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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슈 Oct 18. 2023

집밥 단골손님 시래기된장국

엄마의 시래기된장국이 그리워지는 가을밤



집안 가득 구수하면서 꼬리꼬리한 된장국 냄새가 스멀스멀 나던 저녁시간.

날씨가 추워지니 뜨끈한 된장국 한 그릇이 생각나는 요즘, 학창 시절 우리 집 식탁에 자주 등장했던 단골손님, 시래기된장국 냄새가 가득했던 우리 집, 그때가 문득 떠오른다.


말린 다시마와 굵은 멸치를 가득 넣고 부글부글 끓여 육수를 내고, 된장을 푼다. 직접 말려서 보관해 두었다가 찬물에 불리고 삶아서 물기를 꼭 짠 무청시래기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준비한다. 시래기는 국물 대비 많이 넣어준다. 고기를 넣을 때도 있지만 주로 맑게 멸치, 다시마 육수로 끓인 시래기된장국은 엄마표 식탁에 자주 올라오던 메뉴 중 하나였다. 여기에 양파와 파, 다진 마늘 그리고 액젓을 넣으셨던가? 하여간 엄마표 시래기된장국은 진하고 구수한 육수가 생명이었다. 한동안 엄마는 파뿌리, 사과 껍질 등을 모아서 육수를 내시기도 하셨는데 조미료 없이 천일염 소금 간 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맛을 구현해 내던 엄마의 손맛은 천연조미료로 만든 깊은 육수에서 비롯되었다.


김장할 때마다 부엌 도우미였던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무청을 살린 채 무 밑뚱을 잘라 모았다. 엄마는 세탁소 옷걸이에 가지런히 정리해 걸친 무청을 아파트 베란다 빨래 건조대에 널어 두셨다. 무청시래기가 늘어진 옷걸이가 하나 둘 걸릴 때마다 베란다를 통행하기 상당히 불편하고 무청 말릴 때 나는 특유의 묘한 풀향이 싫었던 기억이 난다. 노르스름 바스락 자연건조시킨 무청으로 엄마는 시래기된장국, 시래기된장지짐을 종종 해주셨다. 특히 된장지짐은 머리와 똥을 뺀 굵은 멸치를 깔고 다진 마늘 듬뿍 넣고 자작하게 만드셨는데, 밥이랑 먹으면 된장의 구수함이 입안 가득 퍼지고 다음날 화장실 배변도 잘되던 일석이조의 음식이기도 했다. 특히 학창 시절 잦은 변비로 고생하던 나에게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시래기된장국, 된장지짐, 시래기나물 등은 딸의 원활한 배변활동?을 위한 엄마표 천연 변비약이나 다를 게 없었다.


엄마의 시래기된장국은 너무 자주 먹던 음식이라 슬슬 지겨워져 갔고, 결혼을 하고 떨어져 살게 되면서 점점 멀어져갔다. 결혼 후 가끔 엄마 집에 들를 때나 한 번씩 먹는 흔한 국중 하나란 생각도 있었고, "싸갈래?" 하고 물으시면 아주 좋아하진 않으니 괜찮다고 사양하던 음식이기도 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나는 어릴 때 너무 자주 먹어서 질린 것일까. 시래기된장국을 단 한 번도 끓여본 적 없는 주부가 되어 있었다. 기억 저편으로 시래기된장국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었고, 이따금씩 엄마가 끓여주시면 한두 숟갈 뜨다가 마는 천덕꾸러기 국 같은 이미지로 자리 잡기도 했다.


나에게  시래기된장국은 이런 존재였다.






작년 어느 날, 함께 일하던 동료와 점심을 먹으러 나갔는데, 점심메뉴를 고민하던 그녀가 말했다.


“이 근처에 맛있는 시래기된장국집이 있는데 가실래요?”


순간, 시래기된장국은 우리 집에서 늘 흔하게 먹던 국이라 문득 이 음식을 단 한 번도 밖에서 돈 주고 사 먹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인지했다. 동료를 따라간 허름한 식당에서는 주메뉴가 시래기된장국, 그 밖에 토속적인 청국장, 비빔밥 등의 메뉴들을 하고 있었다. 잘 익은 깍두기에 뚝배기 한가득 나온 시래기된장국을 한 숟갈 떠 후루룩 음미했다.


“아… 구수하다. 엄마의 시래기된장국 맛.!”


함께 먹는 동료가 음미하며 말했다.


“저는 부모님과 떨어져서 혼자산 지 오래돼서 그런지 이런 엄마가 끓여준 것 같은 된장국을 점심으로 먹고 싶더라고요. 구수하고 깔끔하고 집밥 같아서요.”


‘집밥’ 엄마표 구수한 시래기된장국. 그렇구나. 나에겐 흔하디 흔해서 잊혀졌던 시래기된장국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집밥의 추억일 수 있겠구나. 순간, 엄마표 시래기된장국이 그리워졌다.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시래기 건더기 가득했던 된장국을 가져가라 하시면 마다했던 내 부끄러운 모습이 떠올랐다. 영원한 건 없는 것을 알면서, 엄마표 시래기된장국을 언제까지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결혼해서 다른 곳에 살다가 친정 근처로 이사해 지금은 엄마 옆에 살지만 사실 자주 엄마 집밥을 먹진 않는다. 딸들 각자 가정을 꾸리고 자식들이 생기니 엄마가 가까이 살아도 매끼 함께 밥을 먹을 수는 없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내가 엄마 밥이 먹고 싶을 때면 전화 한 통이면 뚝딱 밥상을 차려 주실 엄마가 아직은 옆에 있다는 사실이다. 가끔 엄마 집에 들르면, 매일 새 국을 드셔야 하는 아빠를 위해 늘 가스레인지 위에는 국 한 냄비가 존재한다. 그게 뭐가 되었든 친정에 들르는 딸에게 끓여놓은 국냄비를 다 덜어 통에 담아 싸주시는 엄마인데, 시래기된장국은 잘 안 먹는다고 마다했던 못난 내가 생각난다. 이제는 엄마의 시래기된장국의 소중함을 곱씹으며 엄마표 된장국을 먹을 수 있을 때 맛있게 먹고 엄마의 손맛을 기억해야 할 거 같다.


최근 들어 지인 부모님의 부고소식 혹은 건강악화 소식들이 들을 일이 늘어만 간다. 바쁘게 살다가 한 번씩 이런 소식을 들을 때면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점점 연로해지시는 부모님을 생각하게 된다. 자식이 뭔지, 사는 게 뭔지. 그런데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부모님과 하고 싶었던 것을 미루지 말아야 할 것이며, 엄마표 집밥을 먹을 기회를 귀찮으시겠지만 자꾸 만들고 싶다. 엄마의 손맛을 잊지 않고 싶기에, 미루지 말고 많이 표현하고 많이 함께 하고 싶다.


엄마의 시래기된장국과 된장지짐이 생각나는 쌀쌀한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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