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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선 Sep 15. 2023

프롤로그

집밥이 좋아

중학교 2학년인 큰 아이가 등교하기 전 준비물이 있다면서 토마토와 양파를 달라고 했다. 금요일마다 요리를 하는데 오늘은 햄버거 만들기라고 한다. 선생님이 고기와 빵을 가져올테니 나머지 재료를 각자 준비해 오라고 했단다. 아이가 오늘 유난히 신나하며 등교를 했다. 한국에 ‘실과'와 '가정'이라는 과목이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초등과정)와 중학교에서는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과목들을 꾸준히 접한 것으로 기억한다. 마흔이 넘은 지금도 과제에 대한 기억이 어슴프레 남아있으며, 아직까지도 잘 써먹고 있는 것은 다양한 손바느질과 실매듭을 짓는 것이다. 손으로 배운 것은 잘 기억하는 편이다. 바느질 외에도 앞치마를 두르고 하는 간단한 요리시간이 참 즐거웠다. 그때 만들어 먹었던 과일 사라다 와 계란과 오이가 잘게 썰어 들어가 오독오독 씹히는 계란 샌드위치 맛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유난히 여학생들이 신나 했던 과목들이기도 했지만 그 수업시간 외에 엄마의 도움이 절실한 숙제도 있었다. 엄마가 반 이상 만들어준 바늘 보관함은 아직도 가지고 있다. 과제가 나올때마다 손 바느질은 물론 집안일을 잘하는 엄마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바느질, 다리미질, 설거지, 야채 손질 등을 어깨 너머로 집안일을 배운 것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하지만 주부 9단 엄마의 최고점은 요리이다. 그 시절 우리 가족에게 엄마는 마스터 셰프가 아니었나 싶다. 무엇이든 만드는 요리 마술사 같았다. 80년대에 흔하지 않았던 서양식 피자나 스파게티를 집에서 먹을 수 있었던 나는 엄마 요리를 자랑하고 다니기도 하였다. 엄마가 싸 준 도시락 중 작은 상추에 주먹밥과 구운 한우 한점을 쌈장으로 장식한 쌈밥 6개 또한 우리반에서 유명하였다. 유기농을 선호하던 엄마는 직접 기르고 만든 식재료로 여러 가지 음식들을 해 주었고, 방앗간 가서 가져온 신선한 쌀가루로 시루떡이나 백설기도 자주 만들어 주었다.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미식가 입맛이나 뱃속 사정이 꽤나 까따로운 것도 그 때문이 일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맛있고 다양한 요리를 해 주셨지만 특별히 내게 가르쳐 주시지는 않았다. 또한 나는 학업을 따라가느라 관심 있었던 '가사' 는 뒤로 하였다. 유기농 식재료를 선호하고 위생에 꽤나 까다로웠던 부모님은 김치와 국만 있더라도 집밥이 최고라고 늘 말씀하셨다.


자립과 독립을 자주 외치는 나는 집밥을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만드는 음식이 엄마 집밥 맛에 비해 형편없지만 그래도 집밥이 좋다.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도 가족이 만들든 친구 엄마가 만들든 손맛을 탄 음식이 좋다.물론 오랫동안 한국에서의 맛집맛을 못 봐 그렇다. 해외에서 어쩔 수 없이 사 먹게 되는 카페 음식이나 이미 대중화된 정크푸드도 이유 없이 입에 딱 맞지 않는다. 하지만 옆집 이웃이나 아이의 친구엄마가 해 주는 음식들은 철석같이 내 입에 잘 맞는다. 집에서 기른 상추나 허브로 만든 생식도 참 잘 맞는다. 여러 해의 해외살이가 되니 이젠 국적이 다른 지인 이름의 음식들 레시피만 알고 있다. 인터넷에 넘치는 황금 레시피 보다 '에리카 쵸코 케이크' 나 '오수케 엄마 가라아게'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 맛과 더불어 그들과 함께한 추억, 에피소드가 있으니 말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에피소드와 집밥 레시피는 지극히 개인적이다. 어쩌면 설탕 한 스푼이 더할 수도 덜할 수도 있다. 엄마들이 가족의 입맛과 취향에 맞추어 조율한 집밥이기 때문이다. 이번 매거진에서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볼 예정이다. 음식 이야기들은 대부분 집밥이거나 집밥 같은 맛이 가득할 것이다. 손수 해먹는 음식의 의미를 가진 '집밥'이라는 따뜻함이 내 글을 통해 전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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