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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련 Apr 17. 2023

7박 9일 스페인 여행기_3

바르셀로나 2일 차_2


가이드가 추천해 준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서 TV프로그램에서나 봤던 낭만적인 식사를 하고 나서 가우디 생애의 최고의 건축물로 불리는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으로 향했다. 전철을 타고 이동했는데, 스페인 전철은 스크린 도어가 없어서 한국 사람인 나는 처음에 스페인 전철을 보니 약간 위험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스페인에서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할 때, 특히 전철을 이용할 때는 항상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 철저한 준비를 하고 갔건만, 지하철을 탈 때마다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다. 다행히도, 스페인의 관광지는 다 근거리에 있어서 이동시간이 길진 않았고, 역간 거리도 길지 않아서 전철을 타는 시간 자체가 적었다. 뭔가 스페인은 엄청 큰 나라이지만, 관광할 곳은 중심지에 모여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가이드분과 함께 지하철로 조금 이동 후 우리는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이 있는 역에 도착했다.



나는 스페인에 가기 전부터 여행 프로그램을 반복해서 보고 기대도 정말 많이 했던 터라, 살짝 걱정도 됐었다. 어렸을 때도 어디 간다고 하면 혼자 설레어하다가 잠도 설쳤는데 실제로 가면 내가 기대하고 상상했던 만큼이 아니어서 실망했던 적이 많았기에 어른이 되고 나서는 이런 실망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 기대 자체를 안 했다. 마음은 기대되지만 그 기대를 내 의지로 억누르고 시니컬하게 반응했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자꾸 실망하는 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를 사용했던 것 같다. 그렇게 20대를 훌쩍 보내고 나니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즐거움도 잃어버리고 감정도 메말라버린 상태로 가장 아름답게 꽃 피울 20대를 흘려보낸 거 같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된 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세상에 허락된 것들에 내가 느끼는 대로 감탄을 하며 사니 삶이 조금 지치고 힘들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약간의 힘은 얻을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하다. 무튼 나의 이런 기억들로, 혹여나 내가 너무나 기대하고 보고 싶었던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이 실제로 내 기대만큼 이 아니면 어쩌지? 솔직히 약간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전철역에서 나와 바로 뒤에 있는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는 순간, 정말 괜한, 쓸데없는 걱정이었음을 그리고 그런 걱정을 한 내가 정말 어리석었음을 자각했다. 그렇게 수십 번을 TV프로그램에서 보고 책도 반복해서 읽었건만, 내 눈앞에 있는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에 나는 순간 그대로 멈춰 서서 얼음이 되었다.



가이드분의 안내로 우리는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외부를 전체적으로 크게 돌면서 설명을 들었다.

점심을 먹고 갔기에 오후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관광을 왔고,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이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은 충분히 올 가치가 있는 곳이라는 게 느껴졌다. 2일 차 가이드 투어에서는 성당 내부로 들어가진 않고 전문 가이드분의 전체적인 설명을 듣고 남편과 나는 다음날 개인적으로 내부 티켓을 예약해서 관람하기로 했기에, 더 집중해서 가이드분의 설명을 들었다. 가우디는 신실한 신앙인이었기에 이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에 본인의 삶을 거의 다 쏟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다.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의 높이는 한눈에 보기에도 정말 높고 규모도 큰데,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곳이 몬주익 언덕인데, 가우디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연의 높이보다 인간이 만든 건축물이 높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몬주익 언덕보다는 낮게 설계를 했다고 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만약 가우디였다면, 내가 만든 건축물로 인정받고 싶으니 더 높게 지어 역시 대단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이미 그 얘기를 들을 때부터 나는 숙연해졌고 가우디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계기는 아무래도 내가 다 알지 못하는 가우디의 삶 속에 거부할 수 없었던 하나님의 사랑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그리고 이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을 설계할 때부터

