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 어두운 거실을 지나 부엌 안쪽에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 나온다.
아직 잠이 깨지 않은 채 눈을 비비며 그 불빛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 본다.
"일어났니? 엄마 김밥쌀 준비해. 씻고 오렴."
엄마의 세 딸 중 유일하게 부엌에서 꼼지락대기 좋아하던 나는, 늘 엄마의 보조셰프역을 자처했다.
세 딸 중 한 명이라도 소풍을 가는 날 새벽, 엄마는 여지없이 새벽 4시쯤 일어나 김밥 쌀 준비를 하셨다.
전날 미리 준비해도 좋을 것 같은데 신선하게 만들어야 낮에 상하지 않는다며 극구 새벽부터 재료손질부터 시작해 김밥을 싼다.
또 손은 얼마나 크신지.
가족은 5명인데 세 딸들 소풍도시락에 선생님 도시락까지 싸고 아침 식사용 김밥을 썰어 둔 다음에도 늘 김밥전용 큰 타파통에는 10줄 정도는 남아있을 정도니 몇 줄을 싸셨는지 헤아려보지 않아도 대충 알 것 같았다.
엄마와 김밥준비를 숱하게 하면서 엄마스타일의 김밥재료 준비에 익숙해졌다. 왜 집집마다 짐김밥 스타일이 다 다르다고 하지 않는가.
양념을 넉넉히 쓰는 편인 미식의 도시, 전라도 전주 출신 엄마의 김밥에는 고소한 참기름, 천일염, 깨소금으로 간을 한 고슬고슬한 밥에 참기름과 소금, 다진 마늘과 액젓으로 조물조물 무쳐낸 시금치, 두껍게 구워 썰어낸 계란, 새콤달콤 노란 단무지 혹은 나라스케(일본식 장아찌) 그리고 두툼히 썰어 구운 스팸이 들어간다.
스팸.
지금은 흔하기도 하고 저염스팸도 나오고 있으며 스팸 말고도 다양한 캔햄들이 출시되고 있다. 스팸은 특유의 짭조름하면서 밥과 잘 어우러져 입맛을 돋게 하는 묘한 능력이 있는 햄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김밥용 햄보다는 돈육함량도 그렇고 조금 더 고급진 느낌이 있기도 해서, 스팸이 들어간 메뉴들은 약간 비싸기도 하고 대부분 사람들이 맛있다고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식당에서 자주 보이는 '스팸김밥', '스팸부대찌개', '스팸볶음밥' 같은 메뉴들이 나에게 특별히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아마 어릴 적부터 늘 부엌 찬장에 쌓여있던 스팸들로 엄마는 자주 다양한 요리를 해주셨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었다.
소풍 가서 친구들과 김밥을 나눠먹을 때면, 친구들이 우리 엄마 김밥은 햄이 다르다며 맛있다는 친구들이 많기도 했고, 솔직히 나도 친구들 엄마의 김밥이 우리 엄마 김밥만큼 맛있다고 못 느끼기도 했다.
짭조름한 미국의 햄인 스팸이 김밥에서 하는 역할은 엄청났다. 스팸김밥은 다른 김밥용 햄이 들어간 김밥과는 사뭇 달라서, 김밥에서 스팸이 차지하는 존재감이 남달랐다.
그렇다면 왜 우리 집에 그렇게 스팸이 많았을까. 언젠가 갑자기 궁금해져서 엄마에게 물어보았더니 처음으로 엄마를 통해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공무원출신인 엄마는 서울에서 결혼생활을 하게 되며 일을 그만두셨고, 아빠의 공무원 월급으로 세 딸을 키워내면서 빠듯하지만 알뜰하게 살림살이를 하고 계셨다.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엄마는 남대문시장을 다니면서 도매가로 많은 양의 물건을 사가지고 와서 쟁여놓고 집에서 소비를 하곤 하셨는데, 그래서 늘 찬장 가득 스팸과 참치, 미국 코코아, 과자, 초콜릿 등이 쌓여있기도 했다.
먹거리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어린 시절 기억에 엄마한테 동전 하나 받아 들고 문방구에 가서 준비물을 사러 갔던 기억이 거의 없다. 연필이나 지우개, 색연필, 스케치북, 공책 등 엄마는 세 딸들이 쓸 문구용품들을 남대문시장 문구 화방에서 도매가로 가득 사와 안방 자개농 한편에 쌓아두시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가져다 쓰게 해 주셨다. 우리 집이 넉넉해서가 아니었다. 박봉의 공무원 월급에 서울에서 자식 셋을 키워내기 위해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절약'이었다 하지만 세 딸을 위해 먹이고 입히고 학업에 관련된 것들 모두 물심양면 제공해 주시려고 노력하셨던 것이었다.
