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T 찬가

by 수박씨

딸들 품속에 끼어 잠을 뒤척이다가 새벽에 눈을 떴다. 다시 잠들 기미는 없었다. 어둠 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다 문득, ‘사서교사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해 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홈페이지를 뒤적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한 달 100만 원으로 살아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현실은 100만 원을 훌쩍 넘긴 180만 원에서야 겨우 종지부를 찍었다. 그것도 꽤나 아껴 쓴 결과였다. 밥만 먹고살아도 100만 원으로는 빠듯할 판인데, 아이들 교회며 학원에서 단복비, 합숙비, 캠프비 같은 예상치 못한 지출이 수시로 날아들었다. 아이 안경이 부러져 다시 맞추는 비용, 언니네가 놀러 와 대접하는 비용까지 더해지니 지출은 멈출 줄을 몰랐다. 독서 수업 단 한 명으로는 이 구멍을 도저히 메울 수 없었다.


나는 다시 교육청 홈페이지를, 사서이마을 카페를 매일같이 들락날락거리기 시작했다. 혹시 일할 자리가 없을까 해서였다. 학교 사서 자리는 없을 거라 단정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공무직 채용 공고가 눈에 들어왔다. 작년, 재작년 공고까지 거슬러 살펴보니 손에 꼽을 만큼 드문 자리였다. 경쟁률이 얼마나 높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대중교통으로는 갈 수 없고, 차로도 40여 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아쉽지만 군침만 삼킨 채 접어야 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아 매일같이 공고를 뒤적이다 보니 기간제 교사 자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일할 수 있는 선택지를 넓히려면 대학원 진학도 고려해봐야 하나?’ 다시 생각이 그쪽으로 흘렀다.

그래서 나는 챗GPT에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추천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이런 질문을 던졌다. “직함이 필요한가요, 아니면 교육하는 삶이 필요한가요?” 그리고 덧붙였다. 마흔 중반의 나이라면 ‘이제 시작’보다는 ‘이미 해온 것을 어떻게 묶어 공인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이렇게 나를 잘 안다고? 그동안 내가 던졌던 질문들, 쌓아온 고민들을 누군가 한데 모아 정리해 준 느낌이었다. 챗GPT는 수업 브랜딩까지 제안해 주었다. ‘화 많은 아이를 위한 감정 독서·글쓰기’. 주제와 대상이 놀라울 만큼 또렷해졌다. 그리고 그 방향은, 사실 가장 가고 싶었던 길과 정확히 겹쳐 있었다. 논술 수업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조금 더 자유롭고, 나 자신을 해방시키는 글쓰기를 공유하고 싶었다. 나 자신을 찾아준 일등공신이 글쓰기였으니까. 잊고 있던 마음을 챗GPT가 일깨워주었다.


나는 끝내 다시 잠들지 못했다. 조용히 자리를 박차고 나와 노트북을 열었다. 관련 책들을 검색하고, 이 일이 정말 실행 가능한지 하나씩 가늠해보고 있다. 사람들은 챗GPT에게 개인 신상을 너무 많이 이야기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정확한 상담을 받는데, 어떻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맙다, 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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