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봄이 올 거라는 기대감과는 달리, 얼마 전에는 눈세상을 마주했었고, 어느 날은 얇은 파카를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따숩더니 또다시 쌩쌩 바람이 부는 한파를 마주했다. 그래도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날 채비를 하는지 풀과 나무들이 꿈틀대는 느낌이 느껴지는 봄, 봄을 맞이하는 데 있어 나와 같은 베이킹강사의 시간은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외부 출강 강의들로 일주일을 가득 채웠었던 겨울 학기 3개월의 마지막 수업, 지난주 토요일 겨울학기 수업을 마무리했다. 나의 공간을 접고 난 후 몇 년이 지나는 동안 나의 직장은 각 쇼핑몰의 쿠킹실이었다. 이곳에서 만나는 분들과의 시간들은 차곡차곡 쌓여갔지만, 대부분 큰 백화점이나 마트의 본사에서는 직원들을 각 지점으로 발령을 보내는 특성상, 쿠킹실 담당자들과 오랜 기간 함께 일하기는 어려웠다. 정들만하면 떠나고, 사람과의 관계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편인 나란 사람은 아쉬움이 참 컸다. 하지만 다른 지점으로 옮기신 담당자님을 그 지점에 출강 나가서 만나 뵙는 일도 더러 있어서 늘 누구를 어디에서 만날지 모른다는 설렘과 기대감에 더 좋은 강사로 좋은 강의로 보답하며 일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겨울학기는 유난히 강의도 많았고 많이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울은 크리스마스에 신년, 발렌타인데이까지 다양한 이벤트가 있는 시기이기도 하며, 아이들의 긴긴 겨울 방학을 위해 만든 방학특강도 있었다. 또한 약 1년간 주말만 출강 나가다가 평일까지 온전히 8군데의 강의처를 고루 나가 강의를 했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주시는 분들도 많았고 나 역시도 오롯이 베이킹강의에 몰두할 수 있어서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게다가 문화센터 강사는 3개월 전에 이미 다음학기 일정 및 강의계획서를 제출하다 보니, 늘 3개월을 먼저 사는 느낌이 크다. 2월은 특히 유난히 바빴던 겨울학기 강의들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보니 더욱더 종강날이 주는 의미가 컸다. 마지막 강의처에서 따뜻한 라떼 한잔을 내어주시며 외부강사를 챙겨주시는 감사한 쿠킹실 담당직원분이 계셔서 일는지도 있겠다. 이런 분들 덕분에 “그래, 나는 존중받는 사람이야.”라고 다시금 일깨워주시는데, 일하는 데 있어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해 주시는 분이나 진심 어리게 대해 주시는 수강생분들의 말 한마디와 행동은 강사에게 큰 힘이 되기도 한다.
“가보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했습니다. 커피 잘 마셨어요. 다음 달에 뵈어요!.”
편한 인사를 건네고 쿠킹실 문을 닫고 나오는 길, 가벼운 발걸음이 나의 마음상태를 말해준다.
12월부터 3개월간 거의 매일 강의를 하며 수백명의 사람들을 만났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수업준비를 하며 행여 빠진 것은 없을까 무거운 짐들을 들고 다니며 동동거렸던 내 모습도 있었다.
이런 바쁜 일정들 속에서 약 1주일의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강의를 쉬는 기간을 미리 맞춰 여행을 미리 계획하거나 했을 텐데, 이번에는 정말 아무 계획도 없다. 무계획이 계획이랄까. 이런 휴가가 여전히 어색해서 자꾸 갑자기 떠나볼까 하며 검색창에 비행기표를 뒤적거려 본다. 아이들 방학 전 마지막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지 비행기표는 미친 듯이 올라있었고 제주도나 지방소도시로라도 훌쩍 떠나볼까 마우스를 요리조리 옮겨가며 클릭을 하고 뒤져본다.
멀리 갈 필요가 뭐 있나 싶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글램핑을 검색해 야무지게 예약까지 걸었건만 업체 측 사정으로 예약이 취소가 되고 우리가 가려고 했던 날짜는 예약이 막혀버렸다.
호캉스를 가볼까 또 뒤적거리다가 잠이 들어 버리고 그냥 당일치기로 나들이를 갈까 하다가 곧 개봉할 영화, 듄 2는 꼭 봐야 해 하며 영화예매사이트를 뒤적거린다.
그러다가 또다시 비행기검색을 하고 있는 나란 사람이란..
이번 겨울방학 동안 어디 여행 한번 제대로 못 가본 아들에게 미안했는데, 아들은 내 생각과 다르게 자기는 이번 방학이 괜찮았다고 한다. 늘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비단 나만의 생각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아, 그냥 내가 떠나고 싶었구나. 나는 여행병 환자이니까.'
주말 여행일정을 짜보려다가 여전히 숙소든 뭐든 다 비싸진 것을 보니, 굳이 이렇게까지 나가려고 하는 나는 뭔가 역마살 병에 걸린 사람처럼 문득 초라해져 버린다.
문화센터출강 중인 강사들은 대부분 나처럼 3개월 텀의 학기제 삶을 살고 있다. 3개월이 끝나갈 무렵 또다시 다음 3개월의 학기 강의 준비를 이미 마친 상태일 것이다.이것은남들보다 3개월의 계획을 미리 세우며 살아간다는 뜻도 된다. 나와 같은 문화센터강사들은 2월의 마지막 주인 지금, 꿀맛 같은 방학을 만끽 중일 테다.
하지만 나는 바로 다음 달부터 시작되는 봄학기 수업용 재료들을 구비하느라 쉴 새 없이 검색을 하고 주문을 하고 택배를 받아 둔다. 또한 새롭게 선보일 수업에 대한 연구와 테스트,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다소 여유로우면서도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직도 방학 중인 아들의 끼니를 챙겨주는 일과 아들의 공부 감시도 해야 하고, 아들과 한 번씩 외식을 하거나 외출을 하며 좋아하는 전시를 보러 가는 일도 하고 있다. 미안하지만 평일에는 남편이 없는 주말부부라서 망정이지, 주말이 다가오면 남편을 위해 해줄 맛있는 요리 준비와 주말 계획을 세우는 것도 내 몫이다.
혼자 사는 싱글이 아닌 주부이자 학부형이자 베이킹강사인 엄마의 삶은 다소 분주함의 연속이다. 그래도 나는 내 일을 사랑하지만 당연히 휴식기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