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긋한 파운드케이크
부드럽고 보송보송 새하얀 생크림과 촉촉하고 보들보들한 케이크 시트. 빙글빙글 돌림판을 부드럽게 요리조리 돌리다 보면 어느새 뚝딱 만들어지는 케이크.
밀가루, 버터, 계란, 설탕, 초콜릿 등을 배합한 스콘 반죽이 오븐에 들어간다. 어느새 달콤하고 고소한 버터향이 가득해지고 조심스럽게 오븐에서 갓 구운 스콘 한판을 꺼내 식힌다. 집안 가득 달콤한 향이 베어 들어간다.
취미였던 베이킹이 일이 된 지금도 여전히 디저트 카페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디저트들의 향연. 쇼케이스 가득한 알록달록 달달한 디저트들을 보고 있자면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지고 눈빛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행복하다.
문득, 베이킹에 흥미를 갖게 되었던, 내 생애 첫 베이킹을 했던 때가 떠오른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엄마는 동네에 미국에서 살다 온 아줌마가 하는 홈베이킹 클래스에 다니셨는데, 엄마가 집에서 베이킹 연습을 하실 때마다 나는 그 옆에 딱 붙어 보조를 자처했다. 엄마가 주로 굽던 파운드케이크를 반죽할 때에는 미국에서 온 110 볼트의 핸드믹서를 쓰기 위해서는 도란스(변압기, 엄마는 도란스라고 부르셨다.)를 써야 했다. 늘 엄마 곁에서 보조만 하던 어느 날, 엄마의 허락 하에 처음으로 혼자서 핸드믹서를 잡고 반죽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내가 마치 미국 영화 속 그녀들처럼, 봉긋한 머핀과 향긋한 사과파이를 뚝딱 구워 내는 미국 어느 시골 오두막집의 메리 할머니가 된 듯, 황홀했다. 실리콘 주걱으로 반죽을 싹싹 긁어 틀에 넣어야 하는 것도, 짤주머니에 반죽을 넣고 쭉쭉 짜서 머핀 팬에 양을 조절해 고루 담는 것도 즐거웠다.
엄마는 딸들에게 야채를 고루 먹이기 위해 주로 야채를 넣은 파운드케이크나 머핀을 구우셨다. 양파 파운드케이크, 당근 머핀, 애호박 파운드케이크 이런 종류로 말이다. 엄마가 늘 쓰시던 파운드 틀과 머핀 틀에 버터칠을 하는 작업은 늘 내가 했다. 손가락으로 버터를 골고루 팬 안쪽에 펴 발라주어야 나중에 구워진 케이크를 꺼낼 때 깨끗하게 떨어질 수 있다. 야채가 들어간 케이크가 싫어 눈살을 찌푸리기 일쑤였지만, 구워 나온 케이크는 생각 외로 맛있었다. 계핏가루가 들어가면서 야채 맛이 덜 느껴졌고 달콤하고 묵직해서 든든한 한 끼 식사나 다를 바가 없었다. 봉긋하게 구워져 나오는 머핀들을 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던 그때. 엄마와 함께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좁은 부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반죽을 했던 추억은 지금도 오롯이 내 기억 속에 애틋하게 존재한다. 내 생애 첫 베이킹은 이렇듯 엄마와 함께 했던 따듯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성장하면서 베이킹을 잊고 살았다. 결혼하고 1년 반 후 회사 사정상 주말부부를 해야 할 상황에 봉착했다. 신혼부부인데 그러고 싶지 않아 조심스럽게 이직을 준비했는데 잘 안되었다. 거듭 도전을 했는데 해왔던 업무의 특성상 외국 거래처와의 소통과 해외 출장의 일들이 많아서 그동안의 경력은 있지만 '아이가 아직 없는 결혼을 한 여자 사람'은 회사 측에서는 바라지 않았다. 높였던 눈을 낮춰도 보았지만 오히려 결과는 더 안 좋았다. 나는 처음으로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본의 아니게 일을 그만두고 쉬어야 할 상황이 되었는데, 그동안 단 한 번도 쉴 틈 없이 달려온 나에게 남편은 쉬면서 취미생활도 하고 즐기라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배려하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행여 경력단절이 될까 봐 무척이나 예민하고 뾰족했다. 결혼을 한 상태에서 이직에 어려움을 겪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기에 나는 너무나 위축되어 있었고 자격지심이 하늘을 찔렀다. 집에만 있는 시간이 너무나 힘들었다. 무언가 하고 싶었다.
어느 날, 부엌 한 켠에 자리 잡은 전자레인지로만 쓰고 있던 신혼 때 들인 광파오븐이 눈에 들어왔다. 책꽂이에 꽂혀있는 오븐 회사에서 주는 레시피북을 뒤적거렸다. 달콤한 빵과 과자들 페이지에서 멈칫했다.
'베이킹? 한번 만들어 볼까. 예전에 엄마랑 했던 것처럼 말이지.'
경력단절이 된 것 같은 두려움, 그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기 위해 취미로 베이킹을 선택했고, 그렇게 나는 그날 이후로 내 열정을 거기에 쏟아 붓기 시작했다. 사실 그렇게 오랜 단절도 아니었는데 생각해보면 ‘가만히 쉬지 못하는 병’ 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베이킹을 취미로 선택하고 단단히도 미쳐 있을 때였다. 얼마나 많은 밤을 새우고 달달한 내음과 더운 오븐 열과 사투를 벌이면서 구워댔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행복했고 즐거웠다. 베이킹을 통해 우울했던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이든 배움은 깊이가 있어지면 어렵고, ‘내가 굳이 이 고생을 하면서까지 이걸 해야 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베이킹은 생각보다 체력을 요하는 일인 줄도 모르고 달려들었다가 포기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았다. 한 가지 취미를 꾸준히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만큼의 열정과 관심, 노력이 필요했다. 취미에 쏟는 열정, 그 끝이 무엇인지 알 순 없었지만, 그저 좋아서 하는 일, 딱 그거였다.
그렇게 나는, 베이킹을 취미로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