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유독 태국 음식점을 자주 찾는다. 아마 월 1회는 태국요리를 먹으러 다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은 또래에 비해 잘 먹는 편인데 유독 태국음식점에 가면 식욕이 빛을 발한다. 언제부턴가 본인이 먹을 메뉴는 저 두 가지이다.
우리 가족이 태국음식점에 가서 시키는 메뉴는 거의 정해져 있다. 아들은 태국식 진한 간장색깔 고깃국물인 소고기쌀국수와 야들야들하고 달콤 짭조름한 족발덮밥 카오카무.
남편은 매콤하고 짭조름하게 야채와 간 고기를 볶아낸 팟카오무쌉과 가끔씩 이산소시지.
나는 태국의 대표적인 누들, 팟타이였다.
결혼 전부터 여행으로 해외출장으로 다니던 태국이란 나라는 나에게 흥미롭고 맛있는 체험들을 많이 안겨주었다. 세계 미식의 나라로 대표적인 태국. 태국에서 먹어본 다양한 음식들은 한국에서 가끔 먹던 태국음식점에서 부족했던 것들을 해소해 주기 충분했다. 가격은 또 얼마나 싼지.
결혼 후에도 워낙 여행을 좋아하던 가족이라 아들이 돌 되기 전부터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다녔지만, 그래도 청결하고 익숙하고 언어가 자유로운 편인 일본을 주로 다니곤 했었다. 우리 가족은 휴양지에서 물놀이하며 쉬는 타입의 여행자들이 아닌, 맛있는 로컬식당을 찾아다니고 관광지를 방문하고 구석구석 구경하고 체험하는 편인 가족이기에, 아무래도 더운 나라에서의 로컬음식은 잘 못 먹음 탈이 날 수도 있기도 하고 솔직히 어린 아들을 데리고 길거리 로컬식당을 돌아다닐 자신이 없기도 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태국앓이에 늘 시달렸다. 태국이 얼마나 재미있는데... 아들이 커야 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야 슬그머니 태국여행을 떠날 기회를 만들었다. 태국을 한 번도 안 가봤다는 남편을 꼬드겼다.
"태국이 글쎄 먹거리 천국이야 엄청나. 세계 미식의 나라이기도하고 얼마나 재미있고 신비한 관광지가 많은지 몰라."
방콕에만 5일을 묵는 일정을 잡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구석구석 다녀보기로 했다. 그렇게 도착한 방콕에서 정말 아들과 남편은 신나게 태국음식들을 탐닉했다. 땀을 줄줄 흘리면서 많이 걷는 여행이었지만 힘든 내색 하나 없었고, 길에서 파는 망고주스나 땡모반(수박주스)도 쪽쪽 잘 빨아먹고, 무엇보다도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망고를 실컷 먹을 수 있어서 아주 좋아했다. 아들은 로컬식당에서 국수를 호로록 먹고 맛있다고 국물을 그릇째 마시고 있었고 새로운 음식에 거부감이 없었다. 한국에서와 다르게 뭐든 적극적으로 먹어보려 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탈 한번 나지 않았다. 그렇게 거하게 먹고 끝난 두 남자의 첫 태국여행은 이후에도 태국앓이에 시달리게 하기 충분했다.
결국, 4개월 후. 우리 가족은 다시 방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처음 가본 태국에서 먹은 음식들에 감동을 받은 남편이 여행 후 줄곧 백종원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스트리트푸드파이터 방콕 편'을 반복해서 다시 보며 방콕에 가서 저대로 먹어봐야겠다고 말하곤 했다. 설마 했는데 정말 다시 갈 줄이야..
이런 무모한 여행이 괜찮을까 싶었지만, 까짓 거. 다시 방문한 방콕에서 우리는 그때와 또 다른 방콕의 구석구석 숨어있는 로컬 맛집들을 찾아다닐 수 있었다. 조금 힘들었던 것은 남편이 짜놓은 먹는 동선은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몇 블록 걸어 다음 고기국숫집에서 또 식사를 하는 이런 식인지라.. 위가 한정적인 나는 두 손 두 발 들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3끼가 아닌 4끼 5끼도 먹을 수 있는 남편이었다.
