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에도 두달간 폴란드 출장을 다녀왔는데, 하반기에도 또 나갈 것 같다던데 오늘이 그날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지난번에 다녀와서인지 짐을 어떻게 싸갈지 뭘 싸갈지 가닥이 보이는지, 척척 싸갈 짐을 노트에 적고 차근차근 정리한다. 워낙 나보다 꼼꼼한 사람이니 뭐 크게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잔잔바리 먹거리들을 뭘 얼만큼 챙겨 넣어줘야 하나 고민만 할 뿐. 뭘 싸줘야 할까. 마트에서 사야 할 것들 리스트를 정리해 보는데 남편이 별로 싸갈 것이 없단다. 현지에서 해결하면 된다고 한다.
남편은 미식가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이 구체적이며 상당히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많다. 잘 먹기도 하지만 맛있는 음식이어야 하고 양도 중요하다. 어찌 보면 다양한 음식과 맛을 추구하는 그의 취향을 따라가기가 버거울 때도 가끔은 있다. TV에서 패널들이 맛있게 음식을 먹는 방송이나 산지에서 싱싱한 재료를 잡아 요리를 하는 장면들을 보면 남편은 감탄사가 끊임없이 터져 나온다.
"와~ 맛있겠다. 캬! 저거 저거지. "
그런 방송을 봐도 별 감흥이 없는 나로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기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싶어 하는 남편을 위해 맛집을 검색하는 능력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고, 실제로 맛집을 다니며 기록을 하고 찐맛집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치도 생기게 되었다.
이런 미식가인 그에게 출장이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음식과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다는 것?!
여행을 가도 현지 음식을 로컬식당에서 다양하게 맛보고 체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 새로운 출장지에서의 음식은 그에게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사실. 상반기 출장 때에는 즉석밥과 컵라면, 김치, 통조림반찬등을 골고루 넉넉히 챙겨 보냈었다. 그런데 다녀와서 하는 말이, 다음에 갈 때에는 폴란드에도 워낙 한국인들이 많이 살아서 한국식품도 팔고, 회사 내 식당에서 김치도 판다며 별로 싸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쌀도 베트남쌀을 15분이면 간편히 지어먹을 수 있는 것이 있다 보니 즉석밥도 고심하던 그였다.
이번에는 딱히 장 볼 것이 없다고 하던 그와 마트에 나섰다.
그는 주섬주섬 신라면을 담고, 김치 500g짜리 두 봉지를 넣는다. 즉석밥은 주문해 두었다고 하고 뭐 별로 안 싸간다 해놓고 주섬주섬 카트에 물건들을 담기 시작한다.
"그래, 쌈장, 쌈장을 사가야 해. 쌈장 어딨지?"
주말에는 함께 가는 직원을 숙소로 초대해 삼겹살을 구워 먹을 거란다. 지난번에도 동료 직원과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는데 막상 쌈장이 없어 아쉬웠다고.
"그래, 한국사람이라면, 고기에는 쌈장이지!"
폴란드는 고기가 참 싸다고 한다. 지난 출장 때에는 스테이크, 삼겹살등을 사다 집에서 구워 먹거나 레스토랑에서 먹어도 한국보다 가격이 착하고 양이 많아서 좋았다고 했던 남편이었다.
출장 다녀오자마자 폴란드에서 소고기는 100그램에 얼마였는데 한국이랑 비교하면 엄청 싼거라며 열변을 토하던 남편. 갑자기 하반기 출장이 당겨져 출장이 확정된 후 남편이 가장 먼저 했던 말은,
"폴란드 가서 고기 많이 먹어야겠다."
아니,고기를 못 먹고 자란 세대도 아닌데, 그동안 먹은 고기도 참 많을 텐데, 고기가 그리 맛있나. 요즘은 비건지향하는 문화가 늘어나고, 기후 변화와 동물복지적인 차원에 있어서 고기소비를 줄이자는 운동이 한창인데, 우리 집 남자들에게는 고기 없는 식탁은 아쉬움 그 자체이다.
삼겹살을 구워 먹는 문화가 발달된 우리나라지만, 나는 정작 삼겹살을 좋아하지 않는다.
기름이 많기도 하지만, 집에서 요리하면 구울 때 튀는 기름이 처치곤란이기도 하고, 놀러 갈 때나 한 번씩 구워 먹는 음식정도의 개념이었다. 삼겹살은 안 먹고살아도 큰 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며, 삼겹살을 굳이 사 먹으러 식당에 가는 일은 거의 없기도 하다. 고기를 구워 먹을 일이 있다면 정말 나는 고기에 올인하고 식사류는 생략하는 편이고 냉면이나 찌개에 밥을 먹는 일도 없다.
그런데 내 아들은 맨밥에 고기를, 그리고 식후 된장찌개에 밥을 또 한 그릇 먹는다..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으로 이루어진 고영양 한 끼 식사라니.
남편에 이어 요즘 고기 먹는 양과 속도가 무서운 한창 커가는 승냥이 같은 아들의 고기사랑도 살짝 무섭다.
"엄마, 오늘 반찬은 고기 없어요?"
식사 준비할 때마다 살짝 무서워진다...
행여 터질까 싶어 지퍼백에 여러 번 고이 싸준 쌈장 한통으로 맛있게 폴란드 삼겹살을 구워 동료에게 대접할 남편을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