남대문시장에서 양껏 사 오는 먹거리들은 집에 한 번씩 들르는 동네아주머니들이 하나씩 사 먹겠다며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엄마는 시장에 단골 판매하시는 분들에게서 더 많이 구매하고, 할인도 받고 서비스로 얹어주시는 것을 받아오시기도 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일종의 공동구매, 보부상 같은 격이었다.
엄마는 동네에서 인복이 넘쳐나는 사람이었으니까. 받은 만큼 푸짐하게 베풀 줄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우리 집에는 늘 동네 아줌마들이 끊이지 않게 드나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집에는 스팸이 늘 떨어지지 않게 쌓여있었고 지금도 엄마집 부엌 찬장에는 스팸과 참치가 넉넉히 준비되어 있다.
"엄마, 뭐 이리 스팸을 많이 사놨어. 두 분이 잘 드시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하며 핀잔을 주면 엄마는 그런다.
"아유, 갑자기 손주들 오거나 하면 한 캔 씩 까서 삶아서 줘야지~."
세상 모든 엄마들은 다 그런가 보다. 자식, 손주사랑의 수순.
엄마의 스팸김밥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된 후부터 엄마를 더 존경하게 되었고, 더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먹거리가 풍족했던 나의 유년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집 김밥은 어떨까.
아들은 어릴 적, 단무지를 전혀 먹지 않았다. 단무지뿐만 아니라 새콤달콤한 맛인 동치미, 백김치, 단무지 비롯 오이피클이나 유부초밥까지 식초과 설탕이 들어간 맛을 거부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뭐.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아뿔싸. 김밥이 문제였다.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단무지 대신 넣을만한 재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우엉조림과 당근이었다. 당근을 채 썰고 약간의 천일염을 넣고 살짝 숨 죽을 정도까지만 볶은 후 살짝 달콤 짭조름한 우엉조림을 준비했다. 그리고 엄마와 쌌던 김밥처럼 두툼하게 계란을 굽고 조물조물 시금치를 무치고 마지막으로 비장의 무기 스팸을 구웠다. 김밥단면을 쓰윽 보더니 단무지가 없는 것을 확인한 어린 아들은 첫 김밥을 아주 잘 먹어주었고 나에게 엄지 척을 날려주었다.
"그래, 이거지! 이거야! 단무지 빼면 뭐 어때서! 상식을 벗어나자!"
아들이 단무지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우엉, 당근이 들어간 김밥을 쌌다. 준비할 재료가 늘어나긴 했지만 뭐 괜찮았다. 하지만 단무지가 김밥에서 주는 역할이 얼마나 큰지 누구나 알 것이다. 또한 집김밥 이외에 밖에서 김밥을 먹을 때마다 거부하는 아들이 언제까지 이러려나 싶었다.
초등학교 3학년쯤이었나. 슬슬 밖에서 파는 김밥에 단무지가 들어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들이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무지를 씹지 않고 삼켰다고 했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보였다.
때가 되었다. 나도 슬슬 우리 집 김밥에 추가로 단무지를 넣기 시작했다.
시금치, 당근, 우엉조림, 계란, 스팸 그리고 단무지.
아들이 너무 맛있다며 김밥을 먹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곤 함께 김밥을 싸고 싶다고 했다. 아들은 두툼하고 큰 손으로 김에 밥을 고르게 깔고 재료들을 척척 올리더니 동그랗게 잘도 말아 꾹꾹 눌러 터짐 없이 잘 완성해 냈다. 아직도 자신이 만든 첫 김밥을 들고 씩 웃던 녀석의 미소가 떠오른다. 그리곤 그 후부터는 김밥을 쌀 때마다 같이 싸고 싶다며 함께해 주고 있다. 내가 소풍날 새벽 엄마와 함께 김밥을 싸던 그 추억을 아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감정이 벅차올랐다.
아들이 만든 첫 김밥을 썰어서 근처에 계신 친정부모님께 보내드렸다.
"맛있네, 맛있어! 우리 딸 김밥 맛있게 잘 먹었다."
"엄마, 찬이가 쌌어. 맛있지?"
"아유~ 우리 찬이가 김밥도 쌌어! 맛있다 맛있어 대견해!"
또 손주 사랑이지만 나는 안다. 우리 엄마는 딸들을 더 사랑한다는 사실을.
가끔 집김밥을 싸면 엄마에게 두세 줄씩 썰어서 보내드리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와 함께 김밥 준비를 하던 때가 생각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나의 학창 시절 소풍날과, 엄마와 김밥 싸는 시간들.
모든 것은 추억이 되었고, 엄마에게 전수받은 김밥스타일은 이제 약간의 변형을 거쳐 우리 집 집김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