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한 시간

by 수박씨

회사 뒷담화 전문 앱 '블라인드'에 "단체로 밥을 같이 먹어야 하나, 맨날 같은 얘기 해서 할 말도 없는데 혼자 먹고 싶다"라는 글이 인기였다. 너나 할 것 없이 혼자 먹으세요, 다른 부서와 약속을 잡으세요, 다이어트한다고 하세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은따로 생각하는 유일한 이유가 밥친구가 없다는 거였는데, 밥을 맨날 같이 먹어도 고민이구나 싶었다. 밥친구에 연연했던 내가 머쓱했다. 나름의 이유가 있기는 했지만, 나도 이 시간을 그냥 즐기는 방향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7번째 이직하여 공무원으로 정착 중인 한 친구는, 이직자는 기존 멤버에 끼기 힘드니 그냥 '존버'하라는 가장 와닿는 조언을 해줬다. 더 이상 관계를 생성하는 것도 귀찮은 나이라는 것. 친구는 점심시간에 김밥 주는 영어학원에도 다녀봤다 하고, 그녀의 지인은 요가학원을 다니며 운동을 했단다. 이 나이에 '왜 나랑은 안 놀아줘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는 뭘 하면서 1시간을 유용히 사용할까 고민해본다. 역시나 책과 글인가? 운동도 하고 싶고, 공부도 하고 싶어 지네.


그래서 오늘은 출근길에 야심 차게 모바일로 주변을 탐색했다. 평소에 하고 싶었으나 시간이 없어 못했던 것들. 먼저 속눈썹 펌과 페디큐어 예약을 질렀다. 페디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었지만, 여름이 되니 민낯의 발이 부끄러워 큰 맘먹고 시도해 보기로 했다. 속눈썹 펌은 아침마다 역시나 민낯의 얼굴을 마주하며 생각하는 시술이었는데, 광화문에 있다 보니 점심시간에도 할 곳은 널려 있었다. 이걸 왜 여태 몰랐는지! 사무실 안에서만 전전 전긍 긍하는, 새장에서 풀어줘도 새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불쌍한 새 같았다. 마지막으로 회사 건물 맨 아래층에 있는 필라테스! 이벤트 전단지를 맨날 흘려보냈는데, 오늘은 내가 먼저 가서 상담을 받아봤다. 코로나라 그런지 할인도 많이 되어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고픈 마음도 들었다. (동네 태권도장 확진자가 헬스장 다니던 엄마에서 시작하여, 그녀의 일가족이 모두 확진 판정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당분간은 접기로 했다. 또르르르)


점심시간 한 시간은 생각보다 다양한 걸 할 수 있었다! 약간의 비용이 예상되긴 하지만, 무언가를 해보기에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고, 이젠 그 기록을 남겨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