이미 본인의 생애엔 다 완공할 수 없을 거란 것도 알고 있었고, 후대에 기술이 더 발전하고 좋은 건축가들이 그 뒤를 이어 멋지게 완성해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와.. 시작할 때부터 완공할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시작했고, 완공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본인의 생애에 가장 긴 시간, 가장 큰 공을 들여 시작한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의 건축. 설명을 듣는 순간순간마다 나의 생각을 깨고 울림을 주는 가우디의 삶과 가치관이 계속 파도치듯 내 마음을 두드리며 감동을 줬다. 그리고 이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 건축은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며, 해마다 건축기술이 발전해서 빠르게 지어지고 있다고. 곧 돌아오는 2026년에 완공된다고 했다. 누구 한 사람만의 작품이 아닌 긴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정성으로 완성되는 이 자체로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정말 조금씩 알면 알 수록 놀랍고 새로웠다. 그리고 남편한테 속삭이듯 얘기했다. 2026년에 이 성당이 완공되었을 때, 또 보러 오고 싶다고.



그렇게 전체적으로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고 우리는 이번 가우디 투어의 마지막 코스인 구엘공원으로 향했다. 구엘공원으로 이동할 땐, 택시를 타고 이동했는데 스페인에서 택시를 타니 색다르고 신기했다. 한 10여분 이동해서 드디어 구엘공원에 도착했다. 입구부터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동화 속 과자집처럼 아름답게 꾸며진 건축물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구엘공원은 구엘이란 부자가 가우디의 건축물을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 본인도 건축물을 의뢰했고 그 이후 구엘은 언제까지나 가우디의 든든한 응원자였다는 설명을 들었다. 뭔가 결이 맞는 사람을 한눈에 알아본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엔 사람들을 오랜 시간 길게 겪지 않아도 온라인상에서라도 대화를 해보면 ‘나와 통하는 사람이네?’ 혹은 ‘나와 결이 비슷하네’라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아마도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그냥 짧은 내 생각으로 지레짐작해 봤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그 자체만으로 힘이 된다는 걸 여러 일들을 겪으며 깨달아가는 중이다. 그렇기에 그런 인연의 소중함 또한 조금은 알 거 같았다.


동화 같은 건물이 있는 정문 앞에서 가이드분께 구엘공원의 전체적인 설명을 듣고 2일 차의 가이드 투어는 마무리가 됐다. 우리는 구엘공원 티켓을 미리 예매해 놨기에 설명을 밖에서 듣고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하는 건 각자 자유롭게 진행이 되는 거였다. 아침 9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꽤 긴 시간이었는데, 정말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건 아마도 내가 정말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서인 것 같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웃으며 가이드분과 헤어지고 우리와 동행했던 신혼부부와도 행복한 결혼 생활하시라고 인사를 하고 각자 자유롭게 흩어졌다. 짧았지만, 즐거웠고 기분 좋은 만남이었다.



남편과 나는 구엘공원 안으로 들어갔는데, 역시나 관광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구엘공원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바로 도마뱀 분수인데 도마뱀 다리를 만지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고. 옛날의 나라면, 그런 얘기에 별 반응을 안 하고 사람 많은 곳에서 줄 서는 것도 싫어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작은 거 하나라도 직접 경험하고 부딪히고 느끼고 싶기에 도마뱀 발을 만지며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 사이에 줄을 서서 조용히 내 순서를 기다렸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소녀 감성이 되는 것 같은 건 내 기분만은 아니리라. 그런데 나는 요즘 어린아이 같은 그런 내가 참 좋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거에도 내가 의미를 부여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나에게 큰 활기를 주는 것도 없다고 느껴서일까? 내게 허락된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님을 항상 고백하고 기억하려고 한다. 감사하면서 살 수 있게.



관광을 할 때, 비록 사진 하나를 찍더라도 오랜 시간 줄을 서야 하고, 인기가 많은 곳은 많은 인파 속 소매치기를 경계하느라 그곳 자체를 오롯이 느끼고 집중하지 못할지라도, 내가 이곳에 있을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마음을 활짝 열고 더 크게 더 많이 느끼리라. 이렇게 새로운 자극이 나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함을 느끼며 스페인 여행 2일 차도 마무리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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