 떠올랐다. 이제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 새 삶을 시작하는 부부. 신혼부부의 풋풋함이 느껴졌달까. 왠지 모르게 그 신혼부부를 보고 있노라니 웃음이 지어졌다. 함께 이동하면서 가이드 분과도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스페인 남자분과 결혼해서 스페인에서 살고 계시다고 했다. 나는 또 물어봤다. 어떻게 스페인에 처음 오시게 되셨냐고. 가이드 분이 답하길 가우디 건축물이 좋아서 처음엔 오게 됐고 와서 살다 보니 스페인이 좋아졌고 그렇게 스페인 남자분을 만나 정착하게 됐다고 들었다. 새로웠다. 나는 외국은 여행이나 가보고 싶어 했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데. 아니 못해봤다. 그런데 외국에서 살면서 외국사람과 결혼까지. 내가 생각지도 그려보지도 못한 삶을 살고 있는 분과 대화를 하니 더 흥미로웠던 거 같다. 그런 삶을 살 수도 있구나. 그렇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못했는데. 본인들이 선택하고 삶을 꾸려가는 방식은 다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가이드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조금 걸어가니 가우디의 건축물 앞에 다다랐다.
처음에 방문했던 건축물은 가우디가 유명해지기 전, 건축했던 건물인데 여러 건축물들 사이에 있어도 첫눈에 가장 예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우디가 활동했을 당시, 스페인의 산업이 발달하여 부자집안이 많이 나왔었는데 그 시대에 돈을 번 사람들은 본인들의 집을 특색 있고 예쁘게 꾸미는 게 유행이었다고 했다. 가우디는 신앙이 깊은 사람이어서 본인이 지은 건축물에는 꼭 본인의 시그니처인 십자가를 만들어 넣었다고 했다. 처음에 우리가 봤던 건축물은 가우디가 유명해지기 전이어서 가우디의 특색이 많이 나타나진 않았다고 했다. 가우디가 본인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낸 시기는 이 처음 건축물이 대상을 받고 나서부터였다고 했다. 천재 건축가 가우디도 처음부터 본인의 색깔이 선명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조금씩 인정을 받으며 점점 더 본인의 색깔을 찾았다는 것. 동서를 막론하고 통용되는 진리인 거 같아서 신기했다. 그리고 내가 용기를 얻었다고 할까?
정말 유명하고 모두가 인정하는 사람도 처음 시작부터 잘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 차근 차근히 시간이 쌓이고 노력이 쌓이고 그런 꾸준함 속에 좋은 기회를 만나고 본인의 색깔을 점점 더 갖추게 된다는 것. 뭔가 삶의 진리인 거 같기도 했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나는 너무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길 바랐던 건 아닐까? 어쩌면 그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고 나는 재능이 없다고 포기했던 건 뭐가 있을까? 내가 최선이라고 했던 노력은 정말 최선이었던 걸까? 나의 삶을 그리고 나를 되돌아봤다.
첫 번째 건축물을 구경하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까사바트요와 까사밀라로 갔다.
두 건물이 다 근처에 있었다. 이 두 건축물은 이제 가우디가 본인만의 색깔을 잘 드러냈던 건축물이라고 해서 더 궁금하기도 했다. 이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고 유명 해졌을 텐데 어떻게 표현을 했을까. 얼마나 과감하게 나타냈을까. 기대가 됐다.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여러 건축물들 사이에 있어도 한눈에 가우디의 작품을 알아볼 수 있었다. 지금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내가 봐도 우와..
어떻게 저렇게 만들 수 있었을까 하는데 그 당시에는 정말 파격적이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그 마음을 건축물에 담으려고 하고, 항상 기존 생각의 틀을 깼던 가우디의 표현은 나로 하여금 새로운 자극을 주기도 했다.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건축을 했을까. 건축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등등 가우디 투어를 하며 설명을 듣고 감상하는 동안 그 순간에 흠뻑 빠져들었던 거 같다.
오전시간에 이렇게 구경을 하고 나서, 점심시간을 가졌다. 가이드 분께서 쭉 맛집을 리스트에 메뉴까지 정리해서 보내주셨다. 가이드 투어를 받으면서 가우디에 대해 많이 알게 되는 것도 좋았지만, 스페인 여행에 있어서 필요한 정보들을 스페인에 살고 있고 직접 경험한 게 많은 가이드분께 물어서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것도 굉장히 큰 장점이라고 느껴졌다. 가이드 분이 안내한 식당은 밖에서 먹을 수 있는 곳이었고 추천 메뉴 중에 먹고 싶은 음식인 꿀대구와 타파스, 레몬맥주 클라라, 샹그리아등을 시켜서 정말 여유롭게 지나가는 스페인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며 음식에 감탄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또 모이기로 한 시간이 됐다. 스페인은 식사를 할 때, 식사와 술을 곁들이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 문화다. 나는 평소에 술을 마시는 사람은 아니지만, 스페인 여행 동안은 샹그리아를 음료처럼 마셨던 거 같다. 와인에 달콤한 과일이 들어가 있는 샹그리아가 어찌나 맛있던지. 약간의 알코올은 나를 여행 중에 더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던 거 같다. 그렇게 행복한 점심시간을 보낸 후, 오후엔 전철을 타고 제일 유명한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로 가기로 했다.
내가 제일 기대했던 곳.
스페인 여행 중 제일가보고 싶었던 곳.
가우디가 생을 마감하는 그 순간까지,
혼신의 힘과 열정을 다했던 그곳.
얼른 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