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집중 ,마스카포네티라미수
회사를 그만두어도 쉬는 것이 싫었다. 나는 뭐라도 하고 싶었다. 이대로 무너질 수가 없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이것은 나와의 싸움이었고 쉬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친구가 운영하는 출판사 일을 돕고 있었다. 친구는 굉장히 창의적인 일들을 기획하고 만들어내는 일을 했는데, 내가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이렇게 말해주었다.
“네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을 고르고 그 안에서 선택하면 돼!”
진취적인 친구였다. 그렇다. 단순했다. 고민만 하고 있음 뭐 하나. 선택했음 되는 것이었다. 관련된 책들을 읽었고 나는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교집합을 찾아 적어보았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내가 이전 회사에서 했던 전공인 일본어를 살려 일했던 업무에 대한 미련을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정말 좋아했던 업무였지만, 상황이 바뀌면서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은 과감히 내려놓기로 했고, 그러고 나서 선택한 일이 바로 ‘베이킹하는 일’이었다.
새로운 시작은 무언가의 끝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그 끝이 영원히 사라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살면서 경험해왔던 모든 것들은 앞으로의 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귀중한 자산이 되어 차곡차곡 축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은 삶은 계속되고 있기에, 나는 멈춰있지 않기에 가능했다.
나에게 ‘베이킹’은 순전히 취미였다. 본격적으로 취미로 구워야지 마음을 먹은 후 부터는 꽤나 꾸준히 굽긴 했지만 '이것을 직업으로 살려볼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내가 베이킹을 처음 시작한 약 15년 전쯤 에는 홈베이킹하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고 시중 카페에서 지금처럼 먹을 만한 케이크나 쿠키류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나는 혼자 일본에서 구해온 베이킹 책들을 보면서 연습했고 나만의 레시피를 만들어 갔다. 그런 시간들이 나에게는 힐링이었고 생각보다 즐거웠다. 만들어진 완성품에 희열을 느끼고 사람들에게 나눠줄 때 행복했으며, 그들이 맛있다고 해줄 때, 거기에서 오는 뿌듯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또한 새로운 레시피를 연구하고 마음에 드는 작품이 만들어 졌을 때, 결과물을 보며 요리조리 사진을 남기며 즐거웠고 짜릿했다.
‘이거구나!내가 즐거운 일, 잘할 수 있는 일, 그래 이거야! 이걸 계속해야겠어!’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재료와 도구를 사고, 밤새 연구도 하고 레시피를 만들어 나갔다. 그러다가 서서히 독학에서 벗어나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수업을 하는 선생님의 홈베이킹클래스에 다녀보았는데, 거기에서는 레시피를 받고 선생님의 시연을 보고 도란도란 수다를 떨며 만들어진 디저트를 함께 먹고 오곤 했었다. 이 시간들도 좋았지만 슬슬 전문적으로 배워볼까 싶어 자격증을 따 볼까 하여 제과제빵 자격증 학원에 등록했다. 시험을 위한 대형 학원에서는 어떤 재료를 쓰고 강의를 어떻게 하는지를 알 수 있었고, 대량생산을 할 경우 어떤 설비들을 써야 하는 지도 체득할 수 있었다. 또다른 학원에서는 ‘이태리 브런치 과정’ 수업을 들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에게 있어 이 수업은 내가 베이킹하는 삶을 결정하는 데 있어 운명 같았던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수업을 통해 내가 요리보다는 ‘베이킹’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수업의 3개월 과정 중 월 1회 있었던 디저트 수업이 너무 좋았다. 제대로 된 마스카포네 치즈를 쓴 이탈리아 전통 티라미수, 파나코타, 콜드 디저트 등 흥미로운 디저트들을 배우면서 제과 쪽 베이킹을 본격적으로 배울 생각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국내에서 권위 있는 제과 전문 아카데미에서 '쇼콜라티에 케이크 양과자 과정'을 배우게 되었다. 이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정통 제과, 파티시엘의 기술들을 고루 배운 것 같았다. 베이킹 일을 하다가 갑자기 '플라워케이크'에 꽂혀서 유명한 선생님을 찾아가 버터크림 플라워 케이크를 배우면서 내 베이킹 실력에 기술을 얹고, 내 색깔을 넣어 작품을 개발했다. 베이킹 실력이 쌓일수록 나는 더욱더 즐겁게 '베이킹하는 취미'에 빠져들었다.
이렇게 배우는 동안에도 알음알음 지인들에게 쿠키들을 팔기도 했는데, '건강한 디저트 만드는 게 재미있는 나'와 '건강하고 좋은 재료로 만든 수제 디저트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수요와 공급은 얼추 맞아떨어졌다. 나는 온라인에서도 카페와 블로그를 운영하며 조심스레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임신을 하고 아이가 생겨도 베이킹은 계속했다. 그냥 즐거웠다. 밤을 새우고 몸이 힘들 수 있었을 텐데 하나도 그렇지 않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인정받는 그런 시간들이 행복했다. 회사를 떠난 허전함을 마치 이 취미에 모두 쏟아내 버리려는 양, 엄청난 에너지를 썼던 시간들이었다.
베이킹하는 삶을 선택하게 동기부여를 해준 친구가 어느 날, 남자 친구에게 선물할 아이싱쿠키를 직접 만들고 싶다며 수업을 해달라고 했다. 첫 베이킹 수업이었다. 혼자서는 열심히 만들었지만 누군가를 가르쳐본 적은 없었기에, ‘어떻게 가르쳐주지? 얼마를 받지?내가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퐁퐁 떠올랐다. 친구 덕에 나의 첫 베이킹 수업은 성공적으로 마쳤고, 친구는 멋진 선물을 만들어 남자 친구에게 선물을 했다. 나도 친구도 뿌듯했던 시간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이 일을 계속하면서 나는 아이 친구 엄마들 사이에서 베이킹하는 엄마로 통했고 소소한 행사에 나에게 쿠키를 주문하는 엄마들도 생겼다.
어느 날, 한 아이 친구 엄마가 물었다.
“OO엄마, 나 베이킹을 배우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될까?”
“언니, 집에 한번 오세요~ 가르쳐 드릴게요!”
“아니, 지역 카페에 글을 올려서 정식으로 베이킹 클래스를 열어봐! 그러면 가서 배울께.”
동네언니의 이 한마디에 머리를 '뎅' 하고 맞은 것 같았다.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언니의 이 말에 힘입어 지역 카페에 홈베이킹 클래스 모강 글을 쓰고 수강생을 모집했으며, 본격적으로 집에서 소수정예의 홈베이킹 클래스를 열었다. 부엌에 직접 만든 작은 간판을 걸었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시간 동안 나는 불특정 다수의 지역 엄마들과 함께 베이킹 클래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을 집에 들이는 것 자체가 어색했지만, 사람들과 소통을 좋아하는 성격 덕분에 금방 익숙해지게 되었고, 즐겁게 홈베이킹 클래스를 꾸려 가기 시작했다. 성인에서 아이들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 집 작은 부엌에 모여 베이킹을 했다. 늘 집안에서는 달달한 빵냄새가 끊이지 않았고,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수업을 마치면 부랴부랴 어린 아들을 데리러 뛰어나가야 했지만 내 발걸음은 가벼웠고 벅찼다. 그렇게 취미였던 베이킹이 일이 되고 있었고, 나의 일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