방콕에서의 어느 날 아침, 한정수량만 판다는 카오카무 덮밥을 파는 로컬 식당을 찾아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 나선다고 했고 뚝뚝이까지 잡아타고 도착했는데 이미 메인요리 카오카무는 품절, 우리는 아쉬운 대로 카오카무 덮밥 정도는 먹을 수 있었다. 정말 야들야들하고 달달한 것이 우리나라 족발과는 사뭇 달랐다. 마치 압력밥솥에 장시간 푹 쪄서 만든 족발이라 해야 할까. 껍질과 콜라겐, 살코기마저 야들야들해 호로록 밥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양념은 또 어떻고. 얼마나 맛있던지. 약간의 향신료 맛이 났지만 입맛이 까다로운 편인 아들이 이상하게 태국에서는 뭐든 잘 먹는다. 특히 8살 아들이 너무 잘 먹어서 추가로 한 접시를 더 시켜야 했다. 아들은 그날 이후 카오카무에 빠져들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태국음식점에 가면 카오카무를 찾았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 태국음식점에서는 제대로 된 카오카무를 파는 곳이 많지 않았다. 파는 곳이 많지 않기도 했고 파는 곳을 가도 태국 로컬식당의 그 맛과 식감이 아니었어서 우리는 좀 더 태국 로컬스러운 음식을 파는 태국사람이 하는 식당을 검색해서 찾아다니곤 했다.
태국 음식점에서 보통 카오카무는 비싼 편이다. 아무래도 태국에서 먹던 음식값을 생각하면 못 사 먹을 만큼 너무 몇 배의 뻥튀기된 가격이지만, 태국앓이 하는 사람들은 아마 감안하고 사 먹지 않을까. 그러다가 태국이 또 그리우면 다시 가면 되지 뭐.
카오카무덮밥으로 시키면 밥과 함께 족발이 몇 점 안 올라가 있다. 아들에겐 턱없이 부족한 고기양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작전을 변경했다. 카오카무 요리를 시키고 공기밥을 따로 시키는 전략이다. 그렇게 하면 카오카무 한 접시 양이 좀 넉넉히 나오지만, 공기밥을 한 공기 양껏 먹고 나서도 쩝쩝 입맛을 다시는 아들이다. 그래서. 쌀국수와 함께 두 개를 먹는 전략으로 가고 있다.
태국음식점에 가면 무섭게 시켜 먹는 두 남자들 덕분에, 나는 그저 팟타이 하나만 고수한다.
팟타이는 원래 좋아하긴 했지만 태국에 처음 갔을 때, 길에서 사 먹은 로컬 매대에서 파는 팟타이의 맛과 가격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위생이고 뭐고 이 가격에 팟타이를 이만큼 먹을 수 있다면 몇 접시를 시켜도 한국에서 먹는 팟타이 가격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팟타이는 태국의 대표 요리니까!
태국에 방문할 때마다 몇 끼를 팟타이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팟타이는 태국에서 서민음식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비싼 요리로 서빙되고 있어서 가격적인 맛이 살짝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이제는 아들도 팟타이를 좋아하게 되어서 태국식당에서 외식을 하게 되면 내 팟타이를 사수하기 위해 살짝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이번주말에도 친정가족모임이 있는데, 태국음식점으로 예약이 되어있다. 이번주말에도 간다면 2주 전에도 갔으니, 또 태국음식점을 방문하는 격.
나는 정말 진지하게 태국에 사는 것도 생각해 볼 정도로 태국이 참 좋다. 그런데 태국 음식을 너무 많이 먹다 보면 아무래도 달고 짜고 맵고 자극적인 것은 사실이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슴슴한 입맛이 되어가고 있는 터, 태국음식은 맛있지만 건강을 생각한다면 자주 즐기면 안 될 것 같고. 가끔 별미로 즐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미식가이면서 대식가인 우리 아들의 입에서 "엄마, 카오카무가 먹고 싶어요"라고 말을 하면 자꾸 마음이 흔들린다. 카오카무는 유난히 비싼 편이라 먹고 나오면서 "엄마가 족발 사다 카오카무 한번 해줄게."라고 다짐하면서 매번 못해주고 있다. 한국식 족발도 좋아하고 독일식 학센도 몇 번 해주니 좋아하지만 그래도 가장 맛있는 것은 태국식 족발요리 카오카무라고 하니, 이번 주말 모임에서도 뭘 먹을 거냐 물으니 대답은 역시 뻔했다.
"저는 카오카무랑 쌀국수예요."
"그래? 그럼 나는 또 팟타이를 시킬 테다."
도돌이표도 아니고 돌림노래도 아니고 태국음식점에 가면 또 같은 메뉴들을 시키지만, 각기 다른 태국음식점을 다니면서 맛을 비교하고 태국 로컬식당에 대한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가족